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럼프 포비아(공포증)란 말이 유행이다. 차기 정부인 트럼프 정부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폐지할 거란 말이 나오면서다.
IRA는 미 조 바이든 행정부서 추진된 정책으로 에너지 안보·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됐다.
많은 안이 있지만 우리나라에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건 전기차 보조금 지급안이다.
북아메리카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 보조금을 지급하는 안이다.
우리나라나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원자재 수급이 수월한 동남아시아 등지서 완성차를 만들어 수출하는 국내 완성차 업계 특성상 IRA 제정은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은 정책이었다.
북미 현지서 공장을 세워 완성차를 생산하는 해외 경쟁사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뒤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현지서 생산된 해외 경쟁사 완성차를 산 미국 국민은 최대 105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지만 우리나라서 생산된 완성차를 산 미국 국민은 이를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바이든 행정부서 IRA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부터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우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6차례 이상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재작년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방한했을 땐 환담을 갖고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 달러, 한화 약 6조 3000억 원을 투자하겠단 계획을 밝혔다.
환담 후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서 현대차의 결정에 거듭 감사 인사를 표했다. 현대차 투자가 미국에 8100명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거라며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칩스법도 원리는 IRA와 같다.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짓고 생산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안으로 국내 반도체 투톱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공장과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차기 행정부인 트럼프 정부가 이를 무효화시킬 거란 관측이 제기되며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서 보조금을 받지 못할 거란 우려가 나왔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코스피 기준 5만 6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한땐 5만 500원까지 떨어지며 4만 원 선까지 떨어지는 것 아니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시가총액은 41조 원 넘게 증발했다.
일국 대통령 당선으로 인한 투자자 심리 불안으로 한 기업의 시가총액이 40조 원 넘게 사라진 것이다.
경제서 심리는 ‘돈과 성과물’이 제대로 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척도다.
조합원 반발이나 인건비·원자재값 인상으로 공사가 재대로 이뤄지지 않을 거란 보도나 소문이 나면 사업을 발주한 시행사가 제일 먼저 신경쓰는 건 투자자 불안이다.
시공 과정에 돈을 빌려주거나 신용을 담보로 제공한 이들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거란 불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금이 회수되면 시행사는 다른 곳에서 자금을 빌려와야 된다. 이 경우 대부분 더 높은 이자율이나 금액대가 큰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돈을 꿔와야 한단 소리다.
신용과 신뢰가 기반인 금융에 ‘불안 심리’는 더 치명적이다.
은행이 파산할 수 있단 소문이 퍼지면 해당 은행에 예금을 맡긴 예금주들은 원금 회수를 위해 단기간 일시적으로 많은 현금을 인출한다. 금융권에선 이를 전문용어로 ‘뱅크런’이라 한다.
지난해엔 우리나라 새마을금고서 7월 한 달간 17조 원에 달한 예금이 빠져나가 ‘뱅크런’이 발생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제기됐다.
연체율 상승과 당시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의 불구속 기소로 인해 금고 경영에 비상이 걸렸단 보도가 연이틀 나오자 불안 심리를 이기지 못한 예금주들이 한꺼번에 몰려가 수십조 원에 달한 현금을 인출한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새마을금고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었다. 한 노령의 할머니가 돈이 가득 든 봉투를 품에 안고 급히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다.
TV 뉴스서 영상으로만 접했던 뱅크런 현장을 눈앞서 생생히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 우리나라는 뱅크런 관련해 아픈 기억이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1년 삼화저축은행이 무너지고 국내 저축은행 자금 상황이 불안정하단 소문이 퍼졌다. 부산 지역 대표 저축은행인 부산저축은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금주들이 단체로 뱅크런을 감행했고 단시간 큰돈이 빠져나간 부산저축은행은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후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은행 문을 굳게 잠갔다.
영업정지 처분 전 미처 예금을 인출하지 못한 예금주들은 은행 문을 두드리며 “내 돈 내놔라”며 아우성을 쳤다.
아이러니 한 건 당시 부산저축은행 회장은 영업정지 전 부인 명의로 된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1억 7100만 원을 빼갔다. 부회장은 주식 계좌서 수억 원의 현금을 친척에게 양도했다.
최일선서 은행을 지켜야 할 경영진이 본인 재산 지키기에 골몰한 ‘최악의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후 회장은 대법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 부회장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된 세계 금융 중심지 미국서도 뱅크런이 발생했었다.
1932년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 은행 예금주들은 불황이 계속된 상황에 ‘은행도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고 은행에 맡겨놓은 예금을 대량으로 인출했다.
중소형 은행은 몰락하다시피 했고 대형 은행도 파산 직전까지 갔다.
얼마나 심각했는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도 해당 사안을 보고받고 ‘은행 일시 영업 정지’ 명령을 내린다.
이후 대국민 라디오 연설에 나섰고 미 국민에 ‘정부와 기관을 믿고 불안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불피운 난로 앞 마이크서 라디오 연설을 진행해 역사학계는 이를 ‘노변담화’라 일컫는다.
이후 미 은행 예금주들의 뱅크런 속도는 빠르게 줄었고 루즈벨트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인 뉴딜정책을 실시해 대공황으로 혼란에 빠진 미국 경제를 구했다.
지금은 수정헌법상 불가능한 4선 대통령 취임도 성공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은 최대 2번까지 재선이 가능하다.
심리적 불안은 인간의 일반생활뿐 아니라 경제서도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요소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선 발생시킬 요인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막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사업이 차질없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단 걸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도출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이 국민과 고객의 신뢰를 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도출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