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뉴멕시코
지난 여행 중에 Four Corners Monument를 찍으면서 뉴멕시코 주를 다녀왔어요. 뿐만 아니라 차를 타고 주의 경계에 내려서 도보로 뉴멕시코와 콜로라도주를 뛰어서 넘나들기도 했지요. 한국은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차를 세우고 내린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할 때가 있어요. 내 발로 걸어서 뉴멕시코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재밌기도 했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가 떠 올라 발도장을 더욱 세게 찍었어요.
4학년 때 사귄 친구는 멕시코인이에요. 우리는 금세 가까운 친구가 됐어요. 친구는 5형제 중 가운데, 셋째에요 멕시코사람들은 친구가 되면 가족 모두 친구가 된다고 해요. 그래서 친구와 함께 할 때면 저까지 6형제가 되기도 해요. 우리는 다른 점도 많았지만 잘 통했어요. 그런 친구가 나의 여행이야기를 듣고 부모의 나라이름이 들어간 “뉴멕시코”를 궁금해하는 눈치였어요. 친구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곳을 내가 먼저 다녀오게 되는 상황이 낯설기는 했지만 내가 한국을 그리워할 때와 비슷한 마음이겠지요?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인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방문센터에 들렀어요. 썰매를 빌리기 위해서 에요. 사촌동생의 추천대로 썰매를 빌려 국립공원을 투어 하기로 했거든요. 듣던 대로 적당한 언덕을 찾아 썰매를 타고 내려오면 눈 없이 눈썰매를 타는 것과 똑같이 됐어요. 하지만 동생의 추천보다 저를 더욱 사로잡은 것은 새하얀 모래였어요. 모래놀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모래를 좋아하는 나! 생수병을 들고 모래조각을 만드는 동영상을 찍어 동생에게 보내줬어요. 해도 해도 재미있는 모래놀이. 어릴 적에 엄마가 사주셨던 촉촉이 모래 같았어요. 앉아서 하염없이 모래를 파는 것이 제일 좋아하는 작업인데 이곳의 모래는 팔 수록 시원해지는 느낌이 정말 기분 좋게 만들었어요. 모래가 공원의 이름처럼 하얀색이라 빛을 흡수하지 않아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엄마는 옆에서 계속 썰매를 즐겼고, 언덕을 오르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아빠는 썰매 대신 지난번 소금사막에서의 소심한 드리프트 운전을 만회하는 방법으로 지프차를 분해하기 시작했어요. 영화에서처럼 천장과 문이 없는 차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는 모습이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했어요. 한참을 셋이서 각자의 방법으로 열심히 즐기고 있는 우리 앞에 국립공원 순찰차가 멈춰 섰어요. 그리고 물을 충분히 마시라는 주의를 주고 갔어요. 사막에서 신나게 놀고 싶다면 역시 수분보충이 중요한가 봐요.
아빠가 마침내 지프차의 문과 천장분리에 성공을 해서 사막을 달려 보자고 제안했어요. 모래놀이를 멈춰야 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우리는 지프차의 매력을 한껏 즐기면서 국립공원을 빠져나가기로 했지요. 하지만 하얀 모래가 너무 들이치는 바람에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문과 천장을 달아야 했어요. 역시 더운 곳에서 차를 탈 때는 에어컨 틀고 달리는 게 제일 좋아요. 다시 원상복구를 한 후, 한참을 달렸는데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낯익은 여행 가방이 길바닥 위에 놓여있었어요. 문 한 짝을 제대로 닫지 않고 달려서 우리 짐이 떨어진 것이에요. 하얀 모래가 범벅이 된 캐리어를 다시 차에 싣고 달리면서 생각했어요. 추천을 받아 여행하기 시작하면 기대했던 재미있는 일을 다 한 후, 예상하지 못한 재미가 추가되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저녁으로 아빠 회사아저씨의 고교시절 단골 식당을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어쩐지 아빠가 그냥 지나쳤어요. 아빠는 가끔 그래요. 무조건 직진이 하고 싶을 때 가 있는 것 같아요. 어느덧 텍사스의 엘패소까지 한 번에 달린 아빠는 다행히 두 번째로 추천받은 식당? “Whattabuger”가 나와서 우리는 그곳에서 햄버거를 먹었어요. 동부에는 SHAKE SHACK, 서부에는 In N Out, 그리고 남부에는 WAHTABUGER라고 해요. 이 버거가게의 특징은 매운 케첩이 있다는 것이에요. 이 근처가 고향인 아저씨는 아직도 아마존에서 매운 케첩을 주문해서 드신다고 꼭 맛보라는 추천을 받은 곳이에요. 감자튀김도 맛있고 두툼한 고기의 햄버거 맛도 좋았어요. 하지만 역시 최고는 추천대로 케첩이었어요!
33) 텍사스
텍사스 하면 바비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영 쉘던의 고향입니다! 공항에 내려서부터 주변의 사람을 살펴보니 쉘던의 가족들과 비슷한 느낌의 사람들이 많았어요. 쉘던의 형 같다고 깔깔 웃고, 쉘던의 할머니 같다고 웃고, 쉘던 할머니의 남자친구가 있다고 신기해하고……. 엄마와 저는 사람들을 드라마 속의 인물들과 매칭하느라 바빴어요.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사진 속의 한국친구들을 보면 현재 미국학교에 같이 다니고 있는 한국인들로 착각하는 것처럼, 같은 인종과 같은 지역 출신이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텍사스 여행은 샌안토니오가 큰 목표였지만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머문 곳 엘패소도 텍사스주에 있는 도시였어요. 그곳은 아빠가 출장을 다닌 곳이기도 하대요. 멕시코에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 머물렀던 곳이라고 해요. 그래서 우리는 국경너머 멕시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어요. 해 질 녘 시간을 보내면서 미국과 멕시코의 사람들이 오가며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어 사진도 여러 장 찍었어요. 그리고 친구의 형제들과 닮은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며 또 재밌기도 했어요.
이곳에서 길을 따라 여행할 수 있는 우리 가족은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됐어요. 국경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여행을 앞두고 ‘스몰토크’를 할 때면 텍사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이기 때문에 텍사스주의 어느 곳을 가는지 한번 더 질문을 받았어요. 엘페소와 샌 안토니오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면 여기저기서 맛있는 멕시칸 식당을 알려줘서 음식으로도 기대가 되는 곳이었어요.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멕시칸 식당으로 향했고 저는 개인적으로 께소 맛을 볼 생각에 기대가 됐어요. 모든 음식이 예상했던 대로 맛있었고 판초를 입고 연주해 주는 악단의 공연도 볼 수 있어서 마치 멕시코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텍사스주는 멕시코와 친한 것 같아요. 멕시코가 미국에 빼앗긴 땅이긴 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를 사이좋게 표현하고 있는 상징물들이 많아서 신기했어요. 아마 내 친구처럼 멕시코 사람들은 정이 많고 친구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서 4학년 만들기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샌 안토니오 드 파두아‘와 비슷한 곳을 방문해서 미국의 역사를 볼 수 있었어요. 현재 ‘알라모’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미국이 스페인과 치렀던 전쟁을 보게 됐는데 미국은 늘 다른 나라를 도와주기만 하고, 침략을 받는 입장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미국도 치열하게 나라를 만들고 지켰다는 것이 새로웠어요.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은 필요한가 봐요.
샌안토니오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TV에서 봤던 리버워크에 있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어요. 우리 방이 ‘게임룸’이라는 테마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플레이스테이션이 있고, 팩맨, 겔러그 등을 할 수 있는 오락기계도 있었어요. 고리 던지기, 테이블 축구를 비롯해서 보드게임도 많이 있었지요. 호텔방 안에서만 있으라고 해도 일주일은 신나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어요. 1층 로비에는 스크린 축구도 할 수 있어서 매일 축구훈련까지 했어요. 그리고 리버워크를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산책했어요. 엄마가 정말 그 길을 좋아했거든요.
리버워크는 서울에 있는 청계천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에서 친구와 함께 마지막 가을볕을 즐겼던 청계천이 생생하게 기억났어요. 어느덧 저는 4학년이 됐고, 친구는 5학년이 됐어요. 엄마는 지금의 청계천이 생기기 전부터 그 길을 좋아했었대요. 그래서 많은 추억이 있지만 지금 모습의 청계천이 생긴 후 외할아버지와 함께 딱 한번 가보셨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던 모습이 청계천 하면 늘 떠오른대요. 그리고 아빠는 청계천 하면 엄마와 함께 첫 데이트를 하다가 주차비 폭탄을 맞은 추억이 있는 곳이래요. 이렇게 청계천에 담긴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리버워크를 걷다 보면 게임을 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시간이 잘 갔어요.
그리고 밤이 돼서는 배를 타고 리버워크를 투어 했어요. 배를 타면서 듣는 설명은 재미있었어요. 홍수를 대비해 설계된 것과 건물마다 갖고 있는 이야기, 무엇보다 여름 날씨에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배 투어를 하면서 청소를 하기 위해 이곳의 물을 뺐을 때 무려 1만 대가 넘는 휴대폰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뒤로 물속에 휴대폰이 보이나 계속 살피며 걷게 되었지요.
리버워크의 상점과 식당들도 훌륭하긴 했지만 텍사스 바베큐집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했어요. 맛집을 찾아가 보려고 다 함께 오랫동안 검색을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결정한 곳으로 가기 위해 우버를 탔는데 우버 운전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쉑쉑버거가 꽤 맛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의 목적지를 보고 이곳의 바비큐는 다 그럭저럭 괜찮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하지만 최고가 아니라는 뉘앙스에 엄마가 아저씨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바비큐집을 알려달라고 여쭤봤는데 아저씨의 대답은……
“오스틴에 가야 해요”
그래도 우리는 ChatGPT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고기를 푸짐하게 먹었어요. 특별히 주문하지 않는 이상, 채소없는 메뉴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어요. 드라마 속에서 쉘던 할머니가 브리스켓 레시피를 공유하지 않으려고 한 장면이 생각나면서 알 길 없는 식당의 레시피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며 맛을 음미했어요. 배를 채우고 난 후에야, 식당에 군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 뒤로도 길에서 많은 군인들을 볼 수 있었어요. 군 기지가 많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러면 텍사스는 다른 주 보다 안전할까요? 텍사스는 전쟁, 군인, 총, 고기 같은 것들이 유명해서 다른 어떤 미국의 주보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곳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