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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펙트 Oct 25. 2024

[‘일’기]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온 업적기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벌써 10년째, 매년 이 맘 때면 하는 일이 있다.


‘업적 기술서 작성‘


인사 평가를 위해 올 한 해 회사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그 성과를 입력해야 한다. 벌써 10년째인데 해가 갈수록 귀찮음만 더해질 뿐 막막하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똑같다.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는 했던 일을 쭈욱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기여한 성과, 혹은 주어진 업무 외에 팀이나 회사를 위해 기여한 부분을 더 부각해서 적으라는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나 막막함도 잠시, 이내 ‘이거 뭐 공들여 써봤자 승진 대상자 먼저 챙겨주고, 자기 라인한테 좋은 점수 다 나눠주고 남는 평고과나 겨우 줄텐데 대충 쓰련다’ 하는 마음이 앞선달까. 두려움을 시니컬함으로 포장하는 것처럼 보이나? 하지만 우리나라 대다수 회사에서의 인사 평가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니컬해진다고 엄청 쿨하게 막 갈기지도 못한다.


아무튼 평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올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시간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인지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가 정말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한눈에 보니 더 실감된다. 그냥 들이받고 이 회사 뜰까 갈등했던 수많은 나날들이여… 그리고 클리셰처럼 뒤이어 드는 생각.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회사에 기여하는 성과도 성과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떤 것을 얻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인스타그램이나 커리어 관련 콘텐츠에 등장하는 멋진 분들처럼 “ㅇㅇㅇ개선을 통해 유입률 ㅁㅁㅁ% 증가, 이때 확신했죠. 본질을 파고들어야 하는구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이었어요.”라는 인사이트 넘치는 한 문장 정도는 뽑아 내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정성적인 성장이야 항상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직에 속해 일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은은하게 꿈꾸고 있는, 호명사회를 살아가야하는 핵개인이 추구미인 나로서는 기술적인 혹은 전문적인 부분에서의 성장도 굉장히 중요한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이모작 농사를 하려면 밭을 갈아야 하는데 곡괭이가 뭔지 모르겠달까?


프로젝트를 분해하고, 연결하고, 씹고 뜯고 맛보다 보면 뾰족한 무언가가 나타날까? 지난 9년의 이맘때처럼 남은 기간 앞으로를 위해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다짐한다. 부디 이번엔 다짐만이 아니라 진짜 실천에 옮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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