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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야 Nov 21. 2024

불안한 몸의 경고

서윤은 방금까지 분위기와는 다른 태도로 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손하는 이유를 물어보려 했지만 이어 푸근한 인상의 대표가 당당한 곰처럼 케이크를 들고 들어와 물어보지 못했다. 트렌드 리프트의 대표 최종필에게 윤손하는 그 누구보다 특별한 직원이었다. 손하와 함께 입사한 디자인팀 동갑내기 동기 준호에게는 약간 쌀쌀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건 박 팀장님의 성격이 한몫한다 생각하는 대표였다. 둘이 함께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이가 24세 사회에 막 발을 들인 아기들이었다. 19년이라는 시간,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하여 회사를 이끈 주연이 바로 윤손하와 박준호 2인이기 때문이다. 손하의 앳된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대표에겐 나이가 들어도 아기같이 보이는 건 여전했다.


“우리 윤 팀장 생일인데, 초는 불고 시작해야지 다들 뭐 하고 서 있어요.”


호탕한 웃음으로 불룩 나온 배가 리듬에 맞춰 들썩이며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이 주임과 한 사원 그리고 김 대리까지 순차적으로 대표에게 인사를 건네자 어느새 케이크 상자를 들고 마케팅 부서 코앞까지 도착한 대표였다. 19년간 매년 빠짐없이 손하의 생일 케이크 담당을 자초하던 대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장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를 준비해 주섬주섬 상자 위로 케이크를 올렸다.



“내가 윤손하 생일 케이크 담당인데 빠지면 되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는 모양새를 펼치는 대표였다. 그 순간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또 초를 찾고 계시는구나’ 하고 말이다. 한 사원의 자리로 가 케이크를 안전히 올려놓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어 본격적으로 구매한 초를 찾기 시작했다. 그 후 대표의 “찾았다!”라는 말과 함께 두 개의 초 포장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우리 윤 팀장, 생일 축하하고 이번 계약 건도 고생 많았어.”

“감사합니다.”

“병아리가 언제 이렇게 든든한 팀장이 됐대.”

“옆 부서 누구랑 달리, 이제 유부녀예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대표는 4와 3이 들어있는 초를 꺼내 케이크에 정성스레 하나씩 꼽았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라이터를 대표에게 건네고 그렇게 43이라는 초에 불이 붙었다.




그 장소엔 진실한 미소 속 단 한 명 만의 미소만이 뜻을 달리하고 있었다.


***


생일날도 회사는 어김없이 바빠 흘러갔다. 약간의 야근을 한 후 집으로 돌아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자 벌컥 하며 문이 열렸다. 손하는 약간의 놀란듯한 소리와 함께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활짝 열린 현관 앞에는 남편 도인이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새 풀린 표정으로 웃어 보이자 도인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리 와.”


도인의 벌린 팔을 확인하자 털레털레 지친 다리를 끌며 폭하고 안겼다. 도인은 무려 8살 차이가 나는 연하남이다.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결혼 후 의지를 받을 때도 많았고, 가장의 무게로 든든함까지 갖춘 채 손하의 옆을 지켰다. 어느덧 신혼 3개월 차에 들었다. 한참 깨가 쏟아지고 있을 시기, 손하의 프로젝트로 둘은 오랜 밤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주말에는 같이 있으면 안 되냐는 침대 위 잠이 덜 깬 도인의 투정을 뒤로하고, 회사로 출근하는 일이 잦아서인지 손하는 마음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가 끝났다는 해방감과 왠지 모를 안도감으로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자기야, 오늘 우리 와인 한잔할까?”


도인에게 안긴 채 고개만을 들어 ‘와인?’ 하고 답했다.


“생일이니깐.”


도인의 말이 끝나자 다시금 얼굴을 가슴팍에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하얀빛을 내는 형광등이 가득한 회사와 달리 따뜻한 주황빛의 백열 조명들로 가득 찬 거실이 보였다.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식탁 위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미 한 송이와 두 개의 와인 잔. 그리고 아스파라거스까지 완벽하게 놓인 스테이크가 레스토랑 못지않게 훌륭하게 플레이팅 되어있었다.


“이게 다 뭐야?”

“내가 다 준비했다? 어때 나 대견해?”


대형견처럼 쫄랭쫄랭 걸어와 머리를 들이미는 도인이 마냥 귀엽고 기특해 미소 지으며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둘은 자리에 앉아 각자 있었던 하루 일상을 이야기하며 고기를 썰었다. 손수 잘라 준 스테이크를 손하의 접시와 바꾼 후 와인을 쪼르르 하고 따랐다. 달콤한 와인의 향이 식탁 위로 퍼져나갔다. 도인이 잘라준 스테이크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어 오물거렸다. 식욕이 넘치던 평소와는 달리 꽤나 오랜 시간 한 조각만을 먹고 있는 손하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못 먹어.”


손하는 움직이던 턱관절을 멈춘 채 와인과 함께 고기를 목으로 꿀꺽하고 넘겼다.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문지르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본인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아까 먹은 점심이 체했나….”

“속 안 좋아? 그럼 억지로 먹지 마.”


도인은 구급상자를 열어 상비약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소화제라고 적힌 상자 하나를 발견하곤 두 알을 토독하고 뜯어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받아 아내 손하에게 건넸다.


“고마워.”


건네받은 약을 입에 털어먹곤 애써 미소 지어 보이는 손하다. 약을 먹은 모습을 본 후 다시 제자리에 앉아 자신이 먹던 음식을 옆으로 치워두곤 말을 이어갔다.


“점심을 맛있는 걸 드셨나 봐요? 윤 팀장님.”


손하의 콧등을 살짝 톡 하고 쓸어내리며 장난기 섞인 말투를 꺼내자 순식간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졌다. 이것이 바로 연하남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팀원들이 맛있는 걸 사주긴 했는데….”


뜸 들이며 쉽사리 말을 이어가지 않는 손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무 맛있게 먹었나 봐.”


이어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은 눈치인 듯하여 도인은 자연스레 화제를 넘겼다. 그것도 식탁 위에 있는 모든 음식들을 하나 둘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며 말이다.


“뭐해?”

“우리 신혼인데 그동안 프로젝트 준비한다고 너무 못 본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남은 와인 잔을 옮기며, 그대로 손하를 안아 식탁 위로 올려 앉히는 도인이다. 식탁 위에 있는 조명이 살랑이며 바람에 흔들린다. 약간은 신혼 티가 날 법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당황해하는 손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다.


“또 왜 이러실까…?”


식탁에 기대고 있는 도인의 팔을 잡고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쉽게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지 말고 오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하는 도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깐 나 예정일 지났는데 왜 안 하지?”

“응?”


둘 다 곰곰이 잠시 근 한 달간의 생활패턴을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이 먼저 끝난 도인이 입을 열었다.


“그럴만한 건더기가 있었나?”

“음… 아니?”



결혼 한 부부라고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비 주기적인 월경은 언제나 걱정을 먼저 불러온다. 아이가 생길만한 일이 없는데 생리를 하지 않는다면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손하는 잠시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평소 자궁벽이 약해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던 의사의 말이 떠오른 것이 분명했다. 걱정스러워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자 도인은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몸이 피곤하면 주기가 달라지기도 한다고 하더라. 내일같이 병원 가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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