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올해 92세가 되셨습니다. 장수하셨죠?
4년 전까진 해마다 직접 지으신 참깨로 참기름을 짜 주시고, 직접 수확한 밤을 지인들까지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한가득 담아 주실 정도로 건강하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는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4년 전 허리를 다쳐 입원하신 이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바로 요양원으로 가셨거든요. 할머니 본인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사실 가족들 모두에게도 급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는 ‘우황청심환’을 좋아하십니다.
할머니께 ‘우황청심환’은 만병통치약과 같은 거였습니다. 어디가 아프건, 어떤 상황이건 ‘우황청심환’ 한 알만 드시면 다 좋아졌다 하실 정도로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용돈보다 더 소중히 챙기는 것이 ‘우황청심환’이었습니다.
최근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 됐습니다. 작년까진 약간의 ‘증상’만 있었지만, 올 해가 되면서는 가족들을 포함한 ‘사람들’에 대한 치매 증상이 심해졌어요.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반복하셨거든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알아보는 사람이 저와 삼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저도 잘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를 잘 떠올릴 수 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렇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우황청심환’이었습니다.
면회를 갈 때면 ‘우황청심환’ 한 알을 사서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제가 할머니를 만나는 순간에 한 알을 까서 입에 쏙 넣어드립니다. 그리곤 볼도 한 번 만지고, 손도 잡아 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저를 알아보시더라고요.
비록 치매 때문에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해도 ‘우황청심환’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그 한 알을 입에 넣어주는 순간엔 제가 누구인지 떠올려 주시니까요.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만병통치약 ‘우황청심환’이 이젠 저에게 치매도 이기는 약이 되었습니다. 아마 이 ‘우황청심환’은 평생 저에게 만병통치약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치매도 이기는 약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