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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맘 뤼 Oct 22. 2024

앨리스의 반향어는 어떻게 소거되었을까?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언어 (1)

앨리스의 반향어는 어떻게 소거되었을까?


반향어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증상이다. 반향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즉각 반향어는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 즉시 따라 하는 것이고 지연반향어는 말 그대로 일정 간격을 두고 따라 하는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범주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언어발달시기에 반향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반향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해서 모두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앨리스는 생후 24개월부터 30개월까지 하루 발화량의 90퍼센트를 반향어로만 말을 했다. 앨리스가 막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 24개월이 되었을 때는 반향어로 말을 해도 그 모습이 신기해서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반향어로만 말을 하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자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지긋지긋한 반향어는 언제 끝날지, 아이와 영영 핑퐁 대화는 꿈꿀 수 없는 것인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앨리스가 31개월이 되자 거짓말같이 아이의 반향어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앨리스의 반향어는 어떻게 소거된 것일까?  

   

반향어를 소거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이 반향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한다. 즉각 반향어의 경우 아이들이 반향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문장이 입력은 되었으나 아이가 그 말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문장을 통으로 입력하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즉각 반향어는 아이의 인지기능과 언어기능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소거가 된다. 아이의 인지와 언어기능이 그대로인데 어떤 특별한 방법을 써서 반향어만 소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연반향어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인지기능과 언어기능이 또래 수준이더라도 예전에 들었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날 때 지금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지연반향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연반향어의 경우 소거하는 것을 목표로 두기보다는 상황에 적절한 말로 바꾸어서 표현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먹기 싫은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를 받을 때 자폐스펙트럼 아이는 “싫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먹기 싫어도 조금씩은 다 먹어보는 것이 좋아!”라고 엄마가 예전에 했던 말을 지연반향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엄마가 예전에 먹기 싫어도 조금씩은 다 먹어보는 것이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먹기 싫어요.”라고 표현할 수 있도록 예시 문장을 즉시 들려주고 따라 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하루 종일 반향어로만 말을 한다면 아이와 어떤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앨리스의 반향어가 정말 심했던 시기에 내가 자주 사용했던 의사소통방법이 있다. 다음 예시 대화를 보자.     


엄마: (귤을 보여주며) 이게 뭐야?

아이: 이게 뭐야?      


반향어가 있는 아이의 일상적인 대화 패턴이다. 여기서 엄마가 질문을 할 때 대답까지 추가해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엄마: (귤을 보여주며) 이게 뭐야? 귤이야.

아이: 귤이야(반향어)     


아이가 엄마 말의 뒷부분을 따라 하므로 대답을 적절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대화패턴을 수시로 반복해서 연습한다.      


엄마: (귤을 보여주며) 이게 뭐야?

아이: 귤이야     


이러한 패턴 연습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대답 부분을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로 하게 된다. 아이가 패턴을 외웠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이런 방법으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화 패턴을 많이 쌓아 놓아서 반향어가 매우 심했던 시기에도 본인이 잘 아는 질문에 대해서는 종종 반향어가 없이 소통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이를 잠깐 본 어른들은 아이의 반향어를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기억력이 좋아 수많은 반향어를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 반향어들은 데이터베이스다.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대화 패턴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당장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꼼수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시간을 길게 두고 본다면 언어 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어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지름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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