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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홀에서 빛나는가

by 언덕파

파3의 짜릿함, 파5의 도전, 파4의 균형

라운드를 나가면 누구나 속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이 홀은 내 스타일이다.”

같은 코스라도 누군가에겐 설렘의 홀이고, 누군가에겐 지옥의 홀이 됩니다. 홀의 숫자는 단순히 거리만 말해주지 않습니다. 골퍼의 성향, 태도, 심리까지 드러내는 거울이죠. 보통 18홀 중 파3가 전후반 4개 홀, 파5도 전후반 4개 홀, 파4가 나머지 10개 홀로 구성되어 있죠. 홀 마다 디자인도 다르고 공략해야 하는 포인트도 제각각입니다. 거리 차이로 나눠지지만 짧다고 쉽고 길다고 반드시 어려운 건 아닙니다. 파3부터 살펴볼까요.


파3 티박스에 서는 순간, 긴장감이 확 올라갑니다. 거리로는 가장 짧지만, 압박감은 가장 큽니다. 왜냐고요? 한 번의 티샷으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잘 맞으면? 한 방에 온 그린. 그날 하루 기분이 달라집니다. 아이언 잘 치는 골퍼로 보이는 순간이죠. 그러나 잘못 맞으면? 계곡, 벙커, 워터해저드… 그리고 더블 보기가 순식간에 따라옵니다. 퍼팅까지 실수한다면 더블파도 쉽게 나오죠. 파3는 작은 홀 안에 희비가 압축돼 있습니다. 마치 인생의 ‘면접 순간’ 같다고 할까요. 준비한 건 짧은 시간이지만, 결과는 강력합니다. 특히 파3에는 모든 골퍼의 로망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바로 홀인원. 프로든 아마추어든 홀인원 한 번 해봤다는 사람은 주위에서 신화처럼 회자됩니다. 몇 년 동안 두고두고 안줏거리로 사용됩니다. 홀인원 하는 순간을 서너 번 목격했지만 정작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홀 1cm에 붙이기도 했고 한 번은 홀을 돌고 나온 적이 있지만 한 번에 들어간 적은 없어요. 실제 확률은 번개 맞는 것과 비슷하다지만, 우리는 매번 티샷을 하며 잠깐 상상합니다. “혹시 이번에?”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파3는 거리가 아니라, 순간 집중력의 무대다. 이 짧은 순간에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파5는 골퍼 본능이 폭발하는 홀입니다. 화이트 티 기준 450m 정도가 평균거리. 멀리, 더 멀리 보내고 싶은 욕망이 샘솟습니다. 티샷부터 힘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파5에서 버디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다행히 드라이버가 뻗어나가면 세컨드 샷에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를까? 끊을까?” 과감히 우드로 투온을 노리느냐, 아니면 안전하게 세 번째 샷을 위한 지점에 끊느냐. 이 선택이 그날 라운드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냅니다. 드라이버가 장타가 아니라면 보통은 끊어갑니다. 서드 샷으로 승부하죠. 그것도 각 샷이 잘 맞는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어쩌다 짧은 파 5라도 만나면 분기탱천합니다. 투온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쉽지 않은 게 골프입니다. 골프장 설계자는 짧은 거리 대신 함정을 만들어 놓거든요.

성공한 투온 → 동반자들 환호. 그날은 이미 ‘하이라이트 영상’ 확보.

실패한 무모한 도전 → 해저드, 러프, OB로 직행. 순식간에 더블.

아마추어가 가장 많이 흔들리는 곳이 바로 파5입니다. 드라이버는 잘 맞았는데, 두 번째 샷에서 “나도 한 번쯤은…” 하며 욕심이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 역시 괜히 질렀네.” 파5는 욕심과 전략의 줄다리기입니다. 어떤 날은 모험을 택해도 좋습니다. 실패해도 그게 라운드의 추억이 되니까요. 하지만 꾸준한 스코어를 원한다면, 냉정한 끊기 전략이 더 유리합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결국 삶이든 골프든 선택의 순간이 결과를 만듭니다. 프로들도 이 룰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타이거 우즈 전성기 시절, 파5는 그의 득점원이라고 불렸습니다. 장타와 아이언 정교함으로 투온을 쉽게 했으니까요. 반면 많은 투어 선수들은 파5에서 ‘안전한 쓰리온’을 기본 전략으로 삼습니다. 파5에서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안정적으로 스코어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리워드 리스크가 확실한 홀이 바로 파5입니다. 자, 이제 파4홀로 넘어가 보시죠.


라운드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건 파 4입니다. 전체 홀의 절반 이상이 파4니까요. 그래서 파4는 골프의 ‘기준선’ 같은 존재입니다. 골퍼의 평균적인 실력을 드러내는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라이버 티샷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립니다. 페어웨이를 지키면 파, 약간 빗나가면 보기 혹은 잘 막으면 파, 크게 흔들리면 더블이나 그 이상. 파4는 늘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변화무쌍한 홀입니다. 아마추어에게 파4는 훈련과 습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입니다.

티샷이 안정적인 사람은 꾸준히 파4에서 스코어를 관리합니다.

티샷이 흔들리는 사람은 파4에서 대부분 무너집니다.

파4는 인생으로 치면 ‘일상의 장면’ 같습니다.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고, 무모한 도전도 아니지만, 결국 우리의 성적표를 결정짓는 건 이런 일상의 반복입니다. 모든 홀이 마찬가지겠지만 파4에서는 티샷이 매우 중요합니다. 안정적인 티샷을 구사하는 골퍼라면 파4에서 크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골퍼마다 좋아하는 홀이 다릅니다. 파3 성적이 좋은 골퍼가 있고, 파5에서 유독 버디를 잘 낚는 골퍼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무심하게 화려하지 않게 치는데 파4 스코어가 안정적인 골퍼도 있고요.

파3를 좋아하는 사람 → 순간 집중력에 강하고, 한 방의 쾌감을 즐기는 성향.

파5를 좋아하는 사람 → 도전을 즐기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

파4를 좋아하는 사람 → 균형을 중시하고, 안정감을 추구하는 성향.

저는 라운드 중 이런 질문을 자주 합니다. “나는 어떤 홀에서 가장 빛나는가?” 답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골프의 재미 아닐까요. 최근 저는 파3홀에 서면 묘한 긴장과 기대가 교차합니다. 성적도 좋은 편입니다. 어떤 골퍼는 파3만 오면 오히려 위축됩니다. “짧으니까 당연히 온 그린 해야지”라는 압박감 때문이죠. 또 어떤 골퍼는 파5만 오면 무조건 질러봅니다. 결과가 어찌 되든, 일단 스윙 후 시원한 쾌감이 먼저인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파4에서 하루 기분이 결정됩니다. 첫 홀이 대부분 파4로 시작하니까요. 첫 홀부터 무너진다? 파급력이 꽤 갑니다. “오늘 드라이버 괜찮네?” 하면 스코어가 술술 풀리고,“아… 오늘 드라이버 왜 이래” 하면 끝날 때까지 골머리를 앓습니다.


골프와 삶을 억지로 이어 붙일 필요는 없지만, 때때로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3처럼, 인생에도 짧지만 임팩트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중요한 발표, 시험, 첫 만남.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게 결정됩니다. 파5처럼, 길고 먼 여정을 걸어야 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멀리 보고 전략을 세워야 버틸 수 있죠. 파4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이 결국 내 삶의 평균치를 만듭니다. 골프가 그렇듯, 삶도 세 가지 홀의 조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라운드 중 혹은 오늘 일상 중 당신은 어떤 홀에서 가장 빛나셨나요? 저는 파5에서 괜히 지르고, 파4에서 후회하다가, 파3에서 위안받는… 그런 언덕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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