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의 천을 표지로 하고 있는 <흰>은 '흰'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표지를 넘겨 차례에는 '흰'것들에 대한 목록이 시의 제목처럼 나열되어 있다. 책장을 넘기니 짧은 산문형식이다. 이따금씩 사진도 실려 있다. 사진 에세이인가? 읽다보니 시점은 '나'에서 '그녀'로 바뀌면서 허구가 보태어진 것도 같다, 그럼 소설인가?(분류는 소설이다)
이처럼 이책은 시, 산문, 소설로 뚜렷하게 구분할 수없는 모호한 형식을 취한다. 장르의 경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흰>의 사진을 담당한 작가는 차미혜이다. 그녀의 작품 역시 영상을 기반으로 글과 연극, 퍼포먼스, 설치등 다양한 장르나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에서 보여주고자한 것 또한 틈, 경계에 대한 사유이다. 어느 영역에도 속할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들과 존재했다가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한 애도가 차미혜 예술의 주제이다.
The elegy of whiteness
엘레지ㅡ 영문의 번역이 책의 내용을 선명하게 한다. 문학 용어로 '애가', '비가' 로 번역되는 것처럼 이 책은 태어난지 두시간 만에 죽은 언니를 애도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녀'가 주인공이 된 두번째 장은 죽은 언니에게 삶을 부여하고 있다. 한강의 소설에 등장하는 언니는 언제나 동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어둠과 빛 사이의 '틈'에서 만난다.
이처럼 작가가 말하는 '흰'은 죽음을 의미하는 색인 동시에 삶, 생명을 의미하는 색이기도 한다. 그래서결국은 밝고, 눈부신, 투명한 세계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흰>에 함께 담겨있다.
<흰>의 마지막 사진처럼 한강작품의 마지막은 항상 빛을 향해있다.
2016년 <소실.점>전시에서 차미혜 작가는 한강소설가와 함께 '흰'을 주제로 4개의 퍼포먼스 영상을 기획했다. <흰>책을 바탕으로 한강작가는 그동안 '글'로써 표현한 언어를 지우고 '몸'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시도한다.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옷을 만들고, 씻고, 다하지 못한 말을 가두고 시간을 견디고 걷는 등의 행위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