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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Oct 26. 2024

대물림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물려주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진 것을 물려줄 수밖에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재산을 물려줄 것이고, 사랑이 많은 사람은 사랑을 물려줄 테지.

사랑 없고 돈 없는 이는 사랑도 돈도 물려줄 수 없다.

단 한 가지, 유전자는 반드시 물려줄 수밖에 없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반 씩 물려받은 유전자로 자녀 한 사람이 탄생한다.


아빠는 나에게 늘 엄마 욕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욕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욕했다.

부모가 서로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빠는 나에게도 똑같이 했다.

나의 절반이 나의 절반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고 듣다 보면

정체성은 뿌리째 뽑혀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위태롭다.


처음은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증오로 끝난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는 엄마를 닮을까 늘 불안했다. 엄마는 본 적도 없이 들은 얘기만 있으니 닮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빠도 닮고 싶지 않았다. 내게서 아빠의 모습이 보이는 날에는 온몸에 흐르는 피를 다 뽑아서

쏟아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는 습관처럼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

미친년이라고 욕을 하면서 분에 못 이겨 마치 어제일처럼 화를 내고 책상을 내리쳤다.

그런 순간마저 아빠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올라 언성을 높이며 눈을 부라리는 모습만큼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없었다. 

바람을 피운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나로선, 부적절한 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만

이런 모습을 보이는 남편과의 가정이 얼마나 불안정하며 괴로운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애들끼리

남자친구니 여자친구니 하며 장난치고 놀다가 어른들을 따라 한답시고 입을 맞추는 시늉을 했었고

초등학교 3학년,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고백했던 같은 반 남학생은

커다란 나무 사진을 찍어 보내며 자신의 사랑을 이 나무처럼 잘 가꿔서 크게 키워보겠다는 문자를 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학원에 다닐 땐, 나를 좋아하던 학원 오빠는 나를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했었고

고등학생 때 사귄 남자친구는, 집 방향이 다른 나를 바래다주는 하굣길 버스정류장에서 아쉬운 마음에 다음버스를 타고 가라며 꼭 안아주었다.


아빠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모든 날들 중 일부가, 나를 좋아하던- 사귀었던 남자애들과의 일들 때문이었다. 

통신사에 손목을 붙잡혀 끌려갔던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는, 어린애가 남자애들이랑 연락을 해서 골치가 아프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아빠를 옆에 두고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며 내 모든 통화 및 문자기록을 출력받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내역서 속의 모든 번호가 누구인지 내게 묻고, 한 번씩 전화를 걸어 대답과 다르면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에 벌벌 떨며 진술하듯 말했다.

그 번호들 중 남자애가 있다면 그들에게 윽박을 질러 부모님 번호를 알아내고,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내 딸과 당신네 아들이 만나지 못하게 하라며 역정을 냈다.


고학년에 접어들수록 그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무릎도 드러나지 않는 긴치마였지만 교복 이외의 치마는 절대 허용해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내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서비스까지 가입시켜 한 시간마다 내 위치를 문자로 전송까지 받아보았다. 


매일 저녁 퇴근 후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아빠는 항상 '하나만 걸려봐' 하는 눈으로 내 방에 들어와선

가방과 휴대폰, 서랍 등을 뒤져가며 나를 혼낼 구실을 찾아댔다.

매일 저녁 아빠가 현관문을 여는 열쇠 소리는 속이 메스꺼워지고 복통이 생길 정도로 온몸이 예민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때의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 의처증의 연장선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엄마를 의심하고 감시하고 추궁하면서 바람을 피웠다고 폭력을 행사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나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연락이 안 되는 남자친구를 다그치며 몰래 휴대폰을 살피거나, 주변의 어떤 여자도 허용하지 못하는 나.

그때 깨달았다. 대물림이구나. 불안과 불행의 대물림.


사랑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주는 법도 아는 거라는 말을 들으며 절망했다.

나는 정상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고 목말라있는 사람으로 살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가를 항상 고민하며 살았다.

이런 내가 과연 엄마나 아빠보다 나은 부모가 될 가능성이 있나? 나에게 부모로서의 자격은?


나는 다짐했다. 나는 절대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내가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순간, 그건 죄를 짓는 것이다.


그 이후로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자녀계획이 확고한 남자들과는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다. 술을 좋아하는 남자들과는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한때 엄마가 밟은 전철은 절대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반드시 좋은 엄마가 되겠노라 했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겁을 잔뜩 집어삼킨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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