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지 Jul 04. 2024

내 말을 믿지 마세요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글 1

이야기를 쓰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갖다 버렸습니다. 애쓰면 안 되는데 애를 써서 4만 자가량을 썼는데, 애쓴 게 너무 티가 나더라고요. 아쉽지만 그 글은 더 이상 이어나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자면 엉망이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좋은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통에서 뒤적뒤적 주어와 일부를 여기에 싣습니다.

 

화자는 ‘구원의 천재’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이 구원의 천재는 2차원을 여행하며 3차원의 인간들을 구원합니다. 자기는 사기꾼도 사이비 광신도도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더 의심스럽죠. 자기 말을 믿으라는 사람은 일단 걸러야 합니다. 그래도 일단 그가 주장하는 바를 읽어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나아가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전 지식 하나. 그대는 이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인간의 문제는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데서 기인하는데, 이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만이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거짓말로 뭔가를 얻어내려는 사기꾼도 아니고 사이비 사상을 전파하려는 광신도도 아니다. 물론 망상에 빠진 정신질환자도 아니다. 부디 이 점만은 알아주시길.

그러니까 세상엔 일어났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일단 증명할 수 없는 일이 과연 진짜 일어난 일인가에 대한 판단은 미뤄두도록 하자. 그건 단단한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우리가 이해하기에 너무 깊고 난해한 문제다. 그런 일에 대해선 언어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타당한 근거를 댈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세계를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면, 분명하고 견고한 세계 너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면 이렇다. 인간은 완벽한 적막 속에서 소리를 듣기도 한다. 정신적 착란이 아니라 실제로 귓속 고막이 떨림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 실체 없는 소리는 듣는 사람의 내면에 변화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허나 들은 이는 어떤 메시지를 들었고 자기 안에서 무엇이 변화했는지 인지하지는 못할 수 있다. 게다가 현실에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우리가 꿈에서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면서도 잠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일은 일어난 것일까, 아닐까?

이게 다 무슨 말인지 갸웃거리는 그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3차원의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는 무수한 2차원의 느낌 장(場)들로 이루어져 있다. 느낌의 장은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종이처럼 물질적 형태 위의 2차원이 아니라, 두께도 면적도 길이도 없는 평면 그 자체다.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은 흑연 알갱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저 이미지, 영상, 형상 그 자체인 것인데, 즉 높이가 없는 평면에 입자 없는 그림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말하는 무수함이란 정말로 끝없는 무한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 실재하지 않는 평면들이 진정으로 무한하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3차원 현실 세계에 종횡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거다. 2차원 느낌의 장은 인간들이 굳게 실재한다고 믿는 물질 기반의 3차원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느낌의 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대부분의 3차원 세계만을 믿는 사람들은 감각하지 못한다. 몇몇만이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어렴풋하게 느끼거나 좀 더 명확하게 감지하거나,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른데, 이런 걸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무방하다.



대학 때 친구들은 종종 제게 ”아, 역시‘또라이현지’야“ 그러는데요.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씩 내가 정신이 좀 이상한가, 내가 어떤 정신질환과 정상의 경계에 있는 걸까,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이 세계 너머를 알고 있다는 느낌, 아니 그전에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세계 너머에 뭔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저는 종교도 없고, 타로나 사주, 별자리 같은 걸 믿지도 않습니다. 보이지 않고 확인할 수 없는 걸 어떠하다고 주장하는 모든 걸 믿지 않지만, 그런데 뭔가 이 단단하고 분명한 현실 너머에 뭔가 있고 나는 그걸 다 알고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현실 너머에 눈귀코촉각으로 감각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데, 그걸 앎으로 느끼고 느낌으로 알고, 그런 겁니다. 이 ‘앎 느낌‘은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영혼의 살결에 느껴지는 감각  같은 건데요. 말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정말 또라이현지가 될 거 같아서요.


질량은 중력이고 이 중력으로 만물이 생겨나는데, 중력은 감지할 수 없지만 분명히 있고 이 현실에 가득 차있죠. 이 중력이 이 세계 실체의 실체라면, 이 느낌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걸까요. 위의 원고를 뒤엎고 새로 쓰는 이야기도 영혼의 중력과 연관이 있습니다.


저에게 작업을 한다는 건, 현실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현지가 아닌,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생각하는 ‘또라이현지’를 탐구하는 과정인 거 같습니다.


어쨌든 제가 하는 이야기는 확인할 길 없으니, 믿지 마세요. 그냥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알게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