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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Oct 27. 2024

주부의 쓸쓸한 가을


가을은 차갑고 외롭고, 그리고 두려웠다. 그런데 올해 가을은 어쩐지 아무 생각이 없다. 매년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고서 내 마음속 돌멩이들도 굴러다니느라 마음 아파했었는데 올해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봐도, 찬 바람에도 어쩐지 멍할 뿐이다.

해가 벌써 거의 지나가버렸다. 무계획으로 시작했던 올해는 정말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육아를 하고 병원을 가고 약을 먹는데 집중했다. 봄엔 우울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여름엔 정신과에 가서 울기 바빴다. 이젠 10월 가을. 멍한 정신에 물렁물렁한 채로 육아만 간신히 하는 가을이다.


쓸쓸한 가을을 주변 사람들과 활기차게 보내면 좋겠지만 동네 엄마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게 한참이다. 아이 얘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우울증이 시작되고 나서 사람들과 만나는 게 힘들었는데 그 영향도 없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먼저 커피 마시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얇은 잠바 하나를 걸쳐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다. 장을 보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너무도 푸르고 맑은 공기와 차가운 바람에 홀가분한 마음. 언제나 혼자서 어딜 다니는 것도 나에겐 익숙하고 편한 일이다.


동네에서 자발적 외톨이가 된 나는 그 때문에 한 번도 외롭다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신경 쓸 사람들이 없어 편하다 생각했다. 그러다 어쩌다 만나는 동네 지인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걱정부터 앞섰다.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내가 말하는 걸 오해하지는 않을지. 자발적 외톨이는 대화스킬 부족으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오늘도 하고 만다.

가끔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는 내가 이중적이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보다 혼자 있을 때가 편하고 그런 잔잔한 상태가 나는 좋다.

 

곧 겨울이 온다. 남은 올해도 지금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혼자서 장을 보러 다녀오고 청소를 하고 밥을 하는 시간들.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게 평온하면서도 어쩐지 잘 모르겠는 나의 잔잔한 가을이다. 그동안의 우울을 덜어내고 그 어떤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조금은 잘 흘러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잘 흘러가 올해 남은 시간은 더 잘 보낼 수 있을까.

가족 외엔 언제나 혼자고 또 혼자다. 봄엔 우울을 만나고 여름엔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고 가을엔 외톨이인 나를 본다. 남은 날들조금씩 나아지는 계절을 보내길 바란다. 좀 더 활기찬 나이기를. 따뜻한 나이기를. 기죽지 않고 사람을 겁내지 않기를.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겨울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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