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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밑 Nov 24. 2024

여름과 북향 (2)

다 북향 때문이다.


앞선 내용

https://brunch.co.kr/@fb0bb3be937f42c/41


  오랜 시간 몸담고 있던 조직이 있었다. 맡았던 프로젝트가 있었고 다른 팀의 협조가 필요했었다. 다 말할 순 없지만 어떤 팀들에게는 껄끄러운 사안이었다. 내가 속한 팀의 리더는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어느 날의 전체 회의 시간, 나를 판단하는 몇백 개의 눈을 감당하며 협조를 부탁했다.


  연단에 서서 구구절절 설명했고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말 그대로 ‘오해’이므로- 부탁했으나, 어림없었다. 난 사람의 선함과 공정함과 옳음을 무척이나 믿었으나 보편의 사람들은 그렇게 선하지도 공정하지도 옳음을 따르지도 않았다. 사람들에게 나는 그냥 자기 팀을 공격하는 사람이었다. 어느샌가 난 내부고발자 그 비슷한 어떤 인물이 되어 있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직 전체에 전달된 연락망으로 연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적인 번호로 연락했다며 트집을 잡았다. 문제를 좌시하지 않겠다느니, 심각한 문제로 삼겠다느니. 여하튼 나는 ‘문제’가 되어 있었다. 한편 팀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제공되었고 나는 욕받이와 분풀이 대상이 되어 마모되었다. 팀원들은 아무 일 없다는 식으로 굴었다. 그래서 난 다만 내가 욕을 먹어서 잘 끝났으니 그걸로 된 줄 알았다.


  팀 사무실 벽에 붙여 놓은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거기엔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있었다. 그들이 언제 그 사진을 찍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 북향 때문이다.



  사계절 중 낮이 긴 여름. 기를 써서 밤을 찾았다.


  적어도 밤에는 집안의 어둠을 잊을 수 있었다. 밤엔 원래 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가 떨어지고 다시 해가 뜨기 직전의 창밖은 변함없이 어두웠다. 그 시간만큼은 북향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난 그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밤이기를 바라며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밤은 지독히도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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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로서는 여행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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