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아이가 한 번 더 수능을 보겠다, 결심한 뒤 나는 올해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 고3 때처럼 지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이 고등 3년 동안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 수험생 옆에서 지나치게 마모되어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입시에서 엄마와 아이의 2인 3각이란 표현을 많이 쓰지만 개인적으로 엄마는 응원하는 자 정도의 위치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힘들 때, 적절하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내게는 에너지가 없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싶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예전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가 생각났다. 프로야구단 중 늘 시합을 하면 지던, 그럼에도 열광적이고 꾸준한 팬들을 확보했던 야구단.
사실 야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이 내용조차 20여 년 전 읽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책으로 알게 되었었다. 그 응원단은 어떻게 경기마다 지는 팀을 응원할 수 있었을까? 응원도 지치던데 그 에너지는 어디서 늘 채워 왔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다.
그 응원자들은 자신의 생활이 있었던 거다. 다른 일도 하고 취미활동도 하다가 시합이 있는 날에는 가서 힘껏 응원했던 거다. 그러니까 시합이 있는 날에 '집중'해서 응원하고 다른 날은 다른 일로 '환기'를 했던 것.
그에 반해 나는 '집중'이 아니라 '매몰'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 학업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대학에 진학했었고 큰 아이도 수시로 일찌감치 대학에 입학해서 크리스마스를 즐겼었다. 난 작은 애도 한 번에 원하는 곳에 입학했으면 좋겠단 바람이 너무 크다 못해 집착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딱히 도움을 주는 일 없이(난 학업지도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나 혼자 스스로 지쳐 방전되었던 것.
다른 일을 하며 환기했다면 아이가 스트레스받거나 충전이 필요할 때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매몰된 생활은 환기조차 안 되어 신선한 공기를 아이한테 주입할 수도 없고 전체를 보는 시각도 더 갇히게 했다. 서로에게 좋지 않다. 그래서 아이 재수 기간엔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필요 이상의 매몰 대신, 아이와 분리감 형성을 목표로 삼고 내 생활을 설계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내게 1년 뒤 오도록 예약 메일로 써서 전송했다. 그게 며칠 뒤 내게 도착할 내용인데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아이와의 분리감엔 성공했고 난 재수생 맘으로서 비교적 -예상보다는 덜- 무난하고 평안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는 폴발레리의 말을 참 좋아한다. 지난 3년의 나를 되돌아서서 바라본 덕분에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올 연말에는 올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보고 내년의 나에게 보내는 예약 메일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