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보다 시한부가 더 부러울 때.
시한부는 본인의 시간이 언제까지인지 안다.
그렇기에 시한부는 죽음에 익숙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줄 알고, 그전까지 하고 싶은 것들을 해 본다.
그런데 시한부가 아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미래를 찾고 추구하다가
계속해서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고 '해야 하는 것'만 하다가.
어느새 늙거나, 어느새 죽는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하고 싶었던 것'이 된다. 순식간이다.
때로는 본인이 언제 가게 될지 알고, 그전까지 최대한 열심히 살아보기도, 때로는 하고 싶은 걸 전부 하며 살아보기도 하는 그런 시한부가.
시간이 많다는 사실 앞에서 원하는 바를 다음으로 미루는(그리고 결국 하고 싶었던 모든 걸 놓쳐버리는) 그런 다른 사람들보다.
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때때로 그렇다.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후자보다 시한부를 택하리라.
그런데 나부터가 하고 싶은 일을 뒤로만 미루고 있지 않는가.
아. 이럴 거면 그냥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이뤄 보자.
이 글은 시한부라는 굉장히 무거운 선고를 받은 분들의 '삶의 무게'를 폄하하려 쓴 글이 아니다.
시한부라는 어려움과, 매일같이 쫓아오는 죽음의 공포를 시시하다고 느끼거나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진실로 한 번도 없다. '현재에 충실하자'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풀어내기 위해 단순한 도구로 사용하고 버리려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죽음의 무게를 모르는 한 치기 어린 영혼이 생각 없이 쓴 것도 아니다. 진실로 그렇다.
단지.. 때로는 죽음 앞에 선다는 것이 끝없는 어려움 앞에 서는 것보다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고작 17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