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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19. 2024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마음 놓고 불러본 적 없는 나지만,

무서울 때나 놀랄 때는 언제나 부르던 것처럼 "엄마야" 하고 소리칩니다.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아직도 힘든 날 꾸는 악몽에선 당신을 봅니다.

서둘러 차를 타는 당신을 따라 차에 올라보지만 당신은 곧 나를 밀어내고

나는 길 한복판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며 당신을 부릅니다.

그날의 일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갉아먹어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두려움을

여직 떨쳐내지 못 한 채 성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빈자리를 넘치게 채워 주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할머니에게 나는 눈 감는 순간까지 아픈 손가락이었으며 당신은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죽을 만큼 원망스러웠지만, 당신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해 봤습니다.

나는 이제 28살을 뒤로하고 29살을 바라보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 한 마디에 눈시울을 붉히는, 엉엉 울던 어린애 같습니다.


이미 바꾼 지 오래일 당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기억해내고 싶어서

1355로 끝나는 번호를 찾으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기억나는 숫자들을 마구잡이로 눌러 전화를 걸던 내 모습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당신의 친구라는 말을 듣고

그 친구 엄마에게 당신과 아직 연락이 닿는지 묻던 내 모습을,

목욕탕에서 투덜거리는 어느 딸과, 그 딸을 혼내는 어느 엄마를 보면서

혼자 씻고 옷을 갈아입으며 눈물을 훔치고 목욕탕을 나오던 내 모습을,

당신은 아마 평생 모르고 살겠습니다.


개명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서류들이 필요했습니다.

당신의 가족관계 서류를 내가 뗄 수 있구나- 알았던 건 과연 행운이었을지, 

아니면 되려 더 큰 불행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 아들이 한 명 있고, 나보다 열 살이 어리고, 

나는 살아본 적 없는 좋은 아파트에서

나는 가져본 적 없는 엄마라는 존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건

내게는 받아들이기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부러우면서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아이는 잘못이 없지만 나에게 없는 것들을 마치 빼앗기라도 한 듯 미웠으니까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가질 수 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누군가에게 절실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생각합니다.


생일은, 생일자가 아니라 낳은 엄마가 미역국을 먹는 날 이래서,

나의 생일에 나는 미역국을 챙겨 먹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미역국을 혼자 챙겨 먹었을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나에게 내 생일은 의미 없는 365일 중 하루였고 챙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잘 살고 있나요?

나에겐 어릴 때부터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꿈에서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나를 두고 떠난 당신은 마치 불행을 두고 떠난 사람 같았으니,

그런 나를 뒤로한 당신의 인생은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속에서, 

그렇게나 행복한 당신보다도 더 행복해야 했습니다.

당신의 큰 결심에 비례하는 행복을 얻고 살길 바랐습니다.

그래야 당신이 얼마나 불행했으면 그 어린 나를 두고 떠났을지 이해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당신보다도 내가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야 나중에 나를 만나게 되더라도

당신은 조금 더 미안해하고, 조금 더 후회하고, 조금 더 죄책감을 가질 테니까.


나는 작가의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끄적여본  소설 습작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작가의 꿈을 이뤘을 때, 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당신이 살아있고 그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면 어디에서든 내 흔치 않은 이름을 보고

당신이 먼저 나를 찾아오게 만들어서, 혼자서도 잘 컸다고 인정받으며

당신이 내게 용서를 빌고 나는 당신을 용서하는 것.

그게 나의 꿈이었고, 아직도 나는 그 꿈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29살의 5월 11일, 나는 결혼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한 자씩 눌러쓰는 편지는 당신을 힘들게 하기 위함도 아니고,

당신을 괴롭게 하기 위함도 아니고, 당신의 화목한 가정을 방해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결혼식에 마련될 혼주 자리에 앉아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선택대로 그 선택을 책임지며 살아갈 뿐이고

나는 당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다만, 당신의 생사도 모른 채 살 뻔했던 내가

나를 낳아준 사람에게, 나의 결혼을 알리고 싶었던 작은 욕심입니다.


나는 당신을 길에서 지나치더라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주소를 알게 되었을 때, 찾아가서 초인종이라도 한 번 눌러볼까

근처를 배회해 볼까 많은 고민을 해 봤지만

당신의 인생에 내가 더 이상 끼어들 틈은 없고, 

집 앞을 배회 한 들, 당신도 나를 알아볼 리 전무하니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곧 허무해지곤 했습니다.


아빠가 버리려다가 내가 몰래 품속에 숨겨 가지고 있던 당신의 사진 한 장에

당신을 알아본다 한대도, 붙잡고 말을 걸 용기조차 없습니다.

내가 낼 수 있는 나의 최대한의 용기는 고작 이 편지 몇 장이 전부입니다.

사실 내가 이 편지를 과연 당신에게 보낼 수 있을지

편지를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여나 이 편지를 당신이 아닌, 다른 가족들께 보이게 되었을 때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코 원치 않은 가정의 불화가 생길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내 욕심 때문에 잊고 싶었던 그때를 떠올릴까 두렵습니다.

내가 그 정도도 욕심내지 못하는, 당신 인생의 오점 정도뿐일까 얼마나 두려운지

당신은 감히 가늠하지 못합니다.


한 번 버림받은 나는, 다시 버림받는 나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정도로 나는 상계동에 오래도록 살았습니다.

혹여나 먼발치에서 나를 살폈을까 생각하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준 아픔과 상처를 딛고 나는 성장했지만,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습니다.

보통의 엄마가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내가 이런 편지를 쓰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당신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당신을 잃은 내 삶이 얼마나 뿌리 없이 흔들리는 나무 같았는지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은 욕심입니다.


그날 차에서는 비록 내 손을 잡지 않고 밀어낸 당신이지만

지금 내가 조심스럽게 내민 나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더라도, 

내 손 위로 당신 손을 포개어만 주어도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이 부재한 나의 모든 날들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불행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빠라는 사람은 훈육이 아닌 폭력으로 나를 키웠으며

당신이 언젠가 찾아올까 싶어 벗어나지 못할 상계동을 18살에 홀로 떠났습니다. 

떠났다기보다는 도망쳤다는 말이 더 맞겠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동안 힘에 부쳐 온갖 잔병치레를 겪으며

종양이 생겨 큰 수술까지 받을 정도로 내 몸을 혹사시켰을지언정

마음만큼은 그렇게 평온할 수 없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향한 20살의 나는 줄곧 백화점 일을 했습니다. 

웃음을 팔고 옷을 팔고 신발을 팔고,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 사춘기를 겪을 틈 없이 일찍 철이 들었던 나는

20살에도 25살에도 지금도 정신없이 바쁜 일상 탓에 어린아이처럼 굴어본 적 없이

내 삶을 꾸려나가며 당신을 잊고 살며 언젠가 만나리라 생각한 날을 위해 노력합니다.


위태로운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도, 그의 가족분들도, 모두 나를 환영해 주며 얼마나 힘들었니- 

위로해 주시는 따뜻한 분들이라서 행복하고, 슬픕니다.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내 남편이 될 사람을 함부로 대하며 반대하고 있으니

내가 받은 환영과 마음을 줄 나의 가족이 없다는 게 서럽고 슬픕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하는 두 사람을 축복해 줄 이 하나 없다는 게 외롭습니다.


내 학창 시절에 당신이 몰래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고 갔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나를 만나고 싶어 했던 날엔 당신에게 지금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당신이 몰래 우편함에 넣고 간 편지는 아빠가 버려서 내가 못 본 것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내 생일엔 가족들 몰래 미역국을 챙겨 먹으며 내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당신이 나를 잊지 않았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를 찾으려 했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여유가 생겨 나를 찾고자 했을 때 내가 거부할까 걱정되어 머뭇거렸으리라 생각하겠습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어도 당신을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이 기억하는 이름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때가 되면 내가 쓴 책이 유명해져도 당신은 내 책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갈 나를, 그 전의 인생을 털어내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살아갈 나를

당신이 한 번쯤 만나줄 수는 없을까요.


인생의 마지막이어도 좋습니다.

당신을 만나서 여느 모녀처럼 같이 쇼핑을 하고 목욕탕을 가고 차려준 밥 한 끼를 먹고

그런 것들에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바라지 않겠습니다.

나를 찾고 싶었던 척이라도, 거짓말이어도 좋으니  

이 편지를 핑계로 나를 단 한 번 만이라도 만나줄 수 없겠습니까.

결혼식 혼주 자리에 비어있는 당신의 자리에 아쉬워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한 번 만이라도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나에게 당신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습니다.

엄마 없는 년이라며 왕따를 당했던 학창 시절도

처음 생리를 시작 한 날 생리대를 살 줄 몰라 온 침대가 피투성이가 되어 혼난 날도

중학생 때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혼자 처음 브래지어를 사러 간 날도

당신이 필요하고 원망스러웠던 그 모든 날의 당신을 그리워했습니다.


봉투 안쪽에 나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게 우습기도 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거절당할 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죽음을 알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처럼

바보같이 당신을 또 기다리려고 합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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