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 아이와의 미래 준비하기 (1)
매년 유치원에서 신입생을 모집하는 시기가 되면 아이를 어떤 기관에 보내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양육자들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나에게도 자신의 아이가 어떤 교육기관에 다니면 좋을지 문의하는 양육자들이 많다. 이런 질문에 나는 가능하면 아이를 공립유치원에 보내라고 추천하는 편이다.
이번 장에서는 내가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교육기관으로 공립유치원을 추천하는 이유와 아이를 공립유치원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선책으로 어떤 교육기관을 선택하면 좋을지 그 기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이란?
흔히들 자폐라고 하면 자발어를 전혀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케이스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자폐성 장애는 그 범위와 양상이 굉장히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은 지능 지수가 평균 지능(85) 이상인 자폐스펙트럼을 일컫는 말이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꼭 지능지수가 85 이상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자발어를 문장으로 할 수 있다면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으로 간주하고 교육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에게 공립유치원이 좋은 이유
1. 학습 대신 대신 자유놀이 강조
내가 공립유치원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립유치원에서는 누리과정을 바탕으로 한 놀이중심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립유치원에서는 전통적으로 학습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거의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다양한 방식으로 놀이를 한다.
물론 공립유치원이 학습을 거의 시키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학습량이 많은 사립유치원이나 유아 전일제 학원(영어유치원 및 놀이학교)을 교육기관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단점으로 여기는 공립유치원의 놀이중심교육을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만 3-5세 아이들의 뇌 발달 과정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크게 다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EBS 놀이의 힘 발췌)
-1층 뇌(생명의 뇌) - 태어나는 순간 완성되는 뇌
-2층 뇌(감정과 본능의 뇌) - 유아기에 발달
-3층 뇌(이성의 뇌)- 만 3세를 넘어서야 빠르게 발달
태어나는 순간 완성되는 생명의 뇌를 제외하고 2층 뇌와 3층 뇌는 놀이를 통해 발달한다. 특히 3층 뇌(대뇌피질 부위(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 중에서도 제일 먼저 발달하기 시작하는 것은 전두엽이다. 그런데 이 전두엽이라는 것은 놀이를 할 때 필요한 거의 모든 영역을 담당한다. (창의력, 계획력, 실행력, 문제해결력, 협동력 등) 따라서 놀이를 반복할수록 전두엽의 회로는 더욱 치밀해지고 촘촘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전두엽은 유아기에 기초가 형성되고 초중고를 거쳐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발전한다. 그래서 유아기에 전두엽의 기초를 잘 세워놓아야지만 비로소 아이가 학령기에 학습을 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아기에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놀이 대신 학습을 시키게 되면 전두엽의 발달을 저해하여 오히려 뇌를 망치게 된다.
또한 2~7세의 아동(인지발달이론의 전조작기 아동)은 추론, 추상적인 사고를 하기 이전의 단계에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추상적인 사고를 요하는 학습을 시킨다면 학습의 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해 좌뇌의 기능이 떨어져 생각하는 능력이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상기의 내용은 EBS 놀이의 힘/ EBS 이미 완벽한 아이에서 발췌하였다. 유튜브에서 전편을 꼭 시청하기를 권한다.)
결론적으로 만 5세 이하의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키지 않고 충분한 놀이 시간을 제공하는 것은 아이의 두뇌 발달을 촉진하는 가장 쉽고 바른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두뇌 발달이 중요한 만큼 더더욱 전통적인 학습을 피하고 놀이중심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에 아이를 보내야 할 것이다.
2. 무료 사회성 치료의 효과 (특수교육대상자 한정)
아무리 언어 및 인지 기능이 뛰어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라 할지라도 비자폐 아이들과 비교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아이들과 팀을 꾸려 사회성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회성 치료라는 것이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비슷하게 기능이 좋은 아이들로 그룹을 매칭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어 공립유치원에 다니게 된다면 유치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사회성 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왜냐하면 공립유치원에서는 아이들끼리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자유놀이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질 뿐만 아니라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놀이를 관찰하고 필요한 순간에 개입을 해주는 특수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니거나, 혹은 특수교사가 없는 유치원이라면 자유놀이 시간이 많다는 것은 자폐스펙트럼 아이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물론 자폐스펙트럼 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사회성 치료에 다니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사회성 치료기관도 자폐 아이가 비자폐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놀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가 특수교사가 있는 공립유치원에 특수교육 대상자로 다니는 것은 독보적인 메리트가 있다.
보낼만한 공립유치원이 없다면?
위의 장점들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집 근처에 공립유치원이 없어서
-공립유치원은 있지만 특수교사가 배치되지 않아서
-특수교사도 있지만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아서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지만 특교자 방과후반이 없어서
-완전통합을 원했는데 부분통합이어서
-전체 학생 중 특수교육대상자의 비율이 너무 높아서
등의 이유로 아이를 공립유치원에 선뜻 보내지 못하는 양육자들도 있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공립유치원에 보내지 못할 상황이라면 어떤 교육기관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좋을까?
1. 학습보다는 놀이에 중점을 둔 곳
-공립 유치원을 제외한 다른 교육기관(어린이집, 사립 유치원, 학원 등)은 각각의 기관마다 특색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어린이집은 괜찮은데 영어유치원은 보내지 마세요"와 같이 전체 기관을 묶어서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 같은 유아 전일제 학원은 높은 확률로 학습 중심으로 운영되며 상가건물에 위치해 있어 비좁고 안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고 단독 건물을 가지고 놀이 중심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원생들이 높은 학원비를 내는 만큼 기관이나 타 학부모가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를 환영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사립 유치원의 경우 교육과정 시간이 공립보다 길어 맞벌이 양육자에게 시간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원에 따라 학습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으므로 사전에 꼼꼼히 알아보아야 한다. 예체능이나 바깥놀이가 특화인 곳은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줄 수 있어서 좋다.
-어린이집도 맞벌이 양육자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역시나 원장의 방침에 따라 학습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으므로 미리 체크해야 한다.
-장애통합어린이집의 경우 원칙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 곳은 공립유치원만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특수 담당 교사가 특수 아이만 담당하지 않고 투담임처럼 모든 아이들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은 학습은 시키지 않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의 진학을 권한다는 것이다. (전일제 학원을 제외한 이유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원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었다면 놀이 중심의 유아 전일제 학원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2.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이 낮은 곳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1학년 학급당 인원수는 21명 내외이다. (2024년 기준) 그런데 우리 동네 상당수 사립유치원의 학급당 인원수는 25명 내외이다. 21명의 초등학생과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보다 더 많은 인원수의 유치원생들을 데리고 교사 1명이 어떻게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초등교사의 입장에서 솔직한 마음으로는 교육활동이 의도한 대로 진행이 되고 있는지 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혹시 지금 알아보고 있는 유치원의 학급당 인원수가 20명을 초과한다면 반드시 제외하길 바란다. 15명을 초과한다면 더 나은 대안은 없는지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 아이가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이라면 높은 확률로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거나 혹은 수업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가 학급 아이들을 충분히 케어할 수 있는 소규모의 학급으로 진학하는 것이 필수이다. 학급당 인원이 10명~15명 내외인 곳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3. 자폐스펙트럼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곳
공립유치원의 특수교육 대상자가 좋은 이유는 내 아이의 자폐스펙트럼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립유치원이 아닌 다른 유아교육기관을 선택한다면 입학 전에 반드시 아이의 상황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아이가 입학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
어차피 말해 봤자 도움을 주기보다는 편견만 가질 것 같아서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이 있다고 말하기 싫은 양육자들의 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교사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면 학급에서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가 누구인지 파악이 가능하다. (원래 또래 집단 속에 있을 때 아이의 신경다양성의 특징이 가장 잘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한 문제 상황이 발생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말하는 것이 훨씬 낫다. 만약 원에서 입학을 거부했다면 신경다양성을 가진 학생을 포용할 능력이 안 되는 기관이라는 뜻이므로 차라리 잘 된 것이다.
결론
언어기능과 인지 기능은 또래 수준이나 사회성은 또래보다 낮은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자유놀이를 싫어하지만 학습은 좋아한다. 그래서 아예 학습식의 유아교육기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많이 나돌고 있다. 하지만 만 3세~5세 아이들은 뇌 발달을 위해 놀이를 해야 하는 시기다.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뇌 발달을 위해 놀이를 해야 한다.
또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좋으나 싫으나 매일매일이 놀이의 연속이다. (쉬는 시간 + 수업 내 모둠 활동) 제도권의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놀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아이에게는 특수교육 대상자로 공립유치원에 진학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특수교사가 있는 공립유치원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다.
특수교육 대상자로 공립유치원에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기관 중 학급 당 인원이 15명 이하인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기관에 입학하기 전 아이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과정은 필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