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저축
집에서 무슨 일을 하든 배경으로 숲 속 신선한 공기처럼 음악이 흐르게 하고 산다. 나의 음악 메신저는 KBS FM 라디오 방송이다. 방송을 통해 공급되는 음악을 오래오래 보물처럼, 영양제처럼 간직하며 향유하고 있다. 이것은 4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나의 1번 취미이기도 하지만 내가 고요하게 안정감 누리며 사는 생활 비결이기도 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곡이 내 발목을 잡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라’고 청하면, 나는 온전히 그 한 곡의 음악에 심취하여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사람으로 순간에 변신한다. 돌이켜 보면, 음악을 들으면서 공감하고 기뻐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나의 능력이었다.
오늘도 불현듯 어떤 소리가 나를 사로잡는다. 20대에 내 영혼에 울림을 주었던 곡, 때로 눈물 나도록 많이 감동했던 곡,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번호 61> 역시 변함없이 나의 동작을 멈추게 한다.
‘저 애절하면서 힘찬 바이올린 선율은 도화지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 생각하니 내가 젊은 날 미쳐 있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독서에 대한 후회를 언급한 바 있으나 그 대신 음악감상에 취해 살았던 것이다. 그 당시 음악은 심리적 지주였고 모든 것이었으며 그것을 통해 내 정신과 육체는 온전할 수 있었고 어둠과 고통과 우울 대신 늘 기쁨에 충만해 있었다. 구세주였다. 요즘 말로 취준생이었던 그 답답한 시기, 나는 본격적으로 더욱 진지하게 서양 고전음악과 사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친분을 유지하며 가족처럼, 음식처럼 생활 자체가 되었다.
대학교 졸업 후 2~3 년, 실업의 침체기에 오로지 음악적 생활로 그 시기를 극복했으며 그때부터 “ 기쁘다, 감사하다 “라는 단어를 입에 쉽게 올리게 되었다. 다소 아픔이었던 불확실의 시기에 종교 같은 존재로 나를 지켜 주었고 영혼에 환희의 두드림을 주고 삶에 감동과 평화를 안착시켜 주었다. 지금도 그 당시 수집하여 소중히 여기던 LP 레코드판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낡고 초라하지만 귀중한 내 젊은 날의 흔적이며 자화상이다. 이후 지인들에게 전도하듯이 클래식 음악을 권유해 보기도 했으나 사람마다 기호, 취향이 다르므로 그것은 선택사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게 좋은 것이 상대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으니까..
2월 들어 우리 고향에는 눈이 자주 내린다. 간밤에 눈이 많이 쌓였다. 그에 따라 오늘 스케줄은 모두 취소되었고 덕분에 20대 초반 큰 울림을 선사했던 베토벤의 그 곡과 의미 있는 소통을 했다. 소복소복 눈 내리는 풍경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한 모금 베어 무는 낭만 커피..
음악으로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는 베토벤도, 방송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