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처럼 낙화한 노폐물들이 나를 재웠다.
이탈리아에 갔던 여름 나는 종종 점심시간을 놓치곤 했다. 이유는 그들의 시에스타 때문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여름의 한낮 더위를 피해 잠을 잤다. 그들이 낮잠을 자고 뜨거운 숨을 고르는 동안 식당은 문을 닫았다. 지지 않는 태양 아래 사는 듯 온종일을 낮 시간에 들일 만한 품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밥때를 한참 넘을 때까지 피렌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낮 동안 흘린 땀방울을 모아 저녁의 와인으로 치하했다. 그다음 해 여름 스페인을 여행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시에스타에 '당하지' 않았다. 시에스타를 피해 치열하게 점심 계획을 짰으며 그들이 자는 동안 열심히 돌아다녔다. 한여름의 태양은 뜨거웠고 나는 여전히 저항했다. 지지 않기 위해.
태양도 하루에 한 번은 지건만. 난 태양에게 질 줄도 몰랐고 태양이 하루에 한 번씩은 진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했다. 태양에 지지 않던 나는 언제까지 싱그러울 수 없는 낙엽처럼 스러졌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겨울이 왔기 때문이다, 라고 말해도 좋을까.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래서 낙엽이 떨어졌다. 낙엽. 겨울이 다가와서 낙엽이 들었다. 나무의 이파리들이 겨울에 낙엽이 되는 이유는 일조량이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무가 생존하기 위한 양분 생산의 과정, 광합성 작용에 필요한 것이 바로 햇빛인데, 이 햇빛의 양이 겨울엔 적어져 나무는 일조량이 적은 겨우내 살아남기 위해 잎을 떨어뜨려 생존의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낙엽을 만들지 않는 소나무조차 새잎이 나면 오래된 잎은 떨어진다.
생명엔 흐름이 있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고,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나무에도 나뭇잎에도 생을 위한 흐름이 있다. 낮잠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낮잠을 자는 때는 낮잠을 자야만 하는 때는 반드시 도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일이라도.
그해 여름, 나는 내내 잤다. 자고, 또 자고, 다시 잤다. 피곤해서 자고 힘들어 자고 지쳐서 잤다. 잠은 많은 것을 생략할 수 있게 했다. 눈이 떠 있는 동안 마지못해 떠올리는 잊고 싶은 순간을 지워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곧 눈을 감았다. 눈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괴롭히는 나의 비루함과 쪼잔함과 하찮음을 무시하고, 심연으로 떨어지는 자존심과 하늘 높이 치솟는 증오심을 외면했다. 그러다 보니 수면 상태는 질보다 양인 경우가 많아 내가 잊고자 했던 감정의 노폐물들은 꿈속에서 막돼먹지 않은 현실로 치환되어 나타나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잤다. 꿈속의 환상이 바닥에 처박힌 현실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낙엽처럼 낙화한 노폐물들이 나를 재웠다. 아무리 저항해도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듯이. 아무리 저항해도 저항하지 않는 것이 이로운 때도 있다는 듯이. 그 여름, 내 마음은 온통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