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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entMeditator Oct 19. 2024

나는 좋은 팀장일까?


나는 싸우는 팀장이다.
팀장이 되기 전, 가장 답답했던 것은 우리 팀의 업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다른 부서의 일을 자꾸 떠맡게 되는 상황이었다.
공무원 사회라는 것이 워낙 업무 성과를 수치로 명확히 계량하기 어려운 곳이다.
내가 근무하는 부서는 기획과 혁신을 주도하는 곳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지시를 받으면 그 지시를 수행하는 말단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세종처럼 정책을 만들어내는 곳도 아니고, 그저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의 전부다.




그런데 일을 많이 맡는다고 해서 팀이나 개인에게 꼭 좋은 결과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업무량이 과도해지면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실수도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사무관으로 승진해 팀장 자리를 맡았을 때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불필요한 일을 줄여보자는 것이었다.
팀이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우리와 관계없는 일은 과감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가 맡지 않으려는 업무는 결국 누군가는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그 일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싸우는 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부서의 일을 떠안지 않으려면 부딪쳐야 했고 그로 인해 기관장에게는 협조적이지 않은 팀장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기관 입장에서는 모든 일을 원활하게 처리하는 것이 이상적이니까.
그러나 나는 불필요한 일을 거부하고 우리 팀에 집중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팀원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나와는 달리 더 많은 일을 맡고 싶어 하는 욕심 있는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불필요한 일을 거부하고 싶다.
그리고 이 결심은 단순히 일을 덜 하려는 것이 아니라 팀이 더 중요한 업무에 집중하고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다.




물론 내 모습이 전형적인 '월급 루팡'처럼 보일 수도 있고, 무사안일주의에 젖은 공무원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나 스스로도 그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맡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굳이 나서서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싸운다.
불필요한 일을 걸러내기 위해 우리 팀이 정말 해야 할 일만 처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조정하고 막아선다.




또한, 타 부서가 처리하고 있는 우리 업무를 되찾아오는 것도 그 과정의 일환이다.
누가 봐도 우리 팀에서 해야 할 일인데 타 부서가 맡고 있는 경우, 그 업무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결국 책임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그 일을 되찾아와 우리 팀에서 처리하는 것이 더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맡겨야 할 일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좋은 팀장일까?
때로는 내가 너무 고집스럽고 비협조적인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결국 나의 목표는 하나다.
팀이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일로 낭비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싸우는 팀장으로서 그런 신념을 잃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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