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2월12일 담화에 관한 단상
윤석열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은 한 편의 기이한 서사였다. 그는 자신을 구국의 영웅으로 포장하며, 비상계엄령 선포를 헌정 수호의 마지막 수단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균열이 가득한 집을 단단한 성이라 믿는 듯, 현실 감각을 잃은 은유로 가득 차 있었다.
야당을 “광란의 칼춤”을 추는 집단으로 묘사했다. 이 비유는 참으로 역동적이다. 그러나 춤은 누가 시작했는가? 칼춤의 전제는 칼을 든 자의 존재다. 야당의 비판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행위이며, 오히려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은 비상계엄령이라는 이름으로 법과 질서를 뛰어넘은 윤석열 본인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국정 마비와 탄핵 시도를 국가적 위기로 왜곡하며, 책임을 야당과 언론, 심지어 국회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비난의 화살을 쏘아 올릴수록, 그 손끝에 묻은 기름이 더 선명해질 뿐이다. 이번 담화는 책임 회피의 서사로,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비극적 광인의 독백에 불과했다.
윤석열은 국정 마비의 원인으로 “간첩”과 “외세”의 위협을 꼽았다. 그러나 그의 주장 속 간첩은 실체 없는 유령처럼 허공에 떠다닌다. 그는 드론 사건을 들며 국가 안보의 위기를 외쳤다.
그렇지만 법적으로 구체화한 해결책보다는 막연한 공포만을 부추겼다. 이쯤 되면 간첩은 현대판 도깨비라 할 만하다. 존재는 알 수 없으나, 대통령의 연설에서 신기루처럼 반복 등장한다.
이런 방식과 진단은 오래된 정치적 수법이다. 두려움을 조장하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해결사로 철통같은 권력을 내세운다. 그러나 공포의 끝은 언제나 모호하고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 우두머리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질 뿐이다.
“비상계엄은 헌법적 결단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집을 대들보 한 개로 떠받치려는 시도이다. 그는 계엄이 단 몇 시간의 조치였음을 강조하며 이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권력의 무게로 국회를 압박하고 헌정 질서를 위협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연설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포장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윤석열은 헌정 질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헌법을 넘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행동과 기획이나 모의 자체가 헌법의 근간을 흔들었다.
“간첩 천국, 마약 소굴, 조폭 나라.”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현재성을 이처럼 암울한 풍경으로 묘사했다. 이 대목은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의 언어는 공포를 부추기는 과장과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가 자신을 구원자로 칭송하는 순간, 국민은 시민의 자율성과 의무, 권리를 박탈당한다.
그는 자신을 “피와 땀으로 지켜온 대한민국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그러나 그의 연설에서 보이는 것은 한쪽 날개만을 펼치며 균형을 잃은 새의 모습이다. 잿빛 날개는 날아오르기보다는 더 깊은 구렁으로 국민을 밀어 넣으려 한다. 그의 담화는 공감 대신 분노를, 희망 대신 조롱을 남겼다.
윤석열의 연설은 비극과 오만이 뒤섞인 채 현실 너머의 우렁찬 서사시였다. 그의 말은 모순과 과장으로 빚어진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런 순간, 그가 진정으로 지키고자 했던 것이 국민인지, 아니면 자신의 자리인지 묻게 된다.
그는 비상계엄령을 망국적 상황에 대한 경고용이라 했으나, 정작 망국의 칼자루를 쥔 자가 누구인지, 뼈아픈 속죄와 성찰은 가식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번 담화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여정 속에 남겨질, 헛헛하되 커다란 풍자의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