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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Oct 25. 2024

하늘이 물드는 시간

저녁

 나는 저녁 시간을 좋아한다.

하늘이 붉은빛, 보랏빛 여러 가지 색으로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해서 캄캄해질 때까지의 시간을 좋아한다. 부다페스트에 살 때 나는 해 질 녘이 되면 부지런히 공원으로 나갔다. 벤치에 가만히 해가 지고 캄캄해질 때까지 앉아있고는 했다. 특별한 일을,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덧 어둠이 찾아왔다. 그렇게 캄캄해지고 나면 비로소 내 정신은 눈을 떴다. 나는 아침보다 저녁에 정신이 또렷하게 든다. 아침에는 일을 하면 서도 조금은 멍한 느낌이다. 늘 불면증을 안고 살며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온 이유도 있다. 현재의 나에게 저녁 시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저녁에는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낮 동안의 낙천적인 내 모습을 벗어던지고 조금은 더 우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와 적당한 거 리를 가진 이들은 내가 낙천적인 사람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 가면은 저녁이 되고 나서야 벗겨진다.

나를 내려놓고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에 나는 요즘 글을 쓴다. 저녁에 쓰기 때문에 솔직하게 쓰면서도 종종 너무 우울한 내용만 가득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우울이 글로 새어 나온다. 내 마음을 비집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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