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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와 딩크

by 제제

결혼하기 vs 혼자 살기

결혼해서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살기 vs아이를 한 명 이상 낳아 기르기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간혹 멀리 돌아가더라도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겪을 수 있는 간단한 선택지도 있겠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지가 어떤 삶일지 알지 못하는 게 보편적이다.

한 번 선택한 길을 돌이킬 수 없이 걸어 나가야 한다.


최근 비혼주의나 딩크에 대한 본인의 신념을 주장하면 사람들의 비난과, 걱정을 빙자한 저주가 쏟아진다.

유튜브나 SNS 속 댓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결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겠지.'

'애 안 낳으면 나중에 외로워요.'

'나중에 독거노인 되고 나서 후회한다. 주변 사람들은 다 결혼하고 혼자 남을 듯.'

'배우자 죽고 나면 자식이라도 있어야지. 누가 돌봐줘.'

'아무리 애 키우는 게 힘들어도 그렇지, 자식이 주는 기쁨은 힘듦을 잊게 하는 법인데 요즘 사람들 참 이기적이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지인들 사이에서 나올 때면, 항상 내가 하는 질문이 있다.

어떤 모습에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면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지?

돌아오는 대답을 내가 감히 판단을 하겠다는 건방진 의도는 아니었지만, 기준은 분명하다.

간단한 기준이다. 누굴 위해서 그런 결정을 했는가.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부모가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이기적인 이 세상 속에,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는 게 바로 가족이니까 그 대답만큼은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본인이 외롭지 않기 위해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하는 결혼을 결심하거나,

아이가 아닌 두 사람을 위해 한 생명의 평생을 좌우하는 결정을 하지 않길 바라는 게 나는 당연했다.


외롭게 늙고 싶지 않아서 결혼을 하고, 부부의 행복을 위해 자녀계획을 했지만,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결혼했던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내가 엄마 뱃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하려던 엄마의 시도도 있었다.


'어머님, 점쟁이가 애 낳으면 안 된대요. 저 어떡해요?'


엄마는 할머니에게 울면서 하소연 했댔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사업하던 유복한 아버지 밑에서 나고 자랐지만

전쟁이 끝나고 한국으로 도망쳐오느라 재산을 날려 가세가 기울었고

팔려가다시피 이름만 양반인 할아버지에게 17살에 시집을 왔다고 했다.

10남매 중 장남이었던 할아버지. 젖먹이 막내 열째 시누이를 업어 키우고

피임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 임신을 하는 대로 낳다 보니 아들만 다섯을 낳았다.

할머니는 더 이상 낳아 기를 수가 없어서 간장을 입에 들이붓고

뒷산에 올라가 언덕에서 이렇게 저렇게 몇 번이나 굴렀댔다.


그랬던 할머니라서 그랬을까, 나를 지우려고 한 엄마를 말렸다.

어느 해 겨울의 첫눈 오는 날 세상에 나왔다는 나의 육아일기 속 엄마의 글씨를 읽을 수 있었지만

그 육아일기에는 내가 혼자 서기 시작하는 모습부터는 빈칸으로 남아있다.

내가 홀로 서서 걷기 시작한 모습은 누구도 유심히 관찰하거나 적어주지 않았다는 게

나에겐 얼마나 큰 상처이자 트라우마였는지, 누구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같은 경험은 누구도 겪지 않길 바랐다.


내가 아이를 낳는대도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다는 게

나의 딩크의 이유라면, 비혼주의의 이유라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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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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