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서 드러나는 마술적 리얼리즘과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서 구현된 리얼리즘은 각각 남미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며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품어낸다. 두 작품은 역사적 고난을 겪어온 민중의 삶을 중심으로, 현실의 비극에 환상을 결합하여 독자에게 독특한 서사를 제공한다.
<백년의 고독>에서 마르케스는 마콘도라는 허구의 마을을 배경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미의 식민 역사와 정치적 혼란을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낸다. 작품에서는 현실의 고통과 신화적 환상이 자연스럽게 얽힌다. 마콘도의 사람들은 기이한 현상들을 일상처럼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레메디오스는 천사의 모습으로 하늘로 올라가고 우르술라는 수백 년을 살며 가족의 몰락을 목격한다. 이러한 환상적 요소는 마르케스가 남미의 역사와 전통, 억압된 기억을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다.
<철도원 삼대>에서도 마술적 리얼리즘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영등포의 묘사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흐려진다. 주안댁이라는 유령의 존재는 단순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역사적 기억이 현재의 공간을 떠도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현실의 비극과 함께, 환상적 요소를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와 억압된 무의식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두 작품은 모두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초월하는 서사를 형성한다.
두 작품 모두 억압된 역사와 공동체의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부엔디아 가문이 반복적으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이는 남미의 정치적 혼란과 외세의 간섭, 내부의 부패가 빚어낸 역사적 비극을 함축한다.
마르케스는 가족의 몰락에서 남미 전체의 운명을 암시하며, 개인의 삶이 곧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특히 작품의 마지막, 마콘도가 소멸하는 순간은 남미의 식민 지배와 정치적 폭력의 종언을 암시하며, 이 세계가 ‘백년의 시간’ 속에서 완전히 갇혀 있다는 걸 드러낸다.
<철도원 삼대>에서 황석영은 삼대에 걸친 노동자 가문의 이야기로 한국 근현대사의 억압과 고통을 전개한다. 할아버지의 일제 강점기, 아버지의 해방과 분단, 진오의 현재까지. 억압과 저항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영등포의 몽환적인 묘사와 주안댁의 환영은 과거의 역사와 그 상처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주안댁이라는 유령의 존재는 한 가족의 기억을 넘어, 한국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이로써 황석영은 한국 근현대사의 깊은 상흔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백년의 고독>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은 남미의 신화와 토착 문화에서 뿌리를 찾는다. 마르케스는 남미 원주민들의 신화적 세계관과 역사적 폭력, 식민 지배의 상처를 신화적 요소와 결합하여 현실을 환상적으로 변형한다. 남미의 풍부한 신화와 전통은 작품의 마술적 요소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마르케스는 현실과 신화를 섞어, 역사적 상흔이 일상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철도원 삼대>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은 한국의 역사적 맥락,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산업화 속 노동자 투쟁을 아우른다. 역사적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환상적 요소를 사용하여 억압된 기억과 트라우마가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지배하는지를 드러낸다.
주안댁의 존재는 신화적 상상보다는 역사적 상흔, 특히 노동자와 서민들이 겪어온 억압의 흔적을 더 가깝게 반영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리얼리즘은 신화적인 상상보다는, 현실에 밀착한 초현실적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백년의 고독>과 <철도원 삼대>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장르를 활용해 역사와 환상을 교차시키며, 잊히거나 왜곡된 기억과 억압된 현실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마르케스는 남미의 고통과 혼란을 신화의 언어로, 황석영은 한국의 역사적 억압을 노동자의 고통과 연대로 그려낸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현실을 초월하는 듯 보이는 환상적 요소가 오히려 현실을 더욱 날카롭게 비추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셈이다. 역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보이지 않는 고통과 기억을 형상화하는 문학적 도구이다.
그러나 차이점도 뚜렷하다. 마르케스의 작품은 남미의 신화적 세계관과 원초적 신비로움을 강조하며, 시간의 순환과 몰락의 서사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를 탐구한다. 반면, 황석영의 작품은 한국의 구체적 역사와 사회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철도원 삼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억압된 목소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지금의 현실을 재조명하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처럼, 한 가문의 이야기를 엮으며 역사와 현실을 초현실적으로 연결 짓는다. 그러나 황석영의 리얼리즘은 한층 역사적이고 한국적이다. 그는 노동자의 투쟁과 연대, 그리고 억압된 기억을 파헤치며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침잠된 목소리들을 문학으로 되살리려는 그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만의 독특한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구현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