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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밑 Nov 18. 2024

여름과 북향 (1)

나는 모든 탓을 북향에 돌리기 시작했다.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걷기. 2. 그래서 햇볕을 쬐기. 아침 햇살이 뇌를 깨우고 생활에 필요한 호르몬들을 활성화한다.


  북향의 집은 하염없이 어두웠다.



  언젠가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고양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면 늘 어딘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고 혓바닥으로 자기의 입을 훔치며 햇볕을 쬐는 고양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 모습은 고양이에 대한 어떠한 심상을 형성할 정도로 과연 아름다웠고, 생명이 있든 없든 피사체는 햇빛과 함께 할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생긴 이유는 그가 자는 동안 쬐는 햇볕이 그를 아름답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잠들어 있는 여름 내내 나는 분명 망가지고 있었다. 그게 외적으로 드러났다. 세간의 기준에 부합하는 미와 예쁨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인상에 관한 것이다. 얼굴에 생기가 사라지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겼으며, 피부 트러블이 잦아들지 않았다. 누구보다 많이 잠을 잤지만 누구보다 잠을 못 잔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북향의 이 집은 볕 좋은 날의 아침을 제외하곤 거의 볕이 들지 않았고,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엔 항상 어두웠다. 날 좋은 날이면 최의 서향집에 달려가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햇볕이 쏟아지는 자리에 얼굴을 뉘곤 했다. 그러면서 항상, 나는 고양이가 되고 싶어. 햇살을 맞으며 잠들고 싶어, 를 웅얼거리곤 했다.



  고양이.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그 말은 가끔 혹은 자주 진심이었다. 사람을 경계하고 또 사람을 사랑하는 고양이처럼, 나는 누구보다 사람을 싫어하고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했다. 길냥이들이 그러하듯 자기에게 시선을 던지는 사람을 멀찌감치에서 감지하고 있다가 가까이 올 듯하면 누구보다 빨리 도망치곤 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고양이는 그래도 괜찮지만 나는 괜찮지 않다는 것이다. 난 고양이와 달리 욕을 먹게 되고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게 되고 변명할 거리는 없다. 실제로 난 그들을 싫어하고 그로 인해 어떤 욕을 먹게 되는 건 그들을 싫어하는 감정에 대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곧이어 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약 4년간 북향집에 사는 바람에 마냥 긍정적이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햇볕을 받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밝은 에너지는 고갈되고 종국에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라고. 나는 모든 탓을 북향에 돌리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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