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기 일간지서 일하고 있는 선배기자의 딸 돌잔치를 갔다 오며 잠시 카페에 들렀다. 24시 운영되고 내가 좋아하는 차를 팔아서 자주 들르곤 한다. 평일 저녁엔 한 번에 3잔을 시켜놓고 국회 소통관서 갖고 온 경제 일간지 5~6부를 정독하며 내일 쓸 기사 발제를 준비하곤 한다.
오전 교회 카페서 보다만 경제지 2부를 마저 읽고 내용을 정리한 수첩을 정독하던 중 해양 영토에 관한 내용이 있어 유튜브서 관련 다큐를 찾아봤다. 여러 다큐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2019년 1월 방영된 다큐 3일 고성 대진항 편이었다.
모구리라 불린 잠수부부터 이북서 내려와 어민으로 정착한 속초 아바이까지 여러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했다. 내 할아버지 고향인 함경도서 내려와 속초에 정착한 어민 얘기를 보면서는 뭉클한 감정도 들었다.
고성 대진항 어판 경매장 일대를 촬영하는 취재진에 총알 오징어 구이를 손수 먹여주는 주민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작으면서 소중한 얘기를 바로 옆에서 듣고 글로 녹여낼 수 있는 기자가 돼야지’라는 다짐도 했다.
여러 내용이 내 이목을 사로잡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내용은 북위 저도 어장서 문어를 잡는 어민 얘기였다. 해양 경비선에 승선 인원을 알려준 어민은 ‘지금 뭐 하시냐’고 묻는 취재진에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해양경찰이) 인원 점검을 하는 거에요. 저도 어장 올라갈 땐 경비정 인원 점검을 받고 올라가야 해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38도 32분 95초에요. 평소에는 38도 33분까지 조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도 어장은 38도 34분선까지 조업할 수 있어요. 그 다음부터는 군사분계선으로 넘어가는 거에요.’
저도어장은 어장 최상단이 북방한계선(NLL)서 불과 1.8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동해 최북단 어장이다. 문어, 멍게, 도치, 삼식이, 전복치 등 풍부한 어족자원을 보유한 동해 천혜의 황금어장이다.
통상 4월 초에 개장해 1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지만 2024년 10월 북한의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 폭파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됨에 따라 폐쇄됐다. 지금은 동해 최북단에 위치한 대진등대와 고성 통일전망대서 일대 유역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다큐 3일에 출연한 고성 어민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고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일시적으로 완화된 당시 시국 상황을 얘기하며 북한과 어업 협정을 다시 맺었으면 한단 바램을 내비쳤다.
‘지금 남북공동수역 얘기가 나오잖아요. 지금 중국 어선들이 북한 바다(조업권)를 사서 조업하고 있는데 (북한이 중국에 조업권을 줄 바에야) 우리 정부가 임대를 하고 우리나라 어민들이 조업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족자원을 보호하며 잡지만 중국 어선은 그렇지 않아요. 정부가 그런 방안도 살려봤으면 하는 게 어민 바람이죠.’
다큐 3일서 어민이 꺼낸 얘기는 긍정적 방향의 얘기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해양 영토 협정에 있어 너무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1998년 9월 25일 일본 도쿄서 타결된 우리나라와 일본간 어업협정이다. 오징어 황금어장으로 유명한 대화퇴 어장 확보로 당시 큰 관심을 받았던 한일 어업협정은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대참패로 끝났다.
여러 분야서 참패했지만 가장 뼈아픈 건 어업권을 빼앗긴 것이다.
양국은 기존 어업실적 보장 관련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서 우리나라 명태 조업을 협정 시행 첫해인 1999년 어획고 1만 5000톤(t)으로 제한하고 2000년부턴 이를 인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공식적으로 일본 EEZ서 명태 어획을 할 수 없단 내용이다.
대게 조업은 1999년 기존실적 50%를 감축하고 2000년엔 나머지의 50%까지 줄인다. 명태와 대게를 제외한 나머지 어종은 3년에 걸쳐 양국 간 어획 할당량이 똑같이 되도록 연차적으로 조절한다. 한마디로 우리에겐 득 될게 거의 없다시피 한 ‘참패의 조약’이다.
도대체 왜 이런 참패를 당한 걸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뼈아픈 것으로는 ‘어획 신고 실적’을 꼽을 수 있다. 한일 간 어업 협상서 인정된 일본측 수역서 우리나라 어획할당량은 14만 2000t이다. 수협 등지서 주장하는 연간 총 어획량인 20만t에 한참 못 미친다.
기본적으로 국가 간 협상서 이권을 주장하려면 그에 걸맞는 확실한 근거와 명분이 제시돼야 한다. 우리나라 어민이 당국에 공식적으로 신고한 어획량이 일본 측 신고량보다 적으면 협상서 자연스레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당시 한일 어업협정 결과와 요인을 파헤치는 기획을 연재했던 연합뉴스는 이 점을 정확히 꼬집었다.
‘조업실적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옳게 신고하면 당국에 당한다는 근거없는 인식이 확산돼 제대로 된 어획통계를 작성하기 힘들었던 게 현실이다. 공인된 루트를 통해 수산물을 처리하기보단 사적 통로를 통해 유출하는 것이 다반사가 됐다.’
오늘 내가 물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당국에 신고하면 혹여 내가 알고 있는 어장 정보가 남에게 유출되지 않을까란 안일한 생각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해가 된 최악의 결과물로 도출된 것이다.
한일 어업협정도 뼈아프지만 더 뼈아픈 사례도 있다. 1951년 9월 맺어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과 승전국 연합국 사이 맺어진 평화 조약으로 식민지 지위서 벗어난 우리나라의 해양 영토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체결됐다.
영토 조항 제2조 a항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일체 권리와 소유·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제는 여기에 독도와 이어도가 빠진 것이다. 일본은 오늘날까지 이 점을 근거로 ‘일본은 한국에 독도를 반환한다 얘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약 내용도 그렇지만 역사학자들이 오늘날까지 정말 아쉬워하는 점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 우리나라 외교 당국자들이 회의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단 것이다.
공식적으로 초청받지 못했단 점도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과 6·25전쟁을 치르고 있어 제대로 참가를 요청하거나 외교적으로 협조를 구할 여건이 되지 못했단 점도 크다. 여러 국내외적 여건으로 후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국제조약 비준에 우리나라 당국자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다.
국제적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우리에게 닥칠 불리함을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첫 걸음은 우리 자신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잡고 획득하고 한 행동을 공유해 국제적으로 맞설 수 있는 확실한 자료와 근거를 만드는 것은 그 일환이다. 국제적 비준이나 행동을 상시 관철하며 우리가 모르는 국제적 행동으로 인해 우리나라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을 막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한다.
2024년 12월. 여러 혼란스런 시국으로 인해 국제적 외교에 소홀해질 수 있단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럴수록 외교 당국자들을 비롯한 고위 정무직들은 국제적 흐름을 냉철히 파악해 우리나라에 불이익이 닥치지 않도록 그 어떤 때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