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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다 Nov 08. 2024

I'll be back

월요일의 강한 복수 의지와 재등장을 대하는 나의 자세

표지사진은 영화 터미네이터 I'll be back으로 네이버 검색한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터미네이터 하면, 떠올리는 장면일 것이다.   출처: 네이버

 

 “엄마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 중에 제일 무서웠던 게 뭐야? 터미네이터 그거야?”


 초등학생인 우리 할로가 며칠 전 있었던 학교 행사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게 꽤 무서웠나 보다. 영화 이야기를 신나게 쏟아내다가 묻는다. 내가 전에도 여러 번 말했나 보네. 할로가 제목을 다 기억한다.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1984').

내가 기억하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포스터가 이것이 맞는가. 나의 나이를 새삼 실감한다. 약간은 혼란스럽기도.   출처: 네이버


 6살,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당시 우리 아빠는 교통사고로 꽤 오랜 기간 병원에 계셨다. 나는 평일엔 유치원에서 가까운 고모 댁에서 지내고, 가끔 어떤 주말에는 아빠가 계신 병원에서 하룻밤 자고 오곤 했다.

 이제 이 기억도 꽤 오래되어서 그때가 어떤 계절이었는지, 병원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빠를 만나면 뭘 했었는지 또렷하진 않다. 다만, 내 기억의 시작은 이러하다.


 아빠 옆에서 잘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이 떠졌다.

 아빠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그간 엄마아빠와 같이 보던 것과는 다른 느낌, 그것은 영화였다. 아마 ‘주말의 명화’ 같은 프로그램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날을 토요일이라고 짐작해 본다.


 태양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모양새일까. 시뻘건 불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그야말로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불구덩이에서 들어가는 건지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무서웠다. 이불을 마법망토처럼 뒤집어쓰면 덜 무서울까 싶어 이불을 두 손으로 끌어당겼다. 눈은 빼꼼 내밀었다. 왜 눈을 감지 않았을까. 무섭지만 궁금했겠지. 어린 나이에도 쫄깃쫄깃 마음을 졸여가며 팽팽한 긴장감과 쾌감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그 정체 분간이 어려운 덩어리는 그 불구덩이 속에서 죽지도 않고 뭔가를 말했다.


 I'll be back.

 

 나의 기억 속에 저장된 바로 그 장면, 그리고 이후에도 꿈에서도 나를 괴롭혔던 바로 그 장면.   출처: 네이버


 이 말을 중학교에 가서야 알파벳을 배운 내가 알아들었을 리는 없고, 자막을 읽었던 걸까. 저 대사가 맞는건지도 의문이다. 그 시대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영화는 모두 더빙이었던 것 같으니 이 기억도 정확한 건 아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 그때 그 무서웠던 영화가 터미네이터이고,

터미네이터의 마지막 장면을 내가 본 것이고,

그 장면에서 I'll be back이라는 명대사가 나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정보들과 내 기억이 마치 비빔밥이나 잡채처럼 뒤섞여서 나에게 그렇게 남게 된 것 같다. 솔직히 내 기억 속에는 불구덩이 용광로만 있지 저런 손가락은 글쎄.


 아무튼, 그 장면은 정말 끔찍했다. 어휴.


 그리고 그 이후로 종종 악몽을 꾸었다. 옛날 우리 집 지하실에 있던 연탄보일러처럼 생긴 작은 용광로에서 불이 나고 거기서 흐느적거리는 쇳덩이 로봇이 걸어 나오는 꿈이었다. 그럴 때마다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러고 나면 한참을 잠들지 못했고, 그 꿈을 꾼 다음 날에는 훤한 대낮에도 생생한 그 꿈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다.


 할로 덕분에 오랜만에 그 영화가 생각났다. 터미네이터. 그리고 아윌비백(I'll be back).


 그리고 난 섬뜩했다.

 오늘은 일요일이거든.

 월요일이 말했다. I'll be back.


 워킹맘인 나에게 월요일은 터미네이터이다.

 터미네이터처럼, 월요일은 일요일 저녁 6시쯤이면 늘 나에게 말했다. 더욱 강력한 복수를 위해 내가 다시 나타나리라.


나의 출근은 싫고 아이 등교는 괜찮다. 좋다고 하려니 조금 미안함이 있다.   출처: 픽사베이


  일요일 오후, 저녁식사 준비를 하거나 혹은, 저녁식사 후 설거지를 할 때는 머릿속이 너저분해진다.


아. 출근하기 싫다. 주말은 왜 이리 짧지.

이번 주말에 할 일 많았는데, 못한 게 더 많네.

여름옷 세탁한 것들 정리하려고 베란다에 걸어뒀는데 이번주도 그냥 둬야겠다. 통풍시킨다 생각하지 뭐.

가습기도 꺼내야 하는데, 한번 세척하고 써야겠지. 언제 꺼내나.

침구를 차렵 말고 극세사로 바꿔줘야 하나. 이불 빤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다음 주에 바꿔주자.

할로 숙제는 다 했나. 내일 단어 시험 있는데 그래도 자기 전에 한 번은 확인해야겠지. 잔소리한다고 싫어하려나.

아니, 할로아빠는 해 다지고 깜깜한데 분리수거랑 쓰레기 언제 내다 버릴 거람. 지금 하라고 하면 하려고 했는데 시킨다고 짜증 내겠지.

할로아빠가 좀 덜 자고 날 도와줬더라면. 아니, 그 시간에 아이랑 좀 나갔다 왔어도 내가 후딱 다 했을 텐데. 아, 정말.

다음 주부터 추워진다는데 남편한테 얘기해서 옷이나 한 벌 사러 다녀올걸. 다음 주에 뭐 입고 나가지.


 어휴.


 이렇게 마무리되는 내 주말. 이 허망함.


 이 휑뎅그렁함은 지난주의 분주함과 그 핑계로 내가 원하는 나의 일주일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더 무거웠다.

 길지 않은 근무시간이지만 일이 바쁘기도 했고, 난데없는 자동차 사고로 정신이 없었고, 지난 주말 학회 참석 때문에 밀린 집안일들이 나를 압박했다. 운동도, 독서도, 글쓰기도 매일 못했다. 아이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나의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고 눈빛은 사납고 입꼬리만 웃은 채로 ‘조금 빨리 해볼까’를 외쳐댔다.

 게다가 평일에 겨우 묶어둔 내 식욕이 금요일밤부터 터져버렸다. 왜 나는 토요일 그 시간에, 오돌뼈를 시켰을까. 다음 날 배 아파할걸 알면서도 말이다.


 계획한 일을 모두 마치지 못한 찝찝함이 짜증이 되어버리는 건 오늘이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일이 월요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할로는 어렸을 땐 매일 오전 6시면 일어나 나를 깨우더니, 이제는 절대 알람을 스스로 끄질 않는다. 그 소리가 안 들린다니. 그때마다 이 아이가 이제 다 컸구나,라고 느낀다.   출처: 픽사베이


 그리고 드디어 월요일 아침.


 아침 설거지 하면서 오늘 할 일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지난주에 못했던 운동 좀 해볼까. 이번주부터 야식은 절대 먹지 말아야지. 이번주에는 그 책 다 읽어보자.

지난주에 그 환자분이 오늘 오셔야 할 텐데. 지난 학회에서 배웠던 것들을 설명해 보자. 그리고 그 환자에게는 그 약을 좀 써봐야겠다.

오늘부터는 할로에게 말하기 전에 5분만 참아보자. 남편의 얼굴도 하루 한 번은 쳐다보자.


 그러고 보니 오늘이 월요일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지난주, 그러니까 어제까지도 엉망진창으로 지냈는데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이유로 나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되고 있구나.

우리가 보통 뭔가 새롭게 시작을 하려고 하는 시기는 보통 연 초, 월 초, 그리고 주 초인데 말이야. 오늘은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이지.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많은 전략을, 지금, 이 월요일에 세우고 있고 (잘 되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걸 알지만) 또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새것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물건을 사면 언박싱이라고, 포장 푸르는 것까지도 SNS에 올린다. 올해 마흔 살인 우리 남편은 새 옷을 사면 계절과 날씨 무관하게 바로 다음 날 입고 나간다. 우리 할로도 새 책이나 장난감이 있으면 집에 오자마자 꺼내본다.

나도 그렇다. 새 화장품으로 치장을 하면 누군가 나에게 오늘 예뻐 보이시네요,라고 말해줄 것 같다.


 새것이란 그런 거다.


 오늘, 나는 그 따끈따끈한 신상, 월요일을 받았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상쾌함과 설렘을 받았다.


어제의 나는 왜 그리도 월요일의 I'll be back에 겁을 먹었던 걸까.


주중의 게으름과 주말의 흥청망청은 여전히 후회와 아쉬움이 되겠지만

출근과 등교가 어우르는 월요일의 재등장은 더 이상 복수가 아니다.

더 좋은 네가 될 수 있도록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우리 다시 만나,라는 의미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월요일을 환영하느냐 마느냐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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