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석증

by 레인보우 미

어제 병원에서 돌아와서부터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계속 앉아있었다.

"고개 절대 숙이지 말고, 고개를 양옆으로 기울이지도 말고, 눕지도 말고 내일까지 지내요."

이석들이 다시 굴러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의사 선생님은 무거운 것도 들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 무거움의 기준은 모르겠다. 그래서 설거지는 서서 하는 거니까 괜찮다. 밥하는 것도 서서 하는 거니까 괜찮다 생각하면서 내 나름대로 철저하게 조심했다. 이제 만 하루가 지났다. 계속 앉아서 지내는 것은 너무 힘들다. 앉아서 계속 있으려니 팔과 다리도 자꾸 저려온다. 결국 그래서 꼼지락거리면서 자꾸 더 움직이게 된다. 어지럼증약을 먹으면 잠이 잘 온다고 했지만 나는 예민해져서 그런지 잠이 하나도 안 온다. 그래서 오만가지 생각들만 하고 있다.

‘아들 생각, 딸 생각, 남편 생각, 엄마 생각, 아빠 생각, 반찬 생각, 빨래 생각, 아픈데도 다림질할 생각은 왜 드는 거야? 오만가지 생각 중에서 나를 생각하는 건 하나도 없네.’

갑자기 너무 처량해진다.

‘사람이 좀 아프다고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는걸까? 설마 나 갱년기인가?’

문득 나도 회사 다닐 때는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회사 사람들이 계속 붙잡았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갑자기 그들의 말이 들린다.

“너 곧 후회할거야, 경단녀가 되고 나면 금세 후회한다. 단축 근무 알아보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그렇게 일이년 참고 다니면 애들 금방 크는 거야.”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퇴사하겠다고 했을 때, 몇 달을 수도 없이 들었던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단축 근무를 시작해도 나는 회사에 미안해서 종일 근무처럼 일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두가 말려도 선택한 결정이였기에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았다. 나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단단하다 믿었던 그 마음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왜 세상에 내 이야기가 없는 걸까?’

갑자기 슬퍼져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그래도 하루종일 아이들 엄마로만 지내면서 행복한 일이 더 많았다. 전업주부여서 아이들 학교 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했고, 도서관이랑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배우기도 했고, 사람들이랑 많이 만나서 수다도 많이 떨었다. 집밥도 많이 해서 금방 김치찌개도 끓일 수 있다. 코로나 때도 내가 애들 옆에 딱 있으면서 아이들을 지켰다. 예전에 회사에서 일하다가 애들 잘 때 퇴근하고 올 때까지 우리 엄마는 아이들 돌보느라 너무 힘드셨다. 우리 아빠도 같이 애들 보느라 힘들었다. 이제 엄마,아빠는 내가 회사 안 다녀서 마음대로 친구도 만나러 가신다. 좋은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마음 약해질 필요없다고, 괜찮다고 나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선생님,어디예요?”

“저 집이예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전화가 걸려왔는데 무슨 일이냐고부터 묻고 있다니 나의 오지랖이 또 발동하고 있다.

“갑자기 수업을 못하게 된 선생님이 있는데, 다음주 수요일부터 수업 좀 해주세요. 애들이 아직 어리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시구요.”

“갑자기 제가 수업을 어떻게 해요?”

“어렵지 않아요. 이번에 딱 두 달만 해보세요. 절대 어려운거 없으니까 믿고 수요일만 해보세요. 애들도 이제 엄마가 일하는거 더 좋아할거예요”

“오늘이 금요일인데 정말 괜찮을까요? 제가 뭘 준비하면 될까요?”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일한다고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담당자에게 바로 전화하라고 할게요. 선생님이 다 할 줄 아는거예요.”

“선생님 감사해요.”

방금 나는 일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아이들 곁에서 좋은 엄마만 하려고 회사를 그만둔거니까, 파트타임으로 일해보라고 해도 절대로 일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사이에 세상에서 내 자리를 조금이라도 갖고 싶어졌다. 세상이 뒤집어지던 그 시간부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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