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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라 Oct 24. 2024

3.두 번 바람+a핀 남편과 사는 아내의 일기

상간녀가 부러웠다. 지랄 맞게도.


24.10.14

10년 넘게 같이 명상을 해온 4명의

50대 아줌마들 모여서 2주 전에 

일본 자유 여행을 2박 3일로 다녀왔다.

말이 안 통해도 어쨌든 잘 먹고 잘 놀면서 즐거웠다.

자각과 깨어남, 사랑, 진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기에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곧잘 그쪽으로 생각이 다.

여행 후기로 자신의 어떤 면을 알아차렸다거나, 걸린 점, 내가 원하는 것 등, 함께 한 여행에서 느꼈던 점들을 단체 톡에 올려 함께 나누는 과정이 있었다.

저 때문에 불편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어느 분(편의상 A님이라 하겠다.)께 단체톡에 말씀드렸다.


남편에게 애지중지 관심과 보호

A님여자로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분의 사랑과 보호가 대단하시다, 엄청나시다고 거론했던 내 모습이 듣는 그분 입장에서는 거슬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한 상태에서 정리안 된 내 감정이 가시처럼 섰다는 게 스스로 감지되었기에, 감정이 뾰족하게 전달되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분이 답톡으로 내 말에 맘이 상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은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안되면 외면하면서 견디는 자신의 성향 눌러왔는데, 부러움이라고 말하지만 유별나다고 들려서 불쾌했다고 하셨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주어 용기를 내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하시며, 앞으로는 자신도 그때그때 참지 않고 솔직하게 말을 해보겠다고  각오를 전하셨다.

나는 남편의 일편단심, 오매불망, 지극한 사랑을 받는 그분이 부러웠다.
남편은 당연히 내 것이라는 자신감과 여유, 과보호에 약간의 귀찮음을 나른하게 표현하는 그녀들만의 분위기도 부러웠다. 그분 입장에서는 사실이 아닐 테지만, 내 눈에 그때는 그렇게 보였었다.
(같이 캠핑을 다니는 한 부부도 그렇다.
그 아내의 분위기도 그러하다. 최근에야 그 아내의 짐이 보여 부러움이 상쇄되었다.)

나는 온전히 붙잡지 못한 남편의 시선과 관심, 사랑을 누리는 모습이 부러웠다.
부러움 속에는 열등감, 패배감, 질투심 등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감정들까지 복합적일 듯하다. 그 감정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찔렀나 보다.

일단 내 시선 자체가 그런 쪽에 민감하게 뻗쳐있다. 같이 있어도 남들은 별로 신경 안 쓸 때
나에게는 선명히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그게 컴플렉스라는 거겠지.

잘 보이는 그것들을 남편에게 부러움 담아 보일 때마다 얘기했더니, 결국 남편은 그분의 남편을 보는 걸 불편하게 느끼는 눈치다.

내 잘못을 깨닫고 멈추기로 맘을 먹었다.

내 욕심과 결핍, 상처가 불러온 밸런스가 깨진
집착이 되었다.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되었나 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행복은 불행과 짝지어 온다는 외국 속담도 있다.

누구나 다 자신의 자리에서 좋은 것과 함께 고충이 따른다.

그녀들에게도 있겠거니 하고, 균형감이 생긴다.

나에게도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시야를 넓히고 균형감을 찾아야겠다.


A님께 긴 시간 가시를 견뎌주신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과 그분의 고충을 경청하지 못한 닫힌 마음에 미안함을 간직한다.


-------------


살면서 누군가를 부러워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부러움의 원조가 생겼다.

남편의 상간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빼앗긴 1년 반의 시간'이다.

지켜내지 못한 주인으로서의 질투심과 수치심이 동반된다.

부러움의 시작이 하필 남편의 상간녀들이라니…
지랄 맞다.
좀 더 고상한 표현을 찾았으나, 가장 잘 설명이 되는 단어인 듯하다.
좀 더 정확히 말을 하면, 남편과 열렬히 연애를 했던 나의 판박이였던, 첫 번째 미혼 상간녀 부러웠다.

그 뒤의 유부녀들이나 어장 치던 미혼녀는 오히려 불쌍하고 모자라게 보였다.

남편이 상간녀랑 놀고 있을 때,
나는 외면당하고 방치되었다.
결혼하고 유별난 시댁에 적응하랴, 24개월 차이 나는 두 아이를 직접 다 모유수유하며 독박 육아하랴, 살림하랴, 화장실도 내 맘대로 편히 못 가고, 잠도 두세 시간마다 깨서 젖물리고, 기저귀 가는 그 체력 부치는 시간을 겪어본 분들은 아시리라.

그 시절에는 방치인지도 모르게 내 일이 힘에 부쳐
살아내기 바빴고, 일 때문에 늦게 오고, 주말 출근에, 외박한다는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며
한약까지 지어다 바치며 배려했던 시기였다.

한약 먹은 에너지를 상간녀에게 바칠 바에야, 차라리 내가 먹었어야 했는데... 아깝다.

2년 터울의 큰 아이는 꺼지지 않는 에너자이저의 체력으로 자꾸만 나가 놀고 싶어 하니, 잠깐 쉴 틈이 없어 잠이라도 좀 자보았으면 하는 작은 소원조차 무시하고,  최대한 밖으로 돌면서 상간녀랑 즐기며 놀러 다닌 남편이 미운만큼, 남편과 함께 즐기고 사랑받은 상간녀가 한때는 부러웠다.

그때는 그 지경까지 내 정서와 중심이 휘청거렸다는 거겠지.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던 가치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여자로서는 버려진 서러운 기억이다.

렇게까지 나를 돌보지 못하고 방치했었나 싶어 마음이 쓰라리다.


얘들 챙기랴 시댁 신경 쓰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가장 나약했던 순간에, 나를 외면하고 배신했기에 남편이 더욱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미 살갗이 벗겨진 곳에 칼로 쑤셔댄 남편을 용서해 볼 엄두 수 없었다.

나약했던 순간에 가장 믿고 기대고 있던 사람

배신을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아이들이 보석같이 예뻤지만 휴식 하루 없이 몇 년을 매달리니 체력과 정서가 고갈되어 피폐해진 그 시기에 대한 보상심리의 투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피폐해질 때까지 견뎠던 이유는 내 어릴 적 방치당한 피해보상심리와 아이들에게는 내 상처를 대물리지 않으려는 악착같은 모성이었다.

-------------

지금은 상간녀가 전혀 부럽지 않다.
내 이력과 프라이드를 값싼 유희로 날려버리기에는 내가 걷는 길의 자부심이 훨씬 소중하다.

그들이 끝맺는 걸 보니, 보는 내가 허탈할 정도로 값어치 없이 내팽개치는 모습이, 값싼 유희라는 표현이

딱 적당해 보였다.

초기에 걸렸을 땐 하늘에 맹세코 외도 아니라면서, 날 안심시켜 놓고 담날 외박해서 쫓아다니고, 그렇게 눈뜨자마자 밤중까지 서로를 담던 뜨거운 그 커플은 어디 갔는지 눈이 의심스러웠다.

헤어지려고 계산 끝내면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이기적으로 자신의 입장만 챙기는 게 유부남의 불륜인가 다. 정신 차리고 현실을 보니, 자신도 창피한지 상대에게 모질게 모욕을 퍼부우며 진흙탕에 뒹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암튼 상간녀를 시작으로 부러움을 자각했다면
그 상처를 통해 탄생한 부러움 2호가  위에 거론한 A님이었다.

어쩌면 주홍글씨를 새긴 아내의 컴플렉스의 폭발.


나는 못 가진 남편의 오매불망 사랑을 차지하고 계신 분. 분은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하고 대리만족도 있고, 내 주변에 유일하게 아내를 참으로 좋아하고 찾고 집중는 남편분이 신기하기도 했고, 보기 좋기도 했다.

이 참에 받는 입장의 무게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어온다. 내 결핍으로 인해 한쪽 눈은 감고 있었나 보다.


명상하는 아줌마들일본 여행은  안고 있던 부러움과 질투심을 재조명하여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준 감사한 선물이 되었다.


오늘 거론한 부러움과 컴플렉스는 어릴 적부터 키워온 뿌리 깊은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어서 나에게는 칡뿌리처럼 질긴 무언가이다. 젠가 적을 기회가 있겠지.


A님의 맘이 상했다는 말씀에 1차로 내 컴플렉스를 돌아보게 되었고, 2차로 나의 결핍과 열망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2차의 이야기는 다음 편인 4편으로 이어진다.



24.10.12.유명산에서 남편과 같이 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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