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구룡반도에서 장국영 찾기
위드 코로나로 바뀐지 얼마되지 않아 그런 것인지, 신규노선이라 그랬던 건지 설레는 마음으로 나의 몸을 실을 그레이터베이 항공기에는 체감 상 20명도 타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우리의 비행기는 아주 멋있게 이륙준비를 마쳤다.
'Ready for take off'
그렇게 나를 홍콩까지 데려다 줄 비행기는 천천히 이륙했고, 내가 있던 인천국제공항은 순식간에 단 하나의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작년 체코 해외봉사를 기점으로 6개월 동안 3개의 나라를 방문했던 터라 비행기가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여전히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설레는 감정은 숨기기 어려웠다.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던지라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어느새 시계바늘은 퇴근시간을 향해가고 있었다. 나의 숙소는 침사추이에 위치하여 있었기에, AEL을 타고 홍콩역에서 Tsuen Wan Line으로 갈아타야 했는데, 손에 들고 있는 든든한 구글 맵 녀석 덕분에 전혀 어렵지가 않았다. 처음 방문하는 나라, 지하철 역인데도 현지인처럼 퇴근하는 사람들의 틈에 섞여 침사추이로 향했다.
홍콩을 대표하는 많은 수식어 중 하나는 '세계에서 땅 값이 가장 비싼 도시'라는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만일 홍콩여행을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아마 바로 비싼 숙박비이지 않을까? 이전 여행에서는 안전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숙소는 항상 안전이 보장된 호텔로 예약을 했었다.
허나 난 홍콩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후덜덜한 홍콩의 숙박비는 때문이었기도하고, 두 번째는 근래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여행하기 전부터 이미 호감을 가지고 있던 홍콩이었기에 조금 더 가깝게 녹아들어 홍콩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번째도 안전, 두 번째도 안전! 밤을 세워가며, 두 눈이 뻑뻑해지기를 반복하여 수많은 곳을 검색하고 후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선정된 곳이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Hop inn'! 가격도 매우 괜찮았고, 여러 숙박 어플리케이션 속 다양한 나라의 숙박객들의 후기가 좋았으며, 게하 특성상 도미토리 방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성전용 방도 있어서 괜찮게 느껴졌다. (비교적 최근 방영된 ‘내 아이의 사생활’이란 프로그램에서 사랑이와 유토가 방문하기도 했다.)
공항에서 약 1시간을 이동하여 도착한 나의 첫 게스트하우스. 홍콩 영화에서만 보았던, 건물의 5층에 위치하여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내려 게하의 문을 여니 친절한 프런트직원이 나를 반겨주었다. 빠르게 짐을 풀고, 홍콩이 거리로 나갔다.
홍콩에서의 첫번째 퀘스트였던 게스트 하우스 찾는데 집중하여 곁눈질로만 보았던 홍콩의 풍경을 이제야 내 두 눈으로 가득 담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오늘 일정은 크게 없었다. 8시에 시작하는 심포트라이트를 보고 천천히 걸어 스타의 거리를 방문하는 일.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짐사저이 종루(시계탑)를 구경하며 돌아오는 것이었다. 오후에 도착해 관광지 3곳을 간다고?!라고 말할 수 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사실 홍콩이라는 곳은 워낙 작기도 하고(홍콩 전체 면적은 서울의 1.82배이지만, 산이 매우 많다) 그 3곳이 모두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뱃속에서 시계가 울렸다.
'꼬르륵...'
생각해 보니 이른 오전 인천국제공항 라운지에서 식사를 한 후, 계속 이동만 하여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체크인도 했겠다. 긴장도 풀렸겠다. 이때구나 하고 내 몸에서 배고픔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홍콩에서의 첫 음식메뉴를 고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완탕면! 사실 장국영이 자주갔던 완탕면 식당 '침사이키'를 가볼까했지만, 그곳은 센트럴에 위치하여있어 거리가 조금 있었기에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허름한 외관과 심플한 테이블 몇 개, 무심한 듯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홍콩연예인과 찍은 사진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잘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플했던 메뉴판을 보며 거침없이 Wonton with noodle를 주문한 후, 벽에 붙어있는 연예인 사진을 보며 저건 누구지.. 하며 얕은 홍콩 연예인의 지식을 총동원해 추측해보고 있었는데 그 스타가 누구인지도 알아내기 전에 홍콩느낌이 제대로 나는 이가 빠진 그릇에 완탕면이 담겨 나왔다.
벽에 걸린 스타는 추후에 차근히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나의 완탕면을 맞이하기로 했다.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한 입 먹었을 때의 기억, 완탕면과의 첫 만남을 딱 5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
'어우 기름져'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몇 번 먹고 나니 그 맛에 적응이 되었고, 완탕을 처음 먹었을 때의 감동은 정말 최고였다. 너무 맛있어서, 검정고무신의 기영이처럼 눈물이 주르륵 나올 뻔했으니까! 문득 드는 생각은 이가 빠진 그릇이 아니라 온전한 그릇에 담겨 나왔더라면 조금 서운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홍콩에서 처음 만들어진 중화요리용 소스인 XO가 각 테이블마다 놓여있었는데, 빨간 음식 러버인 한국인으로서 노란 완탕면 위에 XO소스를 살짜쿵 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든든하게 한 끼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이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현금을 챙기지 않은 것. 홍콩을 여행하는 여행객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옥포토스 카드는 버스, 페리, 지하철 등 각종 교통수단 부터 음식점, 마트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이 카드 하나면 홍콩여행 준비는 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생각으로 공항 ATM에서 인출한 돈을 몽땅 옥포토스 카드에 집어넣었는데, 사실 홍콩에서는 현금만 받는 곳이 꽤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현금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먹은 완탕이 그대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을 인출하여 지불하였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가게 주인분께 양해를 구한 상태라 차분히 걸어갔다와도 되었을 것 같은데 그당시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후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어찌저찌 계산을 잘 마치고 난 후,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7시. 심포니 오브라이트의 시간은 8시로 시간은 아주 여유로웠다. 나는 홍콩의 택시를 좋아하는데 택시가 지나가는 타이밍을 잘 맞추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하였고, 처음 방문했지만 뭔가 익숙한 홍콩의 곳곳을 둘러보려 고개를 가만히 두지 못하기도 하였다.
심포니 오브라이트를 관람하는 관광객들은 홍콩예술관을 지나야한다. 바로 그 앞이 심포니 오브라이트를 보기 위한 명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간 바로 뒤에는 5성급 호텔인 페닌슐라호텔이 위치하여 있는데 이곳이 내가 홍콩에서 장국영 흔적을 처음 찾았던 장소, 즉, 이번 여행의 첫 챕터였다. 장국영은 페닌슐라의 라운지인 '더 로비'의 천장을 홍콩의 자랑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 날은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천장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한 번 더 확인한 후 추후 이 곳에 꼭 숙박을 해보리라 다짐했다. 아쉬운 대로 페닌슐라의 외관을 나의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흔적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하여.
신호등을 건너 홍콩예술관 앞에 자리를 잡고 수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심포니 오브라이트를 기다렸다. 딱 8시 정각에 시작한 심포니 오브라이트.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금 시시했다 정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스타의 거리로 향했다. 심포니 오브라이트를 보던 곳에서 왼쪽으로 솔솔 불어오는 바닷가의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스타의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제일 먼저 만난 홍콩의 스타는 유가령, 물론 양조위의 아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아비정전의 서브 여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익숙했던 그분의 핸드프린팅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성룡, 영원한 수리진 장만옥 그리고 나의 최애영화인 화양연화의 주인공 양조위도 만났다. 심지어는 내가 좋아하는 홍콩영화의 주역 왕가위 감독의 자리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장국영의 자리. 내가 홍콩에서 찾은 그의 두 번째 흔적이었다. 스타의 거리가 조성되기 전, 그가 세상을 떠나 다른 배우들과 다르게 핸드프린팅 대신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은 핸드프린팅을 진행했을 텐데, 그것이라도 찾아 본 떠 만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너무 오바일까?) 물론 왕가위 감독의 자리에도 핸드프린팅 대신 얼굴이 새겨져 있긴 했지만, 그건 전제자체가 다르니까. 이젠 영원히 받을 수 없는 장국영의 핸드프린팅을 생각하며 그의 얼굴이 새겨진 부분을 수십 번 쓰다듬었다.
'아... 나의 스타가 없는 스타의 거리이구나...'
나에게 홍콩의 스타의 거리는 마음이 한편이 빈 것처럼 허하게 느껴졌다. 홍콩에서의 첫날밤. 왜인지 모르게 더욱 차갑게 내 코끝을 스쳤던 밤공기를 맡으며, 어렵사리 발걸음을 옮겨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침사추이 시계탑(짐사저이 종루)으로 향했다. 물론 그곳으로 향하는 20분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장국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44미터의 높이를 가진 침사추이 시계탑의 위엄이 상당했다. 시계탑 앞에 야자수들과 분수로 잘 꾸며진 공간들도 있어 관광객뿐 아니라 수 많은 홍콩시민들도 러닝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홍콩사람들은 러닝을 정말 좋아한다. 홍콩의 도심과 자연을 아우르는 러닝문화라니 너무 멋있다) 이곳은 1915년 침사추이 구룡-캔톤 철도의 종착역의 일부로 세워졌다고 한다. 장국영이 1956년생이니.. 장국영보다 41살이 많은 시계탑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홍콩의 모든 것을 장국영과 엮어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꽤나 웃기게 느껴지기도 했다.
철도의 종착역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역이지만, 이제는 홍콩 침사추이의 대표 건축물로 당당히 매김한 시계탑은 단단하게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매시간 종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추후에 방문하게 된다면 정각 시간에 맞춰 종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발 길을 돌려 숙소로 돌아가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문자였다. 보내준 사진을 자세히 보기 위해 시계탑 앞에 자리를 잡아 앉으니, 곧바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있었는데, 졸업한 지 근3년이 지났었지만 화면 속의 친구들은 여전히 고등학교시절의 모습으로 보였다. 아마 40년이 지나도 똑같게 느껴지겠지.
통화를 마친 후,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 출구로 향하던 중, 아까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 뭐가 그리도 좋은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또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후회하지 않게, 또 아쉽지 않게 온몸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의 홍콩을 온전히 느껴야겠다고.
LesliE’s Tip +
스타의 거리는 멋진 해변 산책로 위에 위치해 있다. 좋아하는 배우들의 핸드프린팅을 감상한 뒤, 카오룽 샹그릴라 방향으로 쭉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걸을수록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탁 트인 배경 속에서 한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일행과 함께라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혼자라면 하루의 일정을 복기하며 산책하는 것도 좋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스타벅스 스타의 거리점(Starbucks Avenue of Stars)’에 들러, 야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느긋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아주 훌륭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