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https://brunch.co.kr/@35b80a466a3347f/1
나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통이 있다
태어났을 때 약한 몸으로 태어나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부모님의 사정상 나는 잠시 시골 할머니댁에 맡겨졌다.
할머니와 삼촌 두 분이서 나를 돌봐주고 있을 당시였다.
말도 못 하는 갓난아기. 그게 그 당시 나의 모습이었다.
얌전히 누워있던 아이가 경기를 일으키며 얼굴이 창백해져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당황한 삼촌이 나를 업고 시골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나의 기억 속에 없는 첫 번째 굴곡이었다.
지금도 그때 장면을 나는 모른다.
나에게 첫 번째 굴곡이었지만, 첫 번째 고통은 아니었다.
고통은 부모님과 삼촌, 할머니의 것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할 무렵 우리 집안은 갑자기 형편이 안 좋아졌다.
친구에게 보증을 서준 아버지, 하지만 친구는 도망갔다.
친구가 갖고 있던 막대한 빚은 우리 집으로 왔다.
나름 지방 도시 시내에서 유복히 지냈던 우리는 변두리로 이사를 갔다.
불편함이라고는 느낄 수 없던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가족 세 명이 한 방에서 잘 수밖에 없던 집, 바퀴벌레가 나오던 집 그런 집이었다.
불편한 집, 친구를 부를 수 없던 집. 그 당시 나의 기억이다.
이 또한, 두 번째 굴곡 이었지만, 첫 번째 고통은 아니었다.
고통은 부모님의 것이었다.
5년을 살고 형편이 괜찮아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나의 유년기의 푸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