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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뵈뵈 Nov 04. 2024

부모님 전상서 6

-2022년 1월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께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1년 만에 다시 편지를 드려요. 2016년 1월, 어머니 주님 품으로 가신 후, 2017년부터 시작해 2022년 1월, 두 분께 여섯 번째 편지를 씁니다.    

 

1월이 되면, 지난 한 해 달려온 학교생활을 마치고, 방학이라 마음이 여유로운 가운데, 부모님께 이런저런 얘기 들려 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저희 이사 얘기 먼저 해 드릴게요. 최근에 저희가 이사를 했어요. 오늘까지 나흘 째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거의 다 끝나가요. 이사한 곳은, 저희가 OO에서 OO로 옮겨오던 해에 처음 1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예요. 2018년. 그땐 David과 Timothy 둘이 방을 함께 써야 해서 조금 큰 방인 안방을 주고, 저희 부부가 작은 방 1, 혜인이가 작은 방 2에 지냈었지요.     

그 뒤로 3년간 살았던 7동 29층 집은, 좀 넓고 좀 고급지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집이었어요. David이 한국으로 갔고, Timothy 가 8월에 미국으로 출국 예정이라 집 규모를 줄여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전에 살았던 이 4동 7층 집으로 이사를 했네요.

      

좀 더 좋은 집에서, 조금 더 작고  낡은, 좀 덜 세련된 집으로 이사를 와서, 불편하고 아쉬운 들도 있어요. (어른보다 아이들이 그걸 조금 더 느끼죠.) 하지만, 사는 데 필요한 공간은 다 있고, 사용하지 않을 짐들을 왕창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정리해 곳곳에 잘 배치하고 있답니다.       

바울형제님께서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모든 일과 각각의 일에서 비결을 배웠다고 하신 그 말씀(빌 4:12).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만족하기를 배웠다고 하신 말씀(빌 4:11)을 적용하고 선포하고 있답니다.

     

이사하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유익이 참 많아요.     

첫째, 3년 동안 쟁여두고 쓰지 않은 것들, 귀국할 때 가져가지 않을 것들,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많은 묵은 것들... 왕창 비워냈어요.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무겁지 않게, 넘치지 않게, 나그네로서 살기를 훈련하기'를 염두하며 살자라는 다짐을 새롭게 했고요.

    

둘째, 이사를 위해, 짐을 싸며,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때, 묵혀 두었던 추억 덩어리를 찾아내어 들여다보며, 잠깐 회상에 젖어 본 유익. 아이들 어릴 때 찍은 귀여운 사진 액자 보며,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컸구나’, 애들 공책, 애들 상장, 주고받은 선물, 편지 등을 보며 관련된 기억이 새록새록 났답니다.


셋째, 공간이 조금 더 좁아짐으로 인해, 공간과 수납함을 최대한 활용하는 배치, 지혜를 발휘하게 된 유익. (주로 O서방이. 항상 줄자를 들고 다니면서 했지요. ㅎㅎ )     


넷째, 주방에서 주로 일을 하는 제가, 의 동선을 고려해 물건들을 배치하는 비결을 터득한 유익.(주부 20년 차인데 이제야...ㅎㅎ)  

   

다섯째,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는 유익. 지난번 집은 아이들 방이 저쪽 깊숙이 있고, 저의 주요 일터인 주방에서도 멀리 있어서, 아이들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애들을 자주 못 봤어요. 그런데, 이번 집은 안방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Timothy 하나, Grace 방 하나가 있거든요. 지금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짐 정리도 같이 하느라, 자주 드나들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아이들을 가깝게 더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마지막으로 얻은 유익은, 이곳이 귀국 전 마지막으로 살게 될 집, 지금까지는 계속 살아갈 날들을 함께할 집이었지만 이제는 종착지가 보이는 집이라는 의식이, 매일 살아있어 저희를 깨우고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10년을 살고, 이제 2년이 남았어요. 이렇게 오랜 세월을 중국에서 보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시간은 유수히 흘러갔고, 저희 가족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거주의 경계’를 정하시는 하나님(행 17:26), 우리 인생의 노정의 한 단계, 한 단계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마 28:20),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 5:10)으로 인하여 저희 가정이 이렇게 주님 앞에 건강하게, 평강가운데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올 겨울은 무척 포근했어요. 이 도시는 폭설이 잦은 편이었는데, 올 겨울엔 두 차례 밖에 오지 않았고요. 어제부터 기온이 영하로 살짝 떨어져 좀 추워졌지만, 밖에 나가지 않으니 별 영향이 없습니다. 아, 집이 좀 춥긴 해요. 지난번 집에 비해서... 그런데, 추우면 히터도 틀고, 전기장판도 켜서 자니까 문제없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잘 지내셨어요? 또 저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며 지내셨겠네요...     

David이 대학생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 교회 안에 형제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주님과 교회생활을 누리고, 때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가고, 이모부 이모들도 뵙고... 부모를 떠나 지내고 있지만, 즐겁게 잘 생활하고 있는 것도 두 분의 중보기도 덕분...     

저희가 이곳 중국에서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도 아버지 어머니의 중보기도 덕분...     

우리는 다 누군가의 중보기도로 인하여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봅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해요. 아무런 요구가 없으셨던 두 분, 묵묵히 늘 베풀고 섬기셨던 두 분... 그래서 두 분께 어떤 원망도 서운함도 없이, 다만 감사함만 남아있나 봅니다. 돌이켜보면, 사춘기 시절에 엄마한테 대들기도 했고, 엄마도 화를 내시거나 야단을 치셨지만... 그런 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저에게 남아있는 건, 감나무가 있는 시골집 앞마당, 돼지우리, 키우던 개, 곡식 창고, 부엌에 아궁이, 제가 고구마튀김을 해 먹던 곤로, 논과 밭에서 일하시다가 돌아와 밥 하시던 엄마, 여름날 저녁에 앞마당에서 셋째 언니랑 노래 부르고, 배드민턴 쳤던 기억, 큰언니가 사다 준 머리 방울, 형부가 사다 준 ‘소년중앙’ 잡지책... 할아버지가 불러주시면 받아 적은 편지 (고모들께, 둘째 언니에게 보내시는...), 키 훤칠하시고 고운 미모를 가지셨던 할머니...     


저도 David한테 야단친 적 많고, Timothy랑 싸운 적도 많은데... 저희 아이들도 집을 떠나 한참 세월이 지나면, 그런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만 아련하게 간직하게 될까요? 그럴 것 같기도 해요. David이 작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저희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무척 감동이 되는 편지였어요.

      

근본적으로 부모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겠죠. 두 분께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제가 받은 것은, 그리고 저를 조성한 것은 두 분의 '조건 없는 사랑'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에 대한 반향으로, 저도 여전히 두 분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으니까요.


보이시지 않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눈에 보이는 '부모'를 통해 자녀들에게 알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께서 합당하게 하나님을 잘 표현해 주시고, 하나님의 대사로서 맡은 바 임무를 잘 이행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두 분이 저에게 보이신 그대로 하나님을 잘 대표하는 부모가 되도록 할게요.  

    

한 세대, 한 세대가 흘러간다는 것, 이어진다는 것이 실감 나는 지난 한 해였어요. 저희 가정의 첫 자녀가 스무 살이 되어, 가정을 떠나갔을 때... 제가 서울로 대학을 가서 자매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주님을 누리고, 형제자매님들을 누리고, 교회생활했던 그 삶을 David이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부모님 세대, 저희 세대, 자녀들 세대... (큰 언니는 더욱 그것을 느낄 것 같네요. 작년에 은 조카가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고, 큰 조카는 엄마가 되었으니...)     


David이 최근에 대학생 온전케 하는 집회에 참가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부른 찬송을 보내주었는데, 무척 누림이 되었어요. 20대 때, 교회생활 안에서, 이런 귀한 찬송을, 보배롭고 귀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어떠한 축복인지... 이 20대는 너무나 귀하고,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의 황금기' 임이 분명해요. 그 시기에, 주님께서 저희를 교회 안에서 '건강한 말씀'으로 양육해 주심이 얼마나 감사한지...


David, Timothy, Grace가 교회생활 안에서 그들의 20대를 분별되어, 건강한 말씀을 누리며, 형제자매들과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함께 기도해 주세요.  

   

주님께서 저희 가정에 주신 세 아이들이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재능과 기질과 성향을 따라,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신기해요. David은 시를 쓸 줄 아는 국어교사로, 탐험과 모험을 좋아하고, 도전정신이 강했던 Timothy는, 다양한 삶을 탐색하고 경험해 본 후, 어느 분야에선가 리더로 자리 잡을 듯하고, 오감이 예민하고 조용히 그림 그리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Grace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려고 진로를 정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살고 확대하고(빌 1:20~21),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이들이 되기를...     


아버지, 어머니!  이제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저의 부모님이셔서 두 분께 너무 감사하고, 두 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랑으로 양육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저도 두 분 사랑합니다.     

내년에 또 인사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2022. 1. 20

막내딸 mina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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