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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21. 2024

[작가 리뷰] 김보영의 SF 소설

삶과 죽음,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횡단하는 상상력


김보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경험과 같다. 그녀의 작품은 SF라는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삶과 죽음,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7인의 집행관>, <진화 신화>, <종의 기원담>은 각각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공통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기억과 자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7인의 집행관>은 다중 세계와 반복되는 사형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이야기를 펼친다. 주인공 '나'는 기억조차 없는 죄로 여섯 번 처형당한다. 각기 다른 차원에서 여섯 명의 집행관에게 사형당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죄와 처벌, 기억의 왜곡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소설에서 기억은 불완전하며, 죄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억압당한다. "기억이 없는 죄는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서사를 관통하며, 실존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지옥이다"라는 통찰을 떠오르게 한다.

<진화 신화>는 인류의 진화와 멸종을 동시에 그려낸다. 김보영은 진화라는 과정을 발전의 서사로 그리지 않는다. 변종과 퇴화, 그리고 역설적인 퇴보를 통해 인류는 새로운 종족과 만나면서 자신이 진화의 최종 단계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명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생명의 의미를 묻기 시작한다.

                                    

▲ 김보영 작가의 작품들 <7인의 집행관> <종의 기원담> <진화 신화> 책표지 레이아웃


김보영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경계'다. 그녀는 인류와 비인류, 진화와 퇴보,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종횡한다. <종의 기원담>에서는 탐사대가 미지의 존재와 소통하며, 인류의 고정된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들은 로봇과 인간, 자연과 기계의 융합체로,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 독자는 테일러의 말처럼 "생명은 물질의 춤이다"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김보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종종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간다. <7인의 집행관>의 주인공은 여섯 번의 처형을 겪으며 과거의 자아와 단절된다.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그는 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죽음이란 진정한 끝인가?"


김보영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보도록 여지를 남긴다. 이는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처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만든다.


<진화 신화>에서 왕위를 빼앗긴 왕자가 등장한다. 그는 폭정에 맞서 싸우지만, 결국 새로운 종족과의 만남 속에서 진정한 구원을 찾는다. 이 소설은 SF의 틀을 넘어 인간의 탐욕과 자만을 비판하며, 동시에 생명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김보영은 여기서 생명의 진화가 단순한 발전의 과정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조화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는 "모든 생명은 서로의 거울이다"라는 티치 나타한의 말처럼, 우리가 서로를 비추는 존재임을 상기 시킨다.


<종의 기원담>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허문다. 김보영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성을 어떻게 확장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로봇이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 독자는 "기계에도 영혼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대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어디까지 허물어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게 만든다.


기억을 읽고도 지식과 지력을 잃고도, 사고력과 판단력과 신체능력과 경험을 포함해서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을 잃고도, 누구의 기억으로 어떤 인격들 갖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인생을 살든 내가 내 근원에서 나온 나 자신이라면.
- <7인의 집행관> 중에서 501쪽


김보영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이다. 복잡한 과학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그녀의 서사를 쉽게 따라갈 수 있다. <7인의 집행관> 개정판에서는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설명하면서 독자들이 혼란을 덜 느끼도록 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남는 여운은 더 깊어졌다. 김보영은 독자가 사유의 여정을 계속 이어가도록 의도적으로 결말을 열어둔다.


현대 사회에서 김보영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무얼까. 우리는 기술의 발전, 환경의 파괴, 자아의 상실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진화 신화>에서 보여주는 진화와 퇴화의 역설은, 우리가 발전할수록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반추하게 한다.


김보영의 작품은 SF 팬뿐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7인의 집행관>의 미스터리, <진화 신화>의 서사적 깊이, <종의 기원담>의 우주적 관점은 각각 독자들에게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녀는 독자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왔던 모든 경계를 허문다.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더 큰 질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제 당신도 김보영의 세계에 발을 내디뎌 보길 권한다. 삶과 죽음, 기억과 자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당신의 마음속에 남는다. 그리하여 사유의 씨앗을 틔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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