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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극장들이 사라지고 있다

스크린으로 영화를 마주하기

by 가다은

극장들이 사라지고 있다



2024년 대한극장의 폐업 소식은 마치 오래된 가족사진 속 누군가가 사라진 것처럼, 순간 뭉클해지기도 했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익숙했던 이름들이 이제는 ‘지점 폐관’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등장한다. 예매 창을 열어도, 왠지 협소해진 영화관, 상영관이 하나둘 줄어든다. 텅 빈 객석을 보면 내 마음도 함께 비워지는 기분이다.


변화는 필연이라지만, 이렇게 빨리 극장의 감각이 ‘비일상’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콘텐츠가 손 안에 들어오는 시대, 이제 극장이 왜 필요한가를 물어야 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나조차도 어느 순간, 극장 대신 OTT를 클릭하고 있었다. 편리함이 감각을 지워간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극장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어둠 속에서, 타인의 숨소리와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 그 시간은 디지털만으로 채울 수 없는, 오직 공간과 감각의 몫이었다. 영화는 혼자 보아도, 함께 보는 예술이었다. 우리는 그 몰입의 리듬 속에서 세상과 자신을 비로소 들여다보았다.


가평의 작은 영화관 '1939 시네마' 그리고 '자체휴강시네마' 같은 독립 상영 공간들이 그 불씨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극장은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손익을 넘어선 감정의 장소, 그곳은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공감의 장소’다. 단편영화를 틀고, 프라이빗 상영을 하고 영화를 큐레이션하는 그들의 손길엔 사랑이 배어 있다. 그건 예술이 자라나는 방식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입장권 부과금 부활, 영화발전기금 재편 같은 제도적 변화도 다시금 숨을 틔워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객, 바로 우리다. 우리가 자주, 가까이, 영화관을 찾아야 한다. 멀티플렉스든 작은 단관이든, 한 번 더 발걸음을 내딛는 일. 그 행위가 한국 영화의 생명선이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믿는다. 한국 영화는 위대한 상상력을 가졌다. 그것은 가난 속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내던 예술의 용기였고, 스크린 너머에서 관객에게 말을 걸던 영혼의 울림이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사랑했고 함께 성장해왔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극장에 간다.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스크린에 빛이 들어올 때, 내 안의 무엇도 함께 환하게 깨어날 것이기에. 우리가 이 어둠을 지나 극장에서 영화와 다시 만나는 날, 그것은 산업의 부활이 아니라, 감각의 귀환일 것이다. 영화는 살아 있고, 우리는 그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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