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의 팬을 위한 추모공간, 샤틴 보선당 965호실

Chapter 2. 구룡반도에서 장국영 찾기

by LesliE

홍콩에는 장국영의 위패가 있는 추모 공간이 두 곳 있다. 첫 번째는 아마 16번째 글에서 소개하게 될 해피밸리의 동연각원이고, 이번 글에서 소개할 곳은 보선당 965호실이다.


해피밸리의 동연각원은 장국영의 가족들이 다녔던 절로, 그의 누나인 장녹평이 그를 위해 위패를 모신 곳이다. 굳이 나누자면 샤틴의 보선당보다는 조금 더 프라이빗한 추모 공간이다. 반면 샤틴에 위치한 보선당은 장국영의 매니저였던 진숙분 님께서 팬들을 위해 만든 추모 공간으로,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보선당은 샤틴이라는 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사원인 만불사 근처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4일 기준으로 한국에 와있는 양조위가 주인공이었던 영화 《무간도》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팬들 사이에서는 더욱 유명한 곳이다.


보선당에 가려면 침사추이에서 MTR을 타면 되는데, 환승을 한 번 해야 하지만 40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다른 명소들에 비해 꽤 멀리 위치해 있어 일정의 마지막 날로 잡아두었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져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곳은 침사추이나 해피밸리와 달리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지역으로, 현지인들의 일상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MTR 샤틴(Sha Tin)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데, 역을 나와 이케아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향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보선당 입구까지 가는 길은 골목골목을 지나야 했는데, 현지인들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졌다. 마침 날씨가 포근해지기 시작하던 3월 초였다.


왼쪽 사진 출처: Pofookhill

민트색 지붕이 인상적인 입구를 지나 들어서니 넓은 부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장국영의 위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왠지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에스컬레이터가 길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장국영의 위패가 모셔진 곳은 965호'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치채셨을 분들도 있겠지만, 이곳은 다른 분들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어 호실이 정말 많다.

그 중 장국영의 위패는 입구를 기준으로 맨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벽에 지도가 있으니 천천히 참고하며 걸어가면 된다. 운이 좋으면 오른쪽 숲에서 원숭이들이 뛰노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다 보니 어느새 965호에 도착해 있었고, 고개를 들어 안을 바라보니 중앙에 장국영의 위패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 금지옥엽의 그 모습이었다. 오른쪽은 장국영, 왼쪽은 가수 나문(로만 탐), 가운데는 배우 심전하(선덴샤)다. 왼쪽과 오른쪽은 생전 장국영과 친분이 두터웠던 분들로, 심전하의 딸이 "어머니와 생전에 친하셨던 두 분을 함께 모시면 어머니께서 덜 외로우실 것 같다"고 제안해 함께 위패가 모셔지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나도 엄마에게 그런 딸이 되어야지, 살아 계실 때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니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사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정말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구나, 우리 곁에 없구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심지어 홍콩에서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을 돌아다니는 순간에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었다.


연예인은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지만 실제로 만나기는 어려운 것처럼, 그가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셔진 그의 위패를 보고 나니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쩌면 나는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한 가지를 다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본떠 스스로를 레슬리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레슬리라는 이름에 절대 누가 되지 않겠다'고. 한참을 사진을 어루만지며, 그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드렸다.




오늘의 TMI

: 며칠 전, 메인 데스크탑이 고장이 나버렸다(속된 말로.. 맛이 가버렸다). 그 곳에는 90%이상 완성된 '56년생 장국영, 01년생 레슬리'의 원고가 담겨있었다. 아직 데스크탑을 고칠 수 있을지, 가능하더라도 데이터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잠시 휴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 한 독자 분께서 팔로우를 해주셨다. 그분 덕분에 이 글이 다시 쓰여지고 있다. 데스크탑이 복구된 뒤, 예전에 써두었던 보선당 글과 이 글을 비교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양조위의 무대 인사 티켓팅에 실패해,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4월 4일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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