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홍매화가 한창 필 때였다. 사방이 꽃으로 물드는데 유독 저 나무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나뭇잎 한 장조차 없는 모습에 마음 한편이 휑하니 시렸다. 초봄이었는데도 갑자기 외투를 여미고 한참을 바라봤다. 주변사람들은 언덕을 내려가 홍매화를 찍느라 분주했지만 나는 저 나무를 향해 한걸음한걸음 위로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끌려 그 앞에 섰지만 렌즈에 담기엔 쉽지 않았다. 나무 보호차원인지 그 나무 주위에만 접근금지푯말이 꽂아있었다. 푯말 앞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렌즈로 들여다본 나무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국 다시 뒤로 물러나서 그 옆 기와지붕까지 렌즈에 담고 나서야 나는 왠지 모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노트북에 연결해 찍은 사진을 열어봤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알게 됐다. 내가 왜 저 나무에 끌렸었는지. 나뭇잎들을 다 떨구고 앙상하게 남은 가지만 매달린 빈약해진 줄기로 버티는 모습이 아이 둘을 성인으로 키워낸 내 모습과 겹쳐져서 우리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 같다. 나무줄기가 가지에 물을 실어 나르고 가지가 나뭇잎에 물을 실어 나르느라 삐쩍 마른 모습을 보먀 아이 둘 키우느라 힘들었던 지난 나날이 떠올랐다.
작은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다. 엄마로서 자식의 입시는 큰 부담이니까 그 큰 부담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환호하며 설레었던 아이 대학교 입학의 기쁨은 조금씩 일상의 평온함으로 자리바꿈 했고 그 평온함은 익숙해지면서 점점 존재감을 잃어갔다. 기쁨이 평온함으로 바뀌었듯이 다시 평온함은 비어있음으로 변했고 그 비어있는 자리로 무기력감이 밀려들어왔다.
난 이 나이 되도록 뭘 이루었을까? 갑자기 나 자신을 이리저리 재어보며 점검하게 되었다. 눈가에 주름과 탄력 없는 피부만 남고 이뤄낸 것은 없는 인생, 내 인생은 이렇게 저무나 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파에 푹 기대었다가 자세를 고쳐 앉듯이 애써 정신 차려 감사한 마음을 꺼내곤 했지만 허무함을 진정시키기엔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