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어내리던 손이 정수리쯤에서 멈췄다. 뮤테이션 엔드 증후군이라는 말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리고 이내 한 달 전 생일 강남 출근길 LED에서 흘러나오던 보도가 머리에 맴돌았다.
“뮤테이션 엔드 증후군이 머리가 안 자라요?”
이유 모를 긴장감에 손이 떨려왔지만, 애써 양손을 꾹 누르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 리고요? 다른 증상은요?”
“머리만 안 자라는 게 아니고… 아 서윤 님 머리도 감겨드릴게요.”
대답을 듣기 위해 한껏 긴장해 굳은 몸이 순식간에 김이 빠진 콜라처럼 변했다. 머리를 감으러 간 사이 사장님과 둘이 남은 손하는 다시 한번 해당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주제로 흘러가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빨리 회사로 복귀해 증후군에 대해 찾아보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했다. 머리가 끝나길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 끝남과 동시에 서윤을 태워 빠른 속도로 회사에 복귀했다. 가는 동안 창백해진 표정으로 서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회사에 도착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손이 떨려왔다. 뮤테이션: 돌연변이를 뜻한다. 돌연변이의 끝이라니 이름마저 살벌한 증후군이었다. 뮤테이션 엔드 증후군을 검색하자 지난 기사들이 속속히 보였다. 그중 한 마의 16세가 적힌 헤드라인 기사 하나를 골라 천천히 드래그하여 기사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뮤테이션 엔드 증후군, 43세의 여성에게만 발병하여 젊은이들 사이에서 마의 43세라고 불립니다. 28년 전 최초로 발견된 이 증상은 전 세계 단 3명의 여성에게 발생했습니다. 최근 사망한 여성 A 씨의 자택에서 발견된 꽤 오래전 적힌 듯 한 종이에는 의료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보다 더 세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요. 해당 전문입니다.
1. 생리를 불규칙적으로 하며, 일정과 기간은 모두 예측 불가능하다.
2. 코피가 하루에 1번 이상 흐른다.
3. 머리카락 포함, 온몸에 털이 자라지 않는다.
4. 손톱, 발톱이 자라지 않는다.
5.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고 구토한다. 단 음료는 섭취 가능하다.
특징, 출산의 경험이 없는 43세 여성에게 나타난다.
단, 아이를 가지고 난 후 모든 증상은 사라진다.
두 명의 여성은 이미 소식이 끊겨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였고, A 씨 또한 수십 년을 잠적해 있다 최근 자살한 상태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저 멀리서 누군가 다급히 손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메아리 치 듯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삐-하는 소리와 함께 점점 가까이, 그리고 크게 들려왔다.
“팀장님 코피….”
***
어쩐 일인지 한 달 동안 흐르던 코피가 자정 12시가 되어가는 이 시간까지 단 한 번도 흐르지 않았다. 24시간은 물론이고 그것도 몇 주간 말이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그간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그날 이후 자연히 생리가 터져 이미 몇 주 전에 끝난 상태였으며, 코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여보.”
남편 도인의 부름에도 들리지 않는 듯 앞에 놓인 꺼진 TV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상함을 느낀 도인은 천천히 옆으로 가 앉으며 손하의 다리 위에 조심스레 손을 올려놨다.
“손하야.”
“어?”
그제야 고개를 들어 도인을 얼굴을 바라봤다. 도인은 걱정 가득 무슨 일 있냐는 표정을 보내왔다. 회사에서 코피가 흐르는 날과 도인의 잦은 출장 등으로 증상을 감출 수 있었지만, 불규칙적으로 흐르는 덕에 가끔은 남편에게 증상 중 일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지금 이 상황이 의심되는 아니 확신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무슨 일이 있냐는 도인에 말에 옅은 미소로 안심을 시키는 것 말곤 손하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음 날이 되자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다. 임테기를 사용할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더 이상 그녀에겐 없었다. 산부인과 초음파 결과: 임신이 맞았다.
임신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근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손하는 멍하니 카페 앞에 서있다 발뒤꿈치만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이내 손하의 앞을 지나 한 커플이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고, 그 틈을 타 유리문을 잡고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커플이 자리를 잡는 동안 손하는 카페 메뉴판을 둘러봤다. 그 모습은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 다 늘어난 두툼한 카디건에 핏기가 돌지 않는 입술색은 그녀가 지갑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딱 좋았다. 카운터 옆 케이크 진열대는 진하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로 가득했다. 자리를 조금 이동해 진열장 앞으로 가 케이크를 구경하자 아까 본 커플이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딸기 케이크 하나요.”
커플의 주문이 끝나자 손하가 지켜보던 유리창 너머로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이 꺼내져 나갔다. 손하는 케이크가 접시에 담겨가는 장면을 바라보며 목을 쭉 뺀 상태로 따라 움직였다. 그 모습에 직원이 말을 꺼냈다.
“손님 주문 도와드릴까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람도 잠시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메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카페라테 따뜻한 거 한 잔이랑 저…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이요.”
주문이 끝났다. 음식을 제 입으로 주문한 적은 한 달 반 만에 처음이었다. 과연 저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우선 다른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한 번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오늘따라 눈에 들어온 것이 신기했다. 자리로 음료를 직접 가져다준다고 하여 핸드폰도 열지 않은 채 두 다리를 붙여 차렷 자세로 가만히 음식이 오길 기다렸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손하의 앞에는 주문한 음료와 딸기 케이크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케이크만큼 반짝이는 은색의 포크를 조심스레 잡고 케이크의 뾰족한 모서리를 꾹 하고 눌렀다. 포크에 꼽힌 케이크 한 조각을 입안에 가져가 삼켰다; 그리고 1분도 안 되는 빠른 시간 동안 케이크를 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속의 메스꺼움과 금방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았던 구토까지 잠잠했다. 정말 죽은 여성의 말대로 임신을 한 손하에게 5가지의 조항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늘은 손하가 자신의 첫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이다. 집에 도착해 거실 소파에 앉은 그녀는 한동안 눈물을 셀 수 없이 흘렸다.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음을 느낀 순간만큼은 그렇게 기다리던 임신소식보다 방금 전까지 입안을 머무른 딸기 케이크의 감각만을 떠올리게 했다. 단 한 번의 초음파 사진을 꺼내지 않은 채 인간 윤손하의 본능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