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펭귄의 월동용품

by 이성규

曉寒虛閣生淸籟(효한허각생청뢰)

추운 새벽 맑은 바람 빈 집에 일고

夕霽長天卷駮雲(석제장천권박운)

석양에 눈 그치니 구름장이 걷히구나

門外幾人皆墮指(문외기인개타지)

문밖의 사람들 손이 모두 얼었는데

愧予猶擁綺羅薰(괴여유옹기라훈)

혼자 비단 이불 덮은 내가 부끄럽구나


十二月邊山馬上作(십이월변산마상작) / 이규보


고려 후기의 문신이었던 지은이가 목재를 조달하는 작목사로 변산에 부임했을 때 겨울 추위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보며 지은 시다. 비록 몸은 따뜻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은 지은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추운 겨울에 솔로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월동용품은 몸과 마음을 모두 따뜻하게 해주는 연인일 것이다. 사람을 제외한 영장류 중 가장 북쪽에 서식하는 일본원숭이에게도 매우 뛰어난 성능을 가진 월동용품이 있다. 바로 야외온천이다.


털이 그리 긴 편도 아니고 두터운 피하지방을 지니지도 않은 일본원숭이들은 온천에 몸을 담근 채 혹한을 이겨낸다. 그런데 이 뛰어난 월동용품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모두가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원숭이들만 들어간다는 점이다.


나머지 원숭이들은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몸을 덜덜 떨며 동료들이 따뜻하게 온천욕을 즐기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온천 속에 암컷과 새끼 원숭이도 있는 걸로 보아 힘이 센 개체만 들어갈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온천수의 온도가 42℃이니 바깥과 온천 안의 62℃라는 온도 차이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바깥쪽의 원숭이들은 온천 안의 빈자리를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


그것은 원숭이들의 경우 위계질서가 뚜렷한 계급사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온천 안에는 계급이 높은 원숭이들만 들어갈 수 있으며, 아무리 빈자리가 많아도 계급이 낮은 서민 원숭이들은 온천 안으로 손가락 하나 들여놓을 수 없다. 집단의 공멸을 막기 위한 제재라고는 하나, 우리가 보기엔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추운 곳에 사는 남극의 황제펭귄들이 가진 월동용품은 좀 색다르다. 그들의 월동용품이란 서로의 몸을 바짝 밀착시키는 행동이다. 그러면 가장 안쪽에 있는 개체들의 경우 바깥쪽보다 무려 10도나 따뜻하게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가장 바깥쪽에 서서 휘몰아치는 영하 50도의 눈바람을 견뎌내야 하는 펭귄들이다. 그러나 가장자리의 펭귄에게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가장 아늑한 자리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처럼 서로 몸을 바짝 붙인 채 자리를 교대하는 것을 허들링(Huddling)이라 하는데, 황제펭귄 무리는 허들링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서로의 체온을 유지한다. 바깥쪽에 있던 펭귄이 무리 가운데를 향해 끼어드는 모습이 인간들의 눈엔 그저 추위를 피하기 위한 서로 간의 다툼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수학모델을 이용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 같은 허들링이 황제펭귄 집단 전체를 가장 따뜻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식임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일본원숭이가 아니라 황제펭귄처럼 추위를 나는 이웃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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