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부적응자는 바로 나
처음 제주로 이사를 오고 잠깐 스치는 인연들에 나는 참 어색하고 불편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곳은 섬이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 또한 한정적이다. 물론 현재는 택배 시스템도 좋고 대부분이 삶에 큰 불편함 없이 흘러가지만, 사실 이곳은 오프라인에 많이 의지하는 곳이다.
우리 아이의 말대로 여긴 어쩌면 한국이 아닌 섬.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과는 다른 섬. 바로 섬. 제주도다.
아침 일찍 장사를 시작한 음식점은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오후면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당연히 많고, 어쩌면 주말에는 불통이 이상하지 않은.
삶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삶에 들어와 보기 전엔 몰랐던 묘한 다름을 제대로 체감했다.
사실 처음 보니 별로 친절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 사실 처음엔 그것이 이유 모를 상처가 되었는데, 이젠 그 삶 속에 들어왔다. 그저 내 삶 속에 자연스레 자리한다. 그들의 불친절한 듯 묘하게 어색한 그 구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사실 그들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고 그저 표현을 살갑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전히 낯섦을 느낄 때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리얼 섬 생활이다. 이것이 이사 오자마자 치른 우리의 혹독한 섬 생활의 시작이었다.
episode 1 당근 마켓
작은 짐들만 택배로 보낸 우리는, 컴퓨터 책상과 의자를 제외한 큰 가구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책꽂이는 당근마켓을 이용해 구매하고 장난감 정리함이나 우리의 짐을 올려놓을 것들은 접었다 펼 수 있는 철제 선반을 구매했다. 이 철제 선반은 한 번에 접히는 접이식 의자처럼 보관이 용이했기 때문에 짐 싸기에 질려버린 우리의 선택이었다.
한 달 동안 짐 정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짐을 풀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냉장고는 당장에 구매하지 못했다. 집을 알아보러 제주도에 왔을 때, 분명 당근마켓에 꽤 많은 종류의 냉장고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하고, 꽤 가벼운 마음으로 냉장고 속 짐까지 모두 자동차에 싸 들고 온 우리였다.
그러나 고르고 골라 연락하는 당근마켓의 채팅은 답장이 오지 않았다. 판매 완료도 아닌데… 왜 연락이 없는 것일까. 오늘이 주말이라서 그런 걸까. 내일도 주말인데 그럼 이 많은 냉장, 냉동 제품들은 어떡하나. 눈을 낮추고 또 낮추어 여기저기 고르고 고른 냉장고에 모든 채팅을 넣어보았지만. 답장을 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띵동. 하나의 답장이 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이 냉장고는 이미 팔렸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왜 팔린 걸 판매 완료로 띄우지 않는 것일까.
주말에는 왜 연락이 안 되는지. 나머지 채팅도 모두 판매가 완료된 냉장고들인지 너무너무 궁금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 한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냉장고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구매했고, 힘들게 자동차에 가득 실어 가지고 온 냉장, 냉동 제품들은 모두 쓰레기가 되었다. 살다 살다 이런 당근 거래는 처음인 나였다.
냉장고를 옮길 용달차를 구하는 일조차도 나를 당황하게 했다. 카페에서 소개받은 분의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가서 문의를 남겼지만, 그분은 나의 글을 읽지도 않았다. 분명 젊은 분이었는데.. 그래서 당근마켓에서 용달 견적을 문의하였고, 후기를 쭉 훑어보며 한 분과 계약을 맺었다. 분명 작은 사이즈의 냉장고이지만.. 이분도 전문가는 아니셨고, 물건을 싣고 옮기는데 오빠가 더 노련함을 보여서 좀 당황스러웠다.
중간에 물건을 싣고, 집으로 오지 않아 냉장고 도둑은 아니겠지, 하며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 전화해 보니 너무 당연하게도 본인 본업의 물건을 실으러 왔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나로선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리 말하면 이해 못 할 우리가 아닌데..
심지어 집으로 냉장고를 옮기는 과정에 냉장고를 들고 있던 손을 놓아버려 냉장고가 그대로 맨땅에 헤딩. 당연히 오빠가 아니라 그 사람이. 냉장고는 보기 좋게 아주 시원하게 넘어갔다. 사람이 다치지 않고 냉장고도 되는 것 같아 별말 없이 그냥 넘어갔지만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약속도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으며, 사과까지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과의 동행이 썩 불편했다. 그저 우리가 운이 없었던 걸까. 우리가 제주로 온다는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드는 사건이었다.
episode 2 정수기
사건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제주도로 오면서 우리는 새롭게 얼음 정수기를 설치했다. 젊은 기사님 두 분이 오셔서 정수기를 설치해 주고 가셨는데, 빨리 해치우고 가자는 식의 눈에 훤히 보이는 불친절함을 탑재하며 여기가 고객의 집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우리보다 큰소리로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었다. 은근히 기분 나쁘던 그 사람들의 태도.
그런데 그분들이 가고 정수기를 보니 시커먼 장갑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작업하던 장갑이 더러울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이런 일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빨리 물티슈로 닦고 치워야지. 하던 나였다. 그런데 물티슈로 아무리 닦아도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고, 주방 세제를 살짝 묻혀 지워보았지만,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이것이 새 제품을 눈앞에서 박스로 꺼낸 이들이 한 행동이라니.. 나는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오빠에게 기사님에게 전화해서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하자고 했다. 오빠는 정중하게 그분들께 다시 전화드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본인들이 더 어이없어하는 그 기사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우리처럼 늘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웬만하면 넘어가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본인이 잘못했음에도 전혀 죄송하지 않고, 본인들은 떳떳한 이 태도를 지닌 서비스업 종사자라니. 그들은 요즘 들어 보기 힘든 인재다. 그런 인재를 상대해야 하는 우리는. 그로 인해 오는 불편함은 그저 우리의 몫이다.
episode 3 자동차
사실 이와 비슷한 흐름의 사소한 이야기들은 훨씬 많았다. 육지에서 이사 오기 전 자동차에 경고 알림이 떠서 점검 예약차 전화를 했다. 그때가 이사 직후인 3월 초였다. 나는 자동차 브랜드 수리점에 전화를 했다. 지금이 3월이고 이런 안내가 떠서 점검을 받고 싶다고 요청을 했지만, 모든 예약이 다 찼기 때문에 당장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점검 예약은 5개월 후인 7월에나 잡아주었다.
‘아 이곳은 제주도에 한 곳밖에 없어서 진짜 예약이 꽉 차서 바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약 날짜가 다가오던 어느 날 사건이 생겼다. 초록불 신호를 받아 출발하려는데 차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갑자기 이유 모를 시동이 꺼진 것이다. 다행히 급히 다시 시동을 켜니 운행이 되었다. 나는 바로 근처에 있던 그 수리점에 우선 방문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알고 보니,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면 이 수리점에서 더 이른 예약이 가능했고, 나는 그런 안내조차 받지 못하고 그저 5개월이라는 허송세월하였다는 사실을. 이거 나만 불편한 사실인 걸까. 내가 예민한 걸까 라는 생각을 자꾸 수도 없이 하게 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아야 할 사실을 이야기조차 해주지 않고 아주 여유롭게 예약을 잡아 준 제주도에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 브랜드 수리점. 심지어 이미 3월에 잡아 둔 예약 날짜가 당장 다음 주인데도 예약을 더 앞으로 당길 수 있다고 했다. 이걸 5개월이 지난 후에나 알게 되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후에 아이의 유치원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제주도에선 화 좀 내줘야 한다며 언니들이 출동 해야겠다고 말하며 나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알았다. 아, 화를 내어야 해결이 되는 곳이 아직도 존재하다니. 나에게 이런 제주도는 정말 너무 어렵다.
episode 4 편의점
아이와 함께 편의점을 가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간 편의점엔 손님이 들어와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참 많다. 물건을 다 고르고 계산대에 가면 늘 내가 먼저 상대에게 인사를 한다. 사실 인사가 몸에 배기도 했지만, 아이를 교육하는 입장에서 늘 본보기가 되고 싶어 더 노력하는 일 중의 하나다. 그런데 늘 나만 인사를 하곤 하는 것 같다.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계산을 하다가 키가 작아 보이지 않았던 우리 아이를 보고는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예쁜 덕담을 보내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 번이 아니고 정말 여러 번 있는 일이었다. 오빠와 나는 이런 일들이 뭔가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사람들이 표현을 잘못해 그렇지 나쁜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제주도에 이사를 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라다이스 같은 나날들만 펼쳐질 것 같다고 부러워들 하지만 제주도민이 되고 겪는 이런 사소한 일들이 처음에는 참 어색하고 낯설고, 그리고 또 어려웠다.
처음 제주로 이사를 오고 잠깐 스치는 인연들에 나는 참 어색하고 불편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곳은 섬이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 또한 한정적이다. 물론 현재는 택배 시스템도 좋고 대부분이 삶에 큰 불편함 없이 흘러가지만, 사실 이곳은 오프라인에 많이 의지하는 곳이다.
우리 아이의 말대로 여긴 어쩌면 한국이 아닌 섬.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과는 다른 섬. 바로 섬. 제주도.
아침 일찍 장사를 시작한 음식점은 오후 3시면 문을 닫고. 오후면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당연스레 많고, 어쩌면 주말에는 불통이 이상하지 않은.
삶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삶에 들어와 보기 전엔 몰랐던 묘한 다름을 제대로 체감했다.
사실 처음 보니 별로 친절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 사실 처음엔 그것이 이유 모를 상처가 되었는데, 이젠 그 삶 속에 들어왔다. 그저 내 삶 속에 자연스레 자리한다. 그들의 불친절한 듯 묘하게 어색한 그 구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사실 그들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고 그저 표현을 살갑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전히 낯섦을 느낄 때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리얼 섬 생활이다. 이것이 이사 오자마자 치른 우리의 혹독한 섬 생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