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부모님께,
세 번째 편지까지는 손글씨로 썼고, 네 번째 편지부터는 컴퓨터 자판으로 썼네요. 오늘 일곱 번째 편지를 시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1년 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쩌면 1년에 한 번 안부를 묻나요... 한국에 없어서 그런가...
작년에 이 집에 이사 와서, 이삿짐 정리를 다 마무리하고 편지 올렸던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벌써 1년이 지났네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겨울방학 1월에 아버지, 어머니께서 다정하게 앞 뒷날로 떠나셔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저희 지낸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려 드릴 수 있어 참 감사해요.
부모님께 편지를 쓸 때마다, 한 해 한 해 새로운 소식을 전할 수 있고 새로운 감상이 있어 그것도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자라감에 따라 새로운 소식이 있고, 그것에 따른 저희의 감상이 있어...
2023년 1월 2일. David이 군대에 갔어요. 대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새해 벽두부터 군대로 갔네요. 저희는 중국에 있어서 못 가보고, 이모부랑 셋째 이모가 논산 훈련소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얼마나 감사하던지...
David 2살 때, 아빠가 OO에서 자격 연수받던 시절 기억이 나요. 그때가 여름방학 때였는데, 하루는 미용실에 데려갔어요. 머리 깎는 게 너무 싫고 무서웠는지 하도 발버둥을 쳐서, 미용실 언니가 머리를 그냥 확 밀어버렸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 '빡빡이' 머리가 되어 보았죠. 그때는 애가 너무 센 아이처럼 보여 별로였어요. 그런데 이번에 입대 전에 머리를 깎은 모습을 보니 정말 말 그대로 ‘깎아놓은 밤’처럼 단정하고 예뻤어요.
저는 정말 중요한 순간, 함께 해 주면 참 좋을 순간에 같이 못 해줘서 무척 아쉬운 순간이 꽤 있어요. O서방이 훈련에서 졸업할 때, David 이 입시 위해 한국 들어가 시험 치고 면접 볼 때, 이번에 군대 갈 때, 애들 작은 아빠네 슬픈 일 당했을 때...
다 중국에 있어서, 그리고 코로나로 출입국이 자유롭지 않아서... 등등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무척 컸어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서... 하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당사자들이 이해해 주고, 주변에 제가 아닌 다른 분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셔서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David이 대학생이 되어서, 시 동아리에서 주기적으로 시를 창작했는데, 내 아이가 ‘시’를 쓰는 문학소년(?), 청년(?)이라는 게 참 마음에 흐뭇해요. 기타 치며 찬송을 부르는 영상을 보내줄 때도 고맙고 감동이에요.
군대에서 더 단단한 청년이 되어 오겠죠? 주님도 더 깊이 찾고 누리는 David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둘째 Timothy 소식. Timothy는 지금 미국에 있어요. 미국??? 하고 놀라시겠다. 네, 작년 8월에 미국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 참가차 미국으로 출국했어요. 벌써 한 학기를 마치고, 1월 4일부터 2학기 시작해서 12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어요. Grace를 7살에 학교 보내, 오빠인데 동생이랑 쭉 같은 학년이었는데, 이번에 미국에 가서 12학년으로 배정되어, Grace보다 6개월 먼저 졸업을 하게 되었네요. 주님께서 이런 방식으로라도 Timothy의 오빠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시는 걸까요? 하하...
어쨌든, 올해 저희는 두 명의 고3 수험생 학부모입니다. Timothy는 졸업장을 가지고, 7월 초에 대학에 지원하고, Grace는 이곳 학교 일정을 따라 졸업예정서를 가지고 대학에 지원하고요.
Grace는 시각디자인과를 지원할 예정이고, Timothy는 스포츠산업, 스포츠과학, 스포츠매니지먼트 쪽이나 국제통상학과, 국제학부 또는 경영학과를 생각하고 있어요.
David을 이미 대학에 보냈고, 둘째, 셋째, 이 두 아이들을 대학 보내고 나면, 저희의 부모로서의 1차 최대 과업은 일단락될 것 같아요.
중국에서 12년. 아이들의 모든 학령기를 마치고, 이제 저희도 귀국할 거랍니다. 내년 2월에요. 2024년 2월에... 내년 이맘때에 중국에서는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편지를 쓰게 되겠네요...
12년. 참 긴 세월이죠. David 초등학교 4학년, Timothy, Grace 초등학교 1학년 될 때 왔는데, 성인이 되어 돌아가다니... 세월이 이렇게 흐르나 봐요. 아버지 어머니의 세월도 그렇게 흘렀을 것이고, 저희의 세월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네요. 아이들 이렇게 장성한 모습, 살아서 보고 계시면 참 좋으련만... 그게 아쉽네요. “앗따, 이렇게 커버렸냐!” 하시며 웃는 얼굴로 애들 쓰다듬어 주시면 좋으련만...
시를 쓰는 David, 영어를 구사하는 Timothy, 그림을 그리는 Grace.
저희 세 아이들을 묘사하라고 하면 요렇게 간단하게 묘사하면 될 것 같아요. 이 세 아이들이 각자의 강점을 가지고 자기 길을 찾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속 응원해 주세요.
작년 1월부터 12월을 보내고 나서, 1월에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한 달 한 달을 살 때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과 많은 말들 가운데서, 조금은 분주하고 시끄럽고 마음 산란하게 보낸다라는 느낌이 강한데, 다 지나고 나서 보면, 마치 무척 고요했던 한 해처럼 느껴집니다. 커다란 덩어리, 하나하나의 기억, 좋았던 장면들만 기억에 남겨두고 책장을 넘기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다만 ‘감사’와 ‘평강’과 ‘뿌듯함’... 그런 느낌만 남습니다.
작년 한 해도 주님의 돌보신 크신 은혜와 부모님의 중보기도와 시댁과 친정 식구들의 변함없는 지지로, 도서방과 저, 그리고 아이들.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얼마큼 증가했는가(요 3:30)를 주님 앞에 한 번 점검해 보아야겠지만요.
Timothy를 멀리 타국에 보낸 계기로 매 주일 저녁마다 시댁 어른들과 Timothy, 중국에 있는 저희와 Grace, 영상통화로 말씀을 읽고 안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이 참 귀했습니다.
Timothy도 낯선 타국에서 생활하며, 지금까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자신을 위해 안배해 놓으신 놀라우신 주권, 그분의 돌보심에 감사하며, 가족에게도 감사하고, 매일 주님을 붙잡는 생활안으로 들어갔고, 자식들, 손주들 그리워하는 시부모님에게 매주 얼굴을 보여드리고 안부를 나누고, 말씀을 나누니 시부모님도 이 시간을 무척 좋아하십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안배해 주신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시댁이든 친정식구들이든, David이랑 Timothy랑이든, 통화하고 나면 뭐라 설명할 수 없이 기쁘고 힘이 나더라고요. 메마른 광야에서 샘물을 마시고 적셔지듯이요.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희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도 또 한 번 감사드리고, 뵙고 싶다고 말씀드려요. 뵙고 아버지 어머니 꼭 끌어안고 싶네요.
2023년. 올 한 해도 잘 지내겠습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1년의 시간. 마무리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잘 계세요. 평강과 안식 가운데... 저희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고요.
특별히 이제는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도록,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 누리며 늘 부활 안에 사는 사람들로 발견되도록,
항상 주님을 으뜸으로 삼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들로 발견되도록.
이만 마치도록 할게요.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2023년 1월 14일 (1월 20일 아버지 기일, 1월 21일 어머니 기일을 앞두고)
막내 mina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