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브랜드 쿠오뜨
동네에 서점 하나 없던, 작은 문방구에서 겨우 문제집만 파는 시골에서 자랐다. 용돈을 받으면 시내에 있는 큰 서점에 갔다. 만화잡지를 사면 가장 마지막 장부터 펼쳤다. 만화가와 편집자가 일상을 적은 짧은 글을 모아놨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순식간에 읽히는 짧은 글이 아쉬워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보며 글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살던 나의 몇 없는 즐거움이었다. 더 많은 타인의 삶이 궁금해졌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을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삶이 점점 좁아진다. 사회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삶 외에 다른 삶이 진열될 자리가 없어져 간다. 우리는 상상력 없이 비슷한 일을 선택하고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월요일이 끔찍하게 싫어하게 됐다. 지금과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삶의 조각을 모아보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흔쾌히 자신들의 삶 조각을 나눠주기로 한 디자인브랜드 쿠오뜨의 유진디렉터, 기범디렉터를 만나러 망원동에 갔다.
쿠오뜨는 작년까지 인테리어 소가구라는 시장에만 속해있던 영역을 넘어서 쇼룸 겸 다목적 문화공간 「QnA room」을 오픈했다. 단순히 쿠오뜨의 상품만 구경하고 구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방문자들이 시기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시, 공연, 소모임, 팝업 이벤트 등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공유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의도를 담았다. 창작자가 또 다른 창작자들을 만나며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며 창작에너지를 수혈받고, 현재 문화 씬에서 지속가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_quott
쿠오뜨는 크리에이터 디렉터 김기범, 브랜드 디렉터 김유진. 2인이 운영하는 브랜드이다. 기범과 유진은 같은 회사를 다녔었다. 둘은 쉬는 날에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회화작품에 비해 오브제 작품은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오브제를 집에 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작은 질문을 시작으로 일상적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예술적 가치가 공존하는 오브제를 만드는 디자인브랜드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2020년 가을 즈음이었다. 2021년 기범과 유진은 회사를 관두고 ‘쿠오뜨’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냈다. 모두 가슴속에 사직서 한 장은 품고 있다지만, 실제로 꺼내는 건 쉽지 않다. 이 악물고 회사에 취직하고 출근을 버텨냈던 건 내 이름 세 글자로 나를 설명할 수 없을 때의 초라함 때문이었다. 갈수록 내 이름 보다 회사의 이름이 나를 설명해 주는 일이 많아졌다. 보통의 마음으로는 회사를 관둘 수 없었다. 기범과 유진에게 회사를 관둘 때의 마음을 물었다.
“ (기범)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하는 것에 만족감이 없다는 것이 회사를 다니며 가졌던 고민의 중심이었어요.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이 받고 있는 월급에 비해 항상 과했어요. 그렇다고 액수만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나의 기준에 최대한 근접한 상태로 일을 해내고 싶은 욕망이 더 크고 중요했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일을 끝내고 난 뒤 오는 허탈함이 너무 컸어요. 허탈함의 이유는 일이 시작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운 채, 참여해야만 하는 것에서 왔죠. 일을 하면서 이 제품이 세상에 나올 필요가 있는가? 어떠한 가치가 있는 가? 나의 기준에서 동의되지 않더라도 회사 입장에서 돈이 된다면 바로 진행해야 하죠. 그래서 태생부터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해 보자라는 의견에 서로 공감하며 퇴사를 결심했어요. ”
회사에서 기범은 기획자로, 유진은 마케터로 일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범과 유진은 제품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예술적인 오브제를 일상으로 가져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실행력은 어디서 왔을까. 회사생활을 하기 이전의 기범과 유진이 궁금해졌다. 성인이 되기 전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진로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기범은 동시대미술을, 유진은 건축디자인을 선택했었다.
“ (기범) 어린 시절에 막내삼촌과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삼촌은 당시 광고 회사를 다니셨는데 그림을 정말 잘 그리던 분이었어요. ‘이거 그려줘요’ 하면 슥슥하시더니 뭐가 뿅뿅 나오는 데, 환상적이었죠. 삼촌을 동경했고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렸어요. 학교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친구들이 저라고 대답했죠. ”
기범의 경쟁상대는 또래친구가 아니라 삼촌이었다. 어린 기범에게 삼촌은 넘을 수 없는 존재였고 그림에 대한 욕심과 함께 열등감도 커져갔다. 진로 때문에 학원에서 그림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았다. 학원을 다닌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스무 살에 그림으로 대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림에 대한 모든 감정들이 뭉치고 얼룩지면서 방황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사회 탓, 가족 탓, 남 탓을 많이 하던 시기를 보냈다.
“ (기범)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넌 그래서 뭘 한 게 있는데?"라고 물었어요. 그 한마디에 나 자신이 작아지고 곪아왔던 열등감이 터졌어요. 예술로 제일 좋은 대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구청에서 근무복으로 초록색 옷을 입고 공익근무를 하고 있었는데요. 하하. 초록색옷을 입고 그제야 내가 왜 이 학교를 가야만 하는지, 제대로 된 고민과 공부를 시작한 거예요. ”
34살까지 딱 10번 만, 예술로 제일 좋은 대학교,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을 가보자고 결심했다. 대신 10번 끝에 불합격해도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 덕분일까. 입시를 준비한 지 1년 만에 합격했다. 그때 기범의 나이는 25살이었다. 설레면서도 늦은 나이에 시작한 건 아닐까 긴장도 되고 무서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면서 방황하면서 겪은 경험들이 작업에 연결되고 내 이야기가 작품으로 꺼내질 때 내 안의 흩어져있던 무언가가 착-! 하고 껴지는 순간을 맛보았다. 기범은 자신이 쌓아온 경험을 사회적인 현상과 맥락화시키고 동시대에 맞는 문법으로 표현해 내는 미술작가가 되었다. 열등감으로 무너졌던 유년기가 보상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스스로 세운 약속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지켜가고 성취한 경험을 한 번 해보니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 부모님에 의해서, 혹은 좋은 직장을 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결정한 선택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브랜드(자신만의 일)를 만드는 프로세스와 크게 다를 것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미술작가에서 기획자, 그리고 브랜드 쿠오뜨의 디렉터까지. 전혀 다른 일 같다고 느껴진 것들이 하나의 실에 단단하게 꿰어져 있음을 느꼈다.
“ (기범)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지금의 일과 관련된 진로를 선택한 것이 맞네요. 진로를 선택했을 당시 ‘브랜드 운영자’라는 일을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지만요. 선택한 진로는 미술작가였지만, 미술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관을 구축하고 작업물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과 브랜드를 운영하는 과정은 결과물의 카테고리만 다를 뿐, 프로세스는 동일합니다. ”
유진은 기범의 이야기를 듣다가 본인은 예술 산업 쪽의 사람들에게 동경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은 원하는 진로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알고 꾸준히 노력하는, 나에게 없는 부분을 가진 기범을 보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고, 그의 첫인상을 말해주었다.
“ (유진) 재능을 가진 사람들한테 자격지심과 존경심이 있었어요.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서 예대를 선택했는 데, 그들의 무리 안에서 제 성향과 하고 싶은 것들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파트너처럼 하고 싶었던 것이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고 좋고 싫음에 대한 의견도 뚜렷했죠. (의견에 대한) 타인의 생각도 궁금해서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제 자신의 취향도 정립해 갔죠. ”
유진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무언가 열심히 함으로써 살아간다는 느낌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았다고 했다. 유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고등학교 때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 하고 싶은 일이 뾰족한 친구들은 반에 한두 명은 꼭 있었다. 미술이나 운동 쪽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그 옆에서 나는 존재의 흐릿함에 불안함을 느끼며 공부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국의 입시환경은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는 것보다, 우선 성적이 좋으면 다 된다는 경향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것도 한 몫했다. 나에 대한 고민 없이 선택한 전공을 배우다가, 어느 시점에 퓨즈가 탁 나가버리면서 삶이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유진 또한 20대 초중반에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 (유진) 장학금도 받고 공모전도 나가고, 할 수 있는 거는 다 하면서 열심히 다니다가 21살에 휴학을 했어요. 장학금, 공모전 같은 단기적인 목표만으로 살다가,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진짜 길을 정해야 할 시기에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건축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건축물의 형태에 관심이 있었어요. 공간 내부에 빛과 벽, 기둥을 이용한 공간 구획, 매스에 다른 디자인 구성은 저를 매료시켰죠. 유럽여행을 떠나서 많은 건축물 사진을 찍고 다녔어요. 화면 프레임에 건물의 레이아웃으로 선을 그리고 그림자로 색상을 분배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
휴학 후 여러 나라로 여행을 하면서 유진은 혼자에 집중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았고, 눕고 싶으면 누웠다. 일본 메이지대학교의 교수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힘》에 ‘흥미롭게도 재능이 많은 사람일수록 혼자일 때 자신이 이루어야 할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는 문장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재능의 증거이기도 하다. 혼자 있음으로 재능이 갑자기 생긴다는 뜻은 아니다. 대신 혼자가 되면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게 된다.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면 어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내가 정말로 욕망하는 것’에 점을 찍고 잇는다. 그 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유연하게 연결시키고 재능을 자유롭게 교환한다.
“ (유진) 만약 (건축디자인이 아닌) 완벽히 다른 진로를 선택했어도 지금하고 있는 일에 필요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어떤 경험이든 지금의 내가 있다면 그때의 선택들은 도움을 줘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꼭 맞는 진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
나만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일’과 지고지순한 관계인줄 알았다. 마치 로맨스소설의 운명의 주인공들처럼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일과 망설임 없는 직선 같은 사랑. 하지만 그들의 삶을 자세히 보면 무수히 많은 점들이 촘촘했기 때문에 직선처럼 보였다. 점을 찍고, 멈추고, 점을 찍고, 다시 멈추고. 기범과 유진에게 ‘나만의 일’을 찾기 위해 수많은 점을 찍고, 멈춰왔다.
“ (기범) 미술작가일을 하면서 미술선생님을 병행했어요.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가 다시 미술을 선택한 20대 초중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되새겼던 포인트가 있어요. 어떤 집단의 생활에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노선을 다르게 타야 될 때 ‘왜’라는 질문에 무게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왜냐고 묻는 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필터링의 과정이거든요. 자기만의 답을 낼 수 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야 해요. ”
‘왜’는 다음 점을 찍기 위한 멈춤이다. 멈추고 자신을 돌아봐야만 중심을 잡고 다음 점을 찍을 수 있다. 자신에게 ‘왜’를 묻지 않으면 선은 계속 이어질지 몰라도 흐릿하거나 선이 떨려서 직선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왜’를 묻기 위해서는 기범은 ‘자립’된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기범) 첫째로 가족과 결별되었을 때, 내가 자본적으로 차단 당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생존할지 직면하게 되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어요. 몇십 년 동안 살았던 부모님 집의 나의 작은 방에서 고민할 게 아니라 독립된 상황에 본인을 던져야 해요.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것을 0에서부터 시작해 보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나만의 일을 선택하는) 용기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
멈춰서 가야 할 방향이 정해졌다면 점을 찍어야 한다. 이쪽으로 찍어야 할지, 저쪽으로 찍어야 할지 정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심을 잡고 점을 찍고 수많은 점을 잇다 보면, 별자리처럼 어떤 형태가 보인다. 유진은 다양한 나라로 떠난 여행을 기점으로 멈췄다. 그리고 무역회사, 주얼리 회사에서 영업, 기획, 마케팅, 브랜딩을 하면서 무수한 점을 찍었다. 그리고 이 점들이 모여 지금의 쿠오뜨라는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 (유진) 보통은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 직업을 선택하라고 하잖아요.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아직 못 찾았다면 정말 다양한 일을 접해보시며 찾아보는 노력을 먼저 해보시기를 권할게요. 어느 하나에만 경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나만의 일을) 못 찾겠다면 이것저것 도전해 보세요. 이러한 경험들이 결국 나중에는 내가 하는 일에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저도 사실 어렸을 때는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란 것도 불분명했거든요. ”
그래도! 도저히 어떤 점을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기범은 개인적으로 아주 간단하고 정확한 방법이 있다고 했다.
“ ‘가장 싫어하는 것’, ‘죽어도 못하겠는 것’을 먼저 찾으세요. 저는 죽어도 ‘회사생활’을 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회사 생활은 못하겠고 죽기도 싫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했죠. 이 경우를 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저는 회사 ‘일’이 싫다기보다, 회사 ‘생활’이 싫었던 것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내가 그동안 해왔거나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생활’ 방식으로 이어나가면 될 일이었죠.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을 피하다 보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입니다. 할 수 있는 것만 해나가다 보면 조금 더 맞는 일을 찾기도 하고, 해보고 싶은 도전을 마주하기도 할 거예요. ”
유진과 기범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서 사무실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싶어졌다. 나만의 점을 찍고 싶어졌다. 나의 수많은 점들은 어떤 형태를 보이게 될지 설레는 불안함을 가지고 지하철을 탔다. 그들의 공간에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일을 하면서 행복한지 물었다.
“ 일을 하는 동안 행복해요. 잡거나 만질 수 없는 추상적인 생각들을 정리하여 물리적인 무언가로 끄집어내는 일은 정말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에요. 다만 이런 일을 해낸 후에 현실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보상과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서운하긴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가진 특수성으로 여깁니다. ”
유진도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부담감보다 훨씬 많은 부담과 책임을 지니며 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 내가 하고 싶은 것, 생각하고 디자인 한 무언가의 형체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지점이 저에게는 행복함으로 다가와요. 앞으로도 이러한 행복감을 더 크게 두고 가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