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와 ‘마술적 리얼리즘’ (4-3)
진기가 죽은 뒤에도 농성은 계속되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이진오네 공장이 폐업하고 매각하면서 문을 닫았고, 그게 사실은 이름만 바꿔 자본을 이동시킨 것이라는 게 들통이 났다. 해고자들은 무기력하게 흩어졌고 버티는 사람들은 오십명에서 삼십명으로줄어들었다가 십여명이 남더니 이제 다섯이 가까스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진오는 어느새 술집을 나와 굴뚝에 돌아왔고 침낭 속에서 고치에 든 애벌레처럼 꼬무락거리고 있었다. 진기도 따라와서 혼자도 비좁은 텐트 안에 비스듬히 누웠다.
“니 장례식에 못갔다 그때 본사 건물 앞에서 며칠째 시위 중이었거든.”
이진오의 말에 진기는 킬킬 웃었다.
“세상이 변할까? 점점 더 나빠지구 있잖아.”
“살았으니까 꿈틀거려보는 거지 그러다보면 아주 쬐끔씩 달라지긴 하겠지.”
이진오는 텐트 자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본문 201~202쪽
이 장면은 진오가 고공 농성을 이어가는 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의 폐업과 매각에 맞서 싸우지만, 결국 자본은 이름만 바꿔가며 자기들의 품위를 유지한다. 황석영은 이 지점을 통찰하며 노동자 투쟁의 무기력함을 감추지 않는다. “해고자들은 무기력하게 흩어졌고”라는 표현에서, 투쟁의 여정이 얼마나 쉽게 지쳐가는지를 드러낸다.
농성은 계속되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은 구조적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한다. 여기서 황석영의 리얼리즘은 단순한 고발을 넘어, 사회적 무관심과 자본의 냉혹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진기가 죽은 뒤에도 농성이 이어지는 모습은, 죽음조차도 이 싸움의 끝이 될 수 없다는 걸 암시한다.
진오의 “살았으니까 꿈틀거려보는 거지”라는 중얼거림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생존의 본능에 가깝다. 작가는 이 절망의 순간에서도, 작은 저항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음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 숨은 연약한 희망의 흔적을 포착하는 점이 황석영의 이번 소설에서 차용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힘이다.
“그때에 신금이가 함께 있었더라면 아마도 주안댁을 알아보고 고모에게 속삭임으로 알은체를 했을 테지만 두 사람의 눈에는 주안댁이 보이질 않았으니 막음이 고모는 시치미를 떼기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 본문 275쪽
여기에서 작가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띠며, 주안댁이라는 유령의 존재를 통해 한국적인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현한다. 신금이와 고모가 주안댁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환각이나 헛것이 아닌, 현실의 고난 속에 뿌리내린 역사적 상처와 그리움의 표출이다.
주안댁은 단순한 유령이 아니라, 가족의 고난과 투쟁의 기억이 형상화된 존재이다. 따라서 이 장면은 역사와 기억, 그리고 고통의 잔상이 어떻게 현재에 드리워져 있는지까지 잇도록 한다. 주안댁이 등장할 때마다, 인물들은 현실 속의 고난과 마주하면서도 이를 초월하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이러한 서술은 작가의 리얼리즘이 단순히 현실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심층을 탐구하고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흔적까지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영등포는 거리와 사람과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꿈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비눗방울 속 같은 반투명의 흐릿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무슨 엷은 막 같고 안개 같은 거대한 덮개가 허공에서부터 영등포 전체를 감쌌다. 서로 피 터지게 싸우다 맞아 죽고 비명에 간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모습이 사라지거나 하지 않고 회색의 헛것이 되어 이 엷은 막 안에서 너울너울 홀러다녔다. 집집마다 주안댁처럼 모습도 보이고 말도 통하는 유령들이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니 영등포는 오랜 잠 속에 빠져 있었거나 아니면 불면증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늘 자면서 몽유를 했든가 아니면 깨어 있는 채로 의식이 흐리멍텅한 나날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본문 537~538쪽
여기에서 영등포라는 장소가 하나의 거대한 꿈처럼 묘사된다. “비눗방울 속 같은 반투명의 흐릿한 세상”이라는 표현은 영등포의 현실이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상태로 전환되었음을 나타낸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억압된 역사가 남긴 트라우마와 집단적 기억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는지를 묘사한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회색의 헛것’으로 ‘너울너울’ 떠도는 건 일단의 환영이 아니다. 과거의 상처와 억압된 기억들이 현재의 영등포를 덮고 있으며, 늘 깨어 있는 불면의 상태로 존재하리라는 소설적 상상을 새겨준다.
황석영 작가의 리얼리즘은 사회적 리얼리티를 넘어, 억압된 무의식과 역사적 기억의 층위를 보듬어서 소설의 미학적 깊이를 더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