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에 잘린 자의 서글픈 스토리
"...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져서..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회의실에서 나눈 짧은 10분의 대화로 나는 3년 넘게 일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 회사에 처음 들어온 건 27살의 나이였다.
20대 초 중반 동안 프리랜서의 삶을 살던 나에게 사무직이란 직업은 큰 도전이었고
과연 가만히 앉아서 주어지는 일을 하는 것이
나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자에게 가능한 것인가 라는 두려움을 안겨주는 직업이었다.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다.
사람들의 압박을 받아가며 윗사람 그리고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주어진 자리와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있어야 한다는 점
내가 하고 싶은 말 또는 행동이 있더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점
물론 프리랜서 직업을 가졌을 때도 필요한 애티튜드이기는 하지만
집에서의 가족들보다 모르는 사람들과 하루에 더 많은 시간을 매일 함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견뎠었다.
사람들의 압박과 눈치를 받아가면서도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려 노력했고
주어진 자리와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키는 법을 깨우쳤고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버텨온 3년이라는 시간.
그러고 나에게 남은 건 그렇게 지켜보려 했던 내 자리를 정리할 상자와
주섬주섬 챙겨가야 할 내 소지품들,
바로 어제 직원들과 다 같이 종아리 붓기완화를 위해 산 지압 슬리퍼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동료가 구매해 어떤지 한 번 며칠 두고 보고 나도 구매하려 했던 마우스라도 안 샀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마저 구매했다면 진지하게 퇴사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해봐 달라고 울부짖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뭐 해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고민과 함께
"아 이제 조금은 쉴 수 있는 건가?" 하는 안도감이 같이 들었다.
나는 연차 개수가 많이 남아 연차를 제외하니 한 달 정도를 유급으로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연차가 남아있어 이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통보받은 당일 날 오전 근무까지만 하기로 결정을 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을 싸며 그간 3년 동안 함께 해온 내 책상과 자리를 둘러보았다.
어떤 것부터 짐을 싸야 할까도 있지만 어떤 것부터 기억해둬야 할까도 내심 있었다.
회사원은 항상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고 하던데,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내가 만약 퇴사를 한다고 할지어도 나는 당당하고 홀가분하게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권고사직을 당해보니, 남아있는 직원분들과 앞으로 매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과
일주일에 5일간의 내 루틴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생각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밥 한 끼라도 같이 먹고 가"
나랑 회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차장님께서 애써 눈물을 감추시며 하신 말씀.
근데 이내 거절했다.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밥 먹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고
갑자기 소식을 접한 직원들 또한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울적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통보 같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물을 보인 직원분도 계셨고
씁쓸한 미소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해 주는 직원분도 계셨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날 것 같다며
혹시나 마주칠까 책상 위의 거울도 돌려놓은 차장님이었다.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뒤로하고 짐을 모두 챙겨 회사를 떠났다.
11월의 날씨 같지 않게 따뜻한 햇살이 나를 감쌌고, 내 울적한 마음을 아는지 살살 부는 바람도 나름 상쾌했다.
아직 갚아야 할 할부가 많고 매달 넣어야 하는 적금이 있으며 나가야 하는 생활비가 있지만 괜찮았다.
나에겐 한 달 치의 월급과 퇴직금 그리고 실업급여가 있으니깐.
나는 앞으로 3개월 정도 쉬어볼 계획이다.
학생도 45분 공부하고 15분의 쉬는 시간을 가지는데,
3년간 일한 나에게 3개월 정도의 휴식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다.
쉬는 기간 동안 내 다양한 취미 생활과 크리에이터의 일을 좀 더 다져보려 한다.
공부하고 있는 일본어 시험도 더 열심히 준비해 볼 계획이며,
새로운 구직활동을 해 나 스스로의 가치도 높여보려 한다.
하지만 그전에 한 달은 무작정 놀기만 해 보면 어떨까?
그간 열심히 달려왔으니깐. 흐르는 물처럼 쉴 수 있을 때 마음껏 쉬는 것 또한 중요하니깐.
퇴사에 중점을 두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중점을 맞춰보려 한다.
누가 보면 방황한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방황이 맞다.
그냥 지금 방황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지금의 시간을 즐기라는
우리 사촌언니의 말에 따라 이 시간을 여유롭게 즐겨볼 계획이다.
내일의 하루 더 성장해 있을, 그리고 좀 더 편안해져 있을 나를 위해.
취준생분들 우리 모두 파이팅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