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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따라 Oct 23. 2024

내가 갑갑할 때마다
한강에 가는 이유

가슴이 더부룩하게 차오를 때가 있다. 배부른 것처럼 가슴이 불러오는 날, 배가 부른 건 내가 먹은 양을 아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만 가슴이 부른 건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가슴 안에 텁텁한 공기가 빼곡하게 차오르면 뒷머리도 무겁고 눈꺼풀도 내려앉는다.     

가만 되돌아보면 답이 없는 문제에 파묻히거나 너무나 명확하게 답은 알지만 풀이 과정을 쓸 수 없을 때 가슴이 답답하곤 했다. 이런 문제가 위에서부터 하나씩 내려와 쌓이면 그 압력이 세지곤 했다. 생각이 이어지다가 꼬이고 얽힌다.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다가 보면 자연스레 내 나이가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진다. 언제쯤 삶이 명료해질까. 이십 대 삼십 대에는 이 나이쯤 되면 다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생각했던 그 자리에 도달하고 나니 또 다른 시야가 펼쳐질 뿐이었다.     


지금도 내 앞에는 답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내 손에는 풀이과정을 쓸 수 없어 밀쳐둔 정답이 있다.     

답을 모르는 문제에 답을 찾아 헤맬 때는 내가 무력하게 느껴지고

답은 알지만 풀이과정을 쓸 수 없는 문제를 눈앞에 두고 멍하니 답만 바라볼 때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소파에서 일어나 집안을 이리저리 오가며 창문을 활짝 열어본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이럴 때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안다. 서둘러 가는 곳, 한강. 한강에 가서 멍하니 강을 바라본다. 낮에 가는 것보다 밤에 가면 오히려 시야가 넓어지는 곳. 낮에는 햇살이 눈부셔 눈앞 물줄기 흐름만 보다가 온다면 밤에는 저기 여의도 남산까지 시야를 넓히게 된다. 한강을 멍하니 보다가 보면 어느새 숨통이 트이는 걸 느낀다.

한강에 가면 가슴 입구를 여눈 마개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방수, 방습, 방풍 소재였던 내 마음 표면이 이집트산 순면으로 바뀌는 것 같다. 공기가 잘 통하는 면섬유로 바뀌어서 공기를 잘 흡수하고 곧잘 내뿜곤 한다.     

한강을 크게 돌며 강 건너편 높게 치솟은 빌딩을 바라본다. 왼쪽으로 갔다가 보고 오른쪽으로 갔다가 보고 어디에 서서 봤을 때 가장 매력적인지 보고 또 본다. 강물은 또 어떤지 바라본다. 흔들흔들 유유자적인지 넘실넘실 생기 충만인지 자유롭게 넘나들며 흐르는 강물을 보고 또 본다.     


길이 없는 강을 보고 있으면 길을 못 찾아서 헤매는 내게 좀 위안이 되곤 한다.

길이 없어서 자유롭고, 길이 없어서 선택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곳.

한강 물 위에 시선을 던지며 잠시 선택의 압박에서 벗어나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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