나의 스타가 살던 집 몽콕 카두리 에비뉴 32A

Chapter 2. 구룡반도에서 장국영 찾기

by LesliE

늦은 오후에 도착해 반나절 알차게 보낸 첫날을 뒤로하고, 몸을 뉘었더니 어느새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홍콩에서 온전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오늘은 장국영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또 그 팬이 홍콩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리는 곳을 방문하는 날이다. 바로 몽콕의 한적한 프라이빗한 주택가에 위치한 그가 마지막까지 살았었던 집 ‘몽콕 카두리 에비뉴 32A’에 가는 것. 어제 너무 무리해서 산책을 했던 탓일까? 어깨가 살짝 결리며, 몸이 조금 무거웠지만 다행히 큰 걸림돌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부터 머릿속으로 계획해둔 착장을 챙기고, 홍콩 시내로 발걸음을 내딛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몽콕을 방문하는 것과 별개로 아침부터 서두른 이유가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오리지널 홍콩 아침풍경을 느낄 수 있는 차찬탱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차찬탱의 한자를 풀어보면 '차(茶)'와 '식사(餐廳)'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값싸고 다양한 음식까지 파는 홍콩의 대중음식점이다. 홍콩하면 떠오르는 프렌치토스트 역시 차찬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유의 이유라고 할까. 아침을 먹어 속을 든든하게 채워야 했던 이유는 역시 오늘도 장국영의 흔적을 찾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속이 든든해야 두 다리도 튼튼하게 버틸 수 있을 테니.


언젠가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한국에서 하루에 두 끼도 먹을까 말까 한데, 여행을 가면 전날 몇 시에 잤든 상관없이 이른 아침 일어나 조식을 챙겨 먹고, 하루 3끼, 때로는 5끼까지 먹는 일이 허다하다고. 또 웃긴 건 아침에 조식 식당에는 본인일행을 포함한 한국인들이 대다수일 때가 많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나는 아침밥보다는 아침잠을 선택하는 사람이었고, 학창 시절에도 하루 2끼가 나에게는 디폴트 값이었다. 중학교 이후로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은 적은 거의 없었고, 오직 병원에서 하루 3회 복용해야 하는 약을 처방 받을 때만 예외였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홍콩의 아침 풍경들을 구경하며, 또 아침메뉴와 함께 마실 빨간 염소 잔에 담긴 따뜻한 밀크티를 상상하며 빠르게 침사추이의 거리를 누볐다.


[Kowloon Restaurant]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코너를 도니 어느새 오늘 나의 첫 끼를 책임져 줄 Kowloon Restaurant이 눈에 들어왔다. 빈틈없이 채워져있는 다양한 종류의 빵들과, 이미 매장을 가득 채운 손님들의 모습을 보며 혹여나 했던 음식에 대한 걱정은 집어넣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들어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앞서 차찬탱 설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Kowloon Restaurant을 비롯한 차찬탱 특징 중 하나는 메뉴가 정말 많다는 것인데, 토스트부터 마카로니 수프, 라면 종류까지 다양하여 취향껏 고르면 된다. 더하여 모든 메뉴 밑에 영어표기까지 해주니, 외국인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다. 매장 앞에서 많은 사람들을 홀린 빵을 먹을지, 홍콩 차찬탱 하면 떠오르는 연유 토스트를 먹을지 고민하다 직원에게 메뉴를 추천받기로 했다. 추천 받은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비프 앤 누들'과 함께 빼먹지 않고, 따뜻한 밀크티를 시켰다.


그리고 직원이 내게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물었는데 그 질문에 답을 하고 난 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내 첫 대만여행을 취소해야했던, 학창시절 12년 열심히 배운 짬빠로 외국인 직원과 통화해가며 간신히 모든 금액을 환불을 받았던 그 때가 다시 떠올랐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홍콩을 대표하는 밀크티와 빨간 젖소잔

회전율이 빠른 차찬탱답게 메뉴는 순식간에 나왔다. 내가 가장 기대했던 귀여운 염소 잔에 담긴 밀크티가 먼저 내 앞에 등장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홍콩에 간다면 저 빨간 밀크티 잔은 꼭 사길 추천한다. 이유는 귀여우니까!! 단, 구매할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젖소 뒤 하늘 배경이 하늘색인지 확인하는 것. 제대로 된 밀크티는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긴장하며, 작은 염소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는데, 생각보다 입맛에 맞아 잔은 금방 그 바닥을 드러내었다.


내가 시킨 소고기 비프 누들면. 당신이 상상하는 그 맛이다.

곧바로 '고기와 면'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을 가졌던 메인 메뉴가 나왔다. 겉모습은 라면사리 위에 돼지갈비 같은 고기가 올려져 있는 모습으로 매우 친근한 모양새였는데, 추가금액을 지불하여 시켰던 계란프라이가 꽤나 맛있게 보였다. 맛은 라면 사리와 양념 돼지갈비를 올려서 먹는 느낌이랄까? 세 입정도 먹은 후, 주변 사람들의 테이블을 둘러보니 마카오식 돼지고기 번이나 마카로니 수프를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에 다시 방문한다면 그 메뉴를 도전해보려고 한다.


오늘의 목적지인 몽콕을 가기 전, 박물관/미술관 러버인 나는 홍콩역사박물관에 잠시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홍콩역사박물관 역시 식당에서 매우 가까워 든든하게 채운 배를 살짝 가볍게 만들어 주기 좋았다. 그리고 홍콩역사박물관에서 몽콕 카두리 애비뉴 32A까지는 걸어서는 40분 정도. MTR과 버스를 타고 가면 약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홍콩의 또 다른 명물인 2층버스를 타고 몽콕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최근에 수도권에 잠깐 거주할 일이 생겨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 익숙해진 2층버스지만, 내가 살던 광주에는 2층버스가 없었기에 내게는 꽤나 재미있는 존재였다.


오늘의 나의 루트는 [7번 버스를 타고 VICTORY AVENUE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 장국영이 살았던 몽콕 카두리 애비뉴 32A는 엄청난 부촌으로 유명한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그였기에 그가 여기에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홍콩의 부촌은 대부분 높은 고지에 위치하여 있는데 몽콕 카두리 애비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주로 자동차로 이동했을 터, 언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살았던 곳, 그가 걸었던 장소를 내가 간다고 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느새 도착한 VICTORY AVENUE 정류장에서 내려, 구글맵이 가리키는 대로 몸을 이끌었다. 신호등 하나를 건너고 코너를 돌고 다시 언덕을 올랐다. 장국영의 옛날 집은 꽤나 안쪽에 위치하여 있었기에 몇 개의 건물들과 주택들을 지나가야 했다.


몽콕 카두리 애비뉴는 부촌답게 높고 빼곡한 전형적인 홍콩 건물이 아닌 평창동에서나 볼 법한 큰 주택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만들어져 있었다. 또 언덕 하나 올라왔을 뿐인데,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거리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언덕 하나만 올라왔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혼자 벅차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난리 부르스(?!)를 치다보니 어느새 장국영이 생전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몽콕 카두리 애비뉴 32A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프라이빗 로드라고 적힌 표지판을 시작으로 여러 집이 마치 줄을 서있듯 주르륵 위치하여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장국영의 집은 끝 쪽에 위치하여 있었다.


[장국영이 생전 마지막까지 살았던 집 (중앙에 있는 집)]

누군가는 나에게 묻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그곳을 왜 가느냐고' 장국영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연인이었던 당학덕도 그가 떠난 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이젠 장국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고. 그 말은 즉,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집은 이제 다른 이의 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곳을 방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를 만나본 적도 없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생에서는 만날 수 없기에. 이제는 희미해지다 못해 사라지기 직전인 그의 흔적을 홍콩에서 조금이라도 찾아보고 싶었다. 난 프라이빗 로드 끝에서 그의 집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일을 마치고, 저 문을 열고 그가 웃으며 집에 들어갔을 텐데'


'저 집에서 TV를 보며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을 거야'


'저 창문을 열며 집안을 환기를 시키고, 아침마다 상쾌한 공기를 마셨겠지?'


"... 어?? 창문 열렸다!"


한 5분 정도 수많은 생각에 잠겨있었을까? 갑자기 2층의 창문이 열렸다. 물론 장국영이 창문을 열었을리는 없고, 그 집의 가정부 혹은 집주인에 의해 열린 창문이었겠지만 왜인지 마음이 뜨거워졌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저 창문을 열었을 장국영을 상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홍콩에서 장국영을 찾기 위한 장소 선택을 고민할 때, 큰 도움을 받았던 더불어 장국영의 빅팬인신 ‘유진 작가’님은 아쉬운 마음에 메모지에 글을 써 문틈 사이에 끼워놓으셨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집에 메모지를 놓고 가기보단, 내 전공을 살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노래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2025년 4월 1일, 그가 떠난지 22년이 되는 날 그의 생일을 제목으로 한 ‘0912(아비정전)’을 발매했다.


프라이빗 로드 앞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올라왔던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어느새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사람들과 커지는 소리,소음들. 하지만, 그때 내 귀에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고, 내가 그곳을 방문할 수 있던 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그가 떠난 지 23년이 되었다. 그리고 만1살이었던 나는 만24살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장국영인데,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을까?


최근에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홍콩영화의 팬이자 장국영 팬이신 주성철 편집장님께서 책을 하나 내셨다. 책 제목은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그 책 속에는 당연하게도 장국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장국영이 세상을 떠나고 양조위가 왕가위를 대표하는 페르소나로 세대교체가 되는 이야기.. 만약 장국영이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면, '영원한 우리의 홍콩배우 장국영', '마지막 홍콩배우들 장국영 그리고 양조위'라는 책이 나올 수 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이제는 가정법으로만 말할 수 있는 그 순간들을 혼자나마 상상으로나마 해본다. 확실한 건 2001년생인 LesliE 마음속에는 장국영이 평생 남아있을 것이다.

이전 06화홍콩의 자랑 페닌슐라와 나의 스타만 없는 스타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