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눈을 시작하면서 나는 '대단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 대체로 여성이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고객들이 종종 '여자 혼자 오시나요?'라고 묻고, 시공을 마친 후에는 '대단하시네요.'라고 감탄을 한다.
줄눈시공 장비를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청소하러 가세요?'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줄눈 하러 가세요?'라는 말을 듣기는 어렵다. 어쩌면 아직 까지는 여자 혼자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그림일 것이다. 난 그런 시선을 '여자가 더 잘한다'로 보란 듯이 증명하려고 한다.
작업복을 입을 때도, 줄눈자국이 묻어있는 옷을 입는 나만의 고집스러운 규칙이 존재한다. 줄눈시공은 기계로 찍어내는 완제품이 아니라 내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핸드메이드 작업이다. 줄눈의 시공능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단순히 힘만으로 시공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고된 일이라고 해도 성별의 중요도는 크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손끝이 야무지고 좀 더 섬세한 여자가 유리한 측면도 있다. 특히 줄눈시공은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는데, 신체 구조상 여성들이 이 자세에 더 수월하게 적응하기도 한다. 처음 줄눈을 시작했을 때는 매일 쪼그려 앉아 작업하다 보니 엄지발가락이 6개월 동안 저렸던 기억이 난다. 우스갯소리로 오리걸음 오래 걷기 대회가 있다면 1등 할 자신이 있을 정도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도 다녀오며 최소한 힘든 일을 한 번이상 해보지 않는가. 일이 힘들고 안 힘들고를 떠나서 줄눈을 하고 싶다고 접근성이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훨씬 쉬울 것이리라.
혹여나 나를 신뢰를 못한다는 것이 '여자'라는 이유라면 힘이 빠진다. 한때는 여자후배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후배를 양성하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다. 내가 롤모델이 되어 승승장구하다 보면 여자들도 더 많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다. 물론 현업에 여자분들 있는 경우는 있지만 보통 메인 기공으로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건 사회적인 시선이나 고정관념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한 번은 여자 혼자 왔다며 하청을 주지 않고 대표가 직접 온다고 했는데 '하청업체 아니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냐' 대놓고 무례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상황은 자주 겪는 일이라 기분이 좀 상해도 이력이 나있는 터라, 밑작업하는 거 지켜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입금하지 마시라 답변하고 내일을 했다.
결국 '대단하시네요'라는 말과 함께 시공대금을 입금하고. 나중에 소개까지 연결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종종 '여자혼자 어떻게 해요, '라고 물어오면 '그러게요. 남자들이 요것도 힘들다고 못 버텨서 혼자 해요. 시공 후 맘에 드시면 어디 실한 남자직원 소개해주세요'라고 농담을 건넬 정도가 되었지만, 단지 한 번씩 맥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는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었다. 이제는 나에게 '대단하다'라는 말을 하면 '넌 1등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고, 앞으로 더 올라갈 곳 없는 정상에서 끊임없는 질주를 하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대단한 여자사람, 줄눈쟁이로 홀로 끝까지 살아남아야겠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또 어떤 도전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지금 해왔던 그대로 계속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야겠다.
누구는 계속해서 '부럽다'라고 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