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차갑고 외롭고, 그리고 두려웠다. 그런데 올해 가을은 어쩐지 아무 생각이 없다. 매년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고서 내 마음속 돌멩이들도 굴러다니느라 마음 아파했었는데 올해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봐도, 찬 바람에도 어쩐지 멍할 뿐이다.
올 해가 벌써 거의 다 지나가버렸다. 무계획으로 시작했던 올해는 정말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육아를 하고 병원을 가고 약을 먹는데 집중했다. 봄엔 우울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여름엔 정신과에 가서 울기 바빴다. 이젠 10월 말 가을. 멍한 정신에 물렁물렁한 채로 육아만 간신히 하는 가을이다.
쓸쓸한 가을을 주변 사람들과 활기차게 보내면 좋겠지만 동네 엄마들과 교류를 하지 않은 게 한참이다. 아이 얘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우울증이 시작되고 나서 사람들과 만나는 게 힘들었는데 그 영향도 없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먼저 커피 마시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얇은 잠바 하나를 걸쳐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다. 장을 보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은 너무도 푸르고 맑은 공기와 차가운 바람에 홀가분한 마음. 언제나 혼자서 어딜 다니는 것도 나에겐 익숙하고 편한 일이다.
동네에서 자발적 외톨이가 된 나는 그 때문에 한 번도 외롭다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신경 쓸 사람들이 없어 편하다 생각했다. 그러다 어쩌다 만나는 동네 지인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걱정부터 앞섰다.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내가 말하는 걸 오해하지는 않을지. 자발적 외톨이는 대화스킬 부족으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오늘도 하고 만다.
가끔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는 내가 이중적이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보다 혼자 있을 때가 편하고 그런 잔잔한 상태가 나는 좋다.
곧 겨울이 온다. 남은 올해도 지금과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혼자서 장을 보러 다녀오고 청소를 하고 밥을 하는 시간들.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게 평온하면서도 어쩐지 잘 모르겠는 나의 잔잔한 가을이다. 그동안의 우울을 덜어내고 그 어떤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조금은 잘 흘러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잘 흘러가면 올해 남은 시간은 더 잘 보낼 수 있을까.
가족 외엔 언제나 혼자고 또 혼자다. 봄엔 우울을 만나고 여름엔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고 가을엔 외톨이인 나를 본다. 남은 날들은 조금씩 나아지는 계절을 보내길 바란다. 좀 더 활기찬 나이기를. 따뜻한 나이기를. 기죽지 않고 사람을 겁내지 않기를.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겨울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