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개꿈말고, 꽃 꿈꿔야지.
요즘 나는 잠결에도 생각을 한다. 어떤 단어나 문장 하나가 생각나면 계속 되풀이되며 생각이 난다. 잠이 들다가도, 깨기를 반복한다. 분명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지만, 머릿속이 의식할 수 있는 현실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반은 깨어있고 반은 잔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잠이 들면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심각하게 지각을 했다. 화들짝 놀라 정신없이 일어나 핸드폰을 찾았다.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솔직히 이야기했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부랴 부랴 서둘러 움직였다. 그런데 당황한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천하태평이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얼굴에는 미소가 있고, 여유로운 그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갑자기 내가 뛰고 있다. 그들은 빠르게 달리는 열차 안에 있는데, 흔들림도 미동도 없어 보인다. 편안한 좌석에 앉아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다. 나는 달리는 열차를 따라잡기 위해 뛰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기차는 따라잡을 수 있을 듯 없을 듯 앞에 있지만, 기차는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기차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발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 혼자 슬로우로 움직인다. 발이 너무 무겁다.
나 혼자 급박해 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당황한 것 같았다. 동공이 확대되어 계속 흔들리고 있었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여유 없는 공황상태 같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나약해 보였고, 위축되어 있었다.
얼굴은 푸석했고, 생기가 없어 보였다.
눈물인지 땀인지 범벅이 되어 헝클어진 머리와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이 보였다. 정신도 없고 초라해 보였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헐떡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어 기차에 올라타게 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는 척을 하는 이들도 없었다. 그냥 나는 혼자였다. 야속했다. 신경질이 났다.
아침 알람이 울리자, 이불속에서 고요한 외침이 들렸다.
"이런 개꿈 같으니라고."
평소와 다름없이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며 일어났다. 화장실을 갔다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직도 잠결인 것 같은 내상태를 확인한다.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해도 온몸이 뻣뻣하다. 퉁퉁 부어버린 손가락이 얄궂다. 오른손 중지는 한 번에 펴지지도 않고 아프다. 손가락 마디가 굵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내가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가. 또 여성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불뚝 성질이 난다. 화장실로 가서 양치를 하고 고양이 세수를 한다. 잠이 깨자 손가락도 이제 한 번에 펴진다. 손가락이 대수롭지 않게 펴지는 것처럼,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다. 그것이 대수롭지 않으면 또 어쩌겠나 싶다.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문득 일을 하다가, 개꿈이 생각났다.
다른 이들의 눈빛, 웃고 있었던 그들의 모습, 커피 향이 날 것 같은 기차 안, 그들의 깨끗한 옷차림, 저 멀리 보였던 푸른 나무들, 흔들림 없는 여유 있는 그들의 모습까지.
그리고 나의 핏대선 눈, 헝클어진 머리. 더러운 작업복. 머리가 터질 듯 내쉬었던 들숨과 날숨. 기차가 보이는 풍경, 그 뒤에 느린 것 같지만 열심히 뛰고 있는 내 뒷모습. 축 처져 힘없어 보이는 내 어깨. 닮아빠진 내 신발과 내 얼굴표정까지..
갑자기 머리가 띵~ 했다.
이유 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 꿈이라고.."
흐르는 눈물이 주체가 안되어, 땅바닥에 앉아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그것도 고객이 행여나 올까 싶어 눈치 보며 마음을 졸이면서....
누가 전화라도 하면 내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릴까 봐, 음, 음 헛기침을 해가면서...
그냥 이유 없는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알 수 없는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힘이 드나 보다 생각했다.
그냥 야속하다는 마음이 들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냥 맘에 들지 않는 이 상황이 싫다 생각했다.
그냥 조금 우울하다 생각했다.
그냥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또,
그냥 누가 날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냥 나를 알아주기만 해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냥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냥 아이들과 깔깔 웃고 싶었다.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실컷 울고 나니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그 책 제목 한번 잘 지은 듯하다. 한 번씩 생각이 나는 책 제목이다. 울고 나서 배고픈 것 같으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진 것 같다. 힘들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히얀하리만큼 가뿐하다. 언제 힘들었나 싶다.
퇴근길 엄마에게 전화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한다. 아직까지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이 나를 철없는 어른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 감정의 책임감을 그렇게 집에 계신 엄마 뒤에 숨어서 숨기고 또 감추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엄마라는 존재는 참 대단하다.
집에 가면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잠깐 그렇게 세상과 집안을 분리시켜, 집으로 도망가듯 들어가 숨을 쉬는 것 같다. 몸집을 키워서 외출했다가 들어올 땐 다시 집에 맞는 사이즈에 맞게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커진 몸짓을 움직이기 위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돌아온 것 같다.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보고 싶은 아이들과 부비부비를 했다. 후다닥 씻고 식탁에 앉았다.
예쁜 그릇에 지금 막 만든 반찬과 국, 밥을 본다. 얼굴에 로션이라도 바르고 있으면 국이 식는다고 타박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린다. 집밥 향기에 취해 나에게 오는 안도감은 나를 다시 웃게 한다.
무겁지만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우울해도 웃을 수 있는 기분이다.
슬프지만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잘 먹었습니다."
이 한마디로 나는 오늘의 삶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내일의 삶을 맞이할 단단한 마음을 준비한다.
"오늘은 개꿈 말고, 꽃 꿈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