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나도 잘 모른다는 말
아이가 커서 더 말을 잘 하게 되면, 또 말을 더 잘 알아듣게 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까먹을지도 몰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하고 싶은 그 말은,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나도 잘 몰라"라는 말이다.
나도 잘 모르겠다.
왜 날이 밝아오면 침대에서 일어나야 하는지. 왜 시간에 맞추어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지. 왜 과자가 아니고 쌀밥을 먹어야 하는지. 왜 시간이 되면 잠을 자야 하는지. 물론 이런 것들은 지나치게 예사롭다.
또 이를테면, 신발 가게에서 네가 장식이 달린 빨간 구두를 골라도 그것 대신 무채색 운동화를 사주어야 했는지, 나도 잘 모른다. 소음이 이웃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네가 마룻바닥을 뛰어다닐 수 없는 아파트가, 왜 그토록 값이 비싼지. 네가 부엌에서는 간장을 쏟고 벽지에는 낙서를 하는 당연한 일상사가 왜 내게는 이따금 짜증의 촉매가 되는지.
네가 조금 더 말을 잘 하게 된다면 너는 '왜'라는 질문을 연거푸 내게 던질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든 답해보려 애쓰게 될 테고 말이야.
빨간 구두를 신고 뛰면 발이 아파서 멀리 가기 힘들어.
뛰고 싶으면 바깥에 나가자. 집에서 뛰면 이웃에 방해가 돼.
간장은 요리할 때 쓰는 거야. 장난칠 때 쓰는 게 아니야.
나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로 너를 설득하겠지.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그건 원래 그런 거라고, 지켜야 한다고 못박을 거고. 나도 잘 모르는데, 네게는 모른다는 말부터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너의 행동을 살펴본 결과, 적어도 어렸을 때의 나에 비해서 굉장히 '순한' 아이인 건 명확하다. 어렸을 때 나는 캐릭캐릭체인지 주인공이 그려진, 불빛이 나오는 신발을 갖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 친 장난으로 인해 온 집안 혹은 동네가 때때로 시끄러웠던 것을 생각하면 층간 소음은 지나치게 사소하다. 간장이 뭐야, 나는 주방의 거의 모든 조미료를 한 번씩은 부어서 섞어 보았던 것 같다.
집에서건 밖에서건 불장난을 종종 해서 크게 혼났다. 학원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려야겠는데 연기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참기름과 식초를 섞어 한 컵을 마신 날이 있다. 속이 메스꺼워 꾀병이 꾀병이 아니게 됐던 것 같다. 학습지 숙제가 하기 싫어서, 밀가루랑 물을 섞은 튀김옷을 학습지에 입히고는 후라이팬에 검게 튀겨 화단에 묻은 적도 있다.
이웃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 내가 보기엔 너무 많았다. 이웃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한다면 무인도에 가서 살면 가장 행복할 것 같았다. 근데 무인도에는 눈치 볼 이웃이 없어서, 그래서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기준이 서지 않을 것 같기도. 그런 공상을 많이 했다. 그랬던 나에 비하면 아직 우리 아이는 참 '얌전'하다.
내가 아는 전부는 다음과 같다.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라는 것, 또 우리는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살 수는 없다는 것. 일상은 대부분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고, 모르는 걸 알려고 하는 노력이 극단에 다다르면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모른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