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동행: 함께 나이들어 가기
<남편과의 동행: 함께 나이들어 가기 >
광양에 살림을 그대로 두고 그동안 틈틈히 가꿔 온 시골집에서 퇴직 후 적응생활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봄 여름 가을을 살아 보고 겨울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면 겨울엔 다시 광양살이를 하자고 결정했다.
광양집은 광양제철 주택단지에 있어 광양제철소에서 나오는 철 코일을 만들 때 코일을 식히기 위해 사용한 물을 정수해서 온수로 사용했다. 주택 난방용으로도 공급하여 난방비가 저렴하고 주택 단열이 잘 되어 있어 난방비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지내도 좋았다. 남향집이라 햇빛이 거실 깊숙히 들어와 추위를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
그랬던 환경에서 갑자기 주거지를 강진 시골집으로 옮겨 살게 되었으니 몸 고생 마음 고생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래도 참을 만했다. 언제든 광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해 봄 집을 다시 리모델링했다.
이사 오기전 집을 여러차례 손봤지만 막상 살아보니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코감기도 달고 살았다. 봄인데도 패딩을 입고 살아야 했다.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아 광양으로 돌아가자고 남편에게 사정했다.
"더는 못살겠어요. 여긴 너무 추워요~!"
남도는 따뜻하다는데, 강진이면 남도 중의 남도인데 겨울이 이렇게 혹독할지 어찌 알았을까.
남편은 맥가이버다. 무엇이든 곧잘 고쳤다. 하지만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전문가의 손이 필요했다. 근검전략가로 엄지를 들어줘야 하는 남편은 자신이 전문가임을 자처했다. 형님이 인테리어 기술이 있으니 형님 도움을 얻겠다며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일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더 안락하고 편한 실내 분위기로 예산을 좀더 들여서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지난 일들은 곧잘 후회의 여지를 남기곤 한다.
"거실이 좁아요."
"씽크대 위치가 잘못 되었어요."
"거실 천장의 석가래를 노출해서 좀 높힐 걸." 이렇게 내가 푸념을 하면 남편이 내 말을 받는다.
"이제 다 끝난 일 가지고 말하면 뭘해요. 그려려니 하고 살아야지요." 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아 지금도 입방아를 이따금씩 찧게 된다.
귀향하던 첫해 1년은 너무 힘들었다.
아는 사람이 없어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기도했다.
남편이 정년 퇴직 3년차까지는 기간제로 근무할 수 있게 되어 다시 교사가 되는기분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출근하고 나면 나만 뎅그라니 빈 집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시골이어서 당연한데도 벌레, 곤충 들이 집안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싫었다.
꽃을 너무 좋아해 꽃밭 만들기를 하다가 허리, 골반, 신경 근육이 눌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고생도 했다.
"에구구, 할 줄도 모르고 익숙치 않는 삽질을 끈질기게 하더니만, 그렇니까 조심조심 조금씩만 해야지." 걷지도 앉지도 못해 남편 발등에 나의 발을 포갠 채로 스텝 밟듯 걸어서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시골살이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삽질에 호미질을 하다가 된통 혼나기도 했다.
시골 전원 생활도 훈련이 필요하다.
"아휴~! 이렇게 무모한 짓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미련이 왕노릇 하면 이렇게 되지."
그렇게 고통스럽던 1년이 지나가고 강진 마당에 다시 봄날이 찾아 왔다.
내 노년의 행진은 꽃들과 함께 날마다 시작이다.
마당 한켠에 수선화가 피어 오르고 할미꽃과 매화꽃 자목련이 피어 오르고 철쭉이 피어 오르는 봄 마당엔 꽃 천국, 꽃들의 행진이 시작된다. 꽃을 좋아하니 들풀도 꽃이요, 화단에 있는 꽃도 꽃이요, 잡초도 꽃이었다.
"아휴, 그게 잡초지, 꽃인가?"
화단에 나란히 앉아 풀뽑기 하면 풀과 함께 꽃을 뽑아 버리는 그를 원망하게 되고 눈총을 쏘아 붙혔다.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화단의 잡초 제거를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
서서히 영역이 나뉘어졌다.
"텃밭은 당신, 꽃밭은 나의 영역이오"
이후 절대로 꽃밭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남편은 마당 잔디만 열심히 깎고 있다.
잔디 깎는 기계는 '수제품'으로, 우리집에만 있는 세계 유일의 제품이다. 맥가이버님 솜씨다.
프레임은 유모차 재활용, 모터는고장난 자동펌프에서 떼어내고, 칼날은 예초기 칼날을 갈고 닦아 모터에 장착해서 쓸 만한 잔디깎기 기계를 제작해 냈다.
남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즐겁게 한다. 항상 신이 나서 한다. 집중해서 무언가에 몰입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어린 소년이다.
남편은 '안경 잃어 먹기 일등선수'다.
예초기로 부모님 산소 벌초하다가 잃어 먹고 나뭇가지 전지하다 잃어버린다. 잃어버린 안경을 찾으면 안경점을 차리겠다 싶을 정도로 자주 잃어버린다.
"여보, 나 안경 또 잃어 버렸네~!"
"어쩔리요, 안경에 발이 달렸나 봐요~! 3일전에 안경점에서 찾아온 새 안경, 사랑땜도 하기전에 잃어 버리다니요!"
쓰던 물건도 자주 잊고 자주 찾아 헤멘다. 특히 지갑을 생각없이 내려 놓고 필요할 때 찾아 헤매는 나의 옆지기님, 못말리는 깜빡정신, 어쩌면 좋을까.
"여보~! 제발 있어야 할 장소에 보관해요. 찾아 헤매기 없이 합시다."
"혹시, 치매~?"
"아니여~. 치매 테스트 해봤는데 아니여~!"
나의 전원 생활은 이렇게 꽃 피는 봄날, 꽃들과 함께 행복 행진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