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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라 Oct 25. 2024

4.두 번 바람+a핀 남편과 사는 아내의 일기

달콤한 콩깍지가 떨어지다(3편에 이어)


24.10.15

앞선 3편에서 거론한 일본 여행 후기 단톡방에
올렸던 내용의 일부를 그대로 가져왔다.

저 때문에 불편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어느 분(편의상 A님이라 하겠다.)께 단체톡에 말씀드렸다.
남편이 애지중지 보호하며 모든 관심을 쏟는 A님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남편분의 사랑과 보호가 대단하시다, 엄청나시다고 거론했던
내 모습이 듣는 그분 입장에서는 거슬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답톡으로 내 말에 맘이 상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은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안되면 외면하면서 견디는 자신의 성향 상
눌러왔는데, 부러움이라고 말하지만 유별나다고 들려서 불쾌했다고 하셨다.


첫마디의 맘이 상했다는 말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렸다.
 한 마디에 내 속에 파도가 쳤다.

1주일가슴속 수면 아래가 술렁였다.

왜 이럴까?

바로 레이더를 켜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이 사건으로 나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맘 상했다는 첫마디가 1주일가슴에 가시처럼 박힌 이유를 찾아보았다.

A님은 순수하게 경청을 잘하시는 분이고, 그러면서도 중심을 잘 잡고서 공감이나 위로나 절한 지적에, 잘한 부분을 찾아 북돋워 주는 걸 잘하시는 분이다.
상대가 하는 걸 지켜보면서 찬찬히 좋은 점을 찾아서 진지하게 나열해 주시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어느 누가 내 얘기와 행적에 관심을 갖고 집중해서 들어주고, 눈을 맞추고, 장점을 열거해 주면서 오랫동안 사랑과 관심을 표현해 주겠는가?

가족조차 어려운 일이다.

요새는 남편과 자주 투닥거리는데, 싸우는 방식을 보면 서로 자기가 화난 부분 얘기하느라,

상대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내가 먼저 화가 나서 뿜어내다가 남편의 생각을 물으면, 남편도 자기 입장에서 자기 얘기를 하며 화를 다.

상대의 입장에서 듣지 않고,

자기 입장만 해명하느라 옥신각신하다가 보면
나는 코끼리의 코에 대해 얘기했는데, 남편은 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 결과가 나온다.
이미 화를 내서 뭉친 감정은 풀렸고, 다시  논쟁 의욕도 없다.

감정이 가라앉 시간을 좀 보내고 다시 설명하기는 하지만, 서로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입장만 고수하면서 하는 대화는 논쟁으로 끝날뿐

소통이 어렵다.
보수공사하는데 공력이 더 드는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열고 차분히 경청을 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인 걸

깨닫는다. 자기밖에 모르면 어려운 과정이 된다.

남편의 외도로 화합을 결정하고 노력하기에 이렇게 드러내놓고 싸움이라도 ,
이전에는 대화 시도를 해봐야 더 힘이 들기만 해서, 옥신각신조차 없이 조용하게 혼자 눌렀었다.


겉만 조용 억눌린 평화보다 옥신각신 설왕설래가 풀고 해결해 가는데 도움이 되니 더 반갑다.

다 보니 배워가면서, 싸우는 기술도 진화되어 점차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20년 넘게 같이 산 남편과의 대화조차 이런 상황에서, A님온전한 관심과 집중과 수용방식의 대화는 가뭄의 단비마냥 귀한 것이었다.

자수성가로 일어서신 부모님께선 일에 바빠
유아기부터 혼자 남겨지고, 10살 때부터 3년간 따로 살면서 신체적 방치뿐 아니라, 떨어져 살면서 이미 굳어진 정서적 단절이 계속되었다.

거기다 가부장적 문화에 아들만 내 것인 남성 편애로 인해 굴곡진 성개념과 차별로 고통받아왔다.

태생적으로 고독하고 방치된 나를 관심과 애정을 갖고 바라봐주면서 격려하고 응원하는 A님의 방식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별 거 아닌 나 관심 갖고 바라봐고,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해 주고
나의 좋은 면을 찾아내어 말해주 인정받는 것.


행복했다.

 존재를 바라봐주는 느낌.

그만하면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속삭여주는 느낌.

마치 김춘수 님의 꽃처럼 누군가 꽃이라고 불러주니 꽃이 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A님 덕분에.

말라비틀어져 겨우 버티던 잡초가
빗물을 만나 온몸이 적셔지며 숨이 쉬어지는 느낌.

그런 느낌을 주던 분 중의 한분이었다.
A님은 나에게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힘을 주고

꽃을 피울 수 있게 격려해 주던 빗물 같은 귀인이었다




그런 분이 나 때문에 맘이 상했다고 말했으니,
충격이 일주일이나 갔던 것이다.

수용해 주던 분한테 거부했다는 느낌.

어릴 때의 상처로 민감한 부분이다.

일주일쯤  충격을 소화한 후에 깨달았다.

온전한 관심과 인정, 애정과 격려가 좋아, 구원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린 날의 상처받은 외로운 아이가 결핍을 채울 따뜻한 관심을 갈구하듯, 구원자를 바라는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콩깍지에 씌어 있었다.


여전히 충족되지 못한

아쉽고 그리운 노스탤지어인가 보다.

나와 같이 희노애락이 있는 인간으로 본 게 아니라,

A님 위에 허상을 씌워서 보고 있었으니,
그분의 살아있는 감정표현에 당황했던 것이다.

달콤한 콩깍지에 취해 그분께 힘겨운 짐을 지워드렸다.

그분의 특별한 점은 여전하다.

날 거부해서 하신 말씀도 아니었다.
단지 내 욕망이 문제였다.

단꿈에서 깨어나듯 강제로 콩깍지가 떨어
갑작스런 충격에 얼얼했다.


부모님에게도, 기대했던 남편에게도 상실의 상처로 남은 온전한 시선과 관심과 수용...

A님도, 부모님이나 남편도 불완전한 인간일 뿐인데, 절대적 구원자를 바라다니 불가능한 꿈일 뿐인데...

콩깍지에 가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릴 순간이.

타인에게 기대하고 의지하고 갈구해 왔다. 

달콤하니까...

그래서 늘 갈증이 일었다.

타인이 온전히 채워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구원자는 나데, 달콤함에 자꾸 눈을 돌린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온전히 나와 함께 하는 존재는 나 자신 밖에 없다.


온전한 관심과 수용, 인정과 격려는 오로지
 몫인데...
타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조금 의지를 할 수도 있지만, 온전한 주인은 나다.
A님에게 기대었던 무게를 내 중심에 실어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한다.

내 주인은 나이기에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

내 안의 어른 자아가 힘을 낼 때이다.


내가 나를 지키는 중심에 더해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균형 있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일 테지.


이번 일본 여행은 준비단계에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본에 지진 주의보가 한창이라 취소하기로 하여 예약해 둔 숙소를 취소하여 손해를 보았다.

거기다가 내 비행기 티켓의 영문명과 여권의 영문명의 철자 하나가 틀려, 수정하려고 보름간 애쓰면서 스트레스받다가 결국 취소 후, 출발 3일 전에 티켓을 재구매했다. 티켓 구매를 두 번 하면서 일본행  비행기 가격치고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


이래저래 강행하며

도대체 어떤 선물을 받으려고 이러나 싶었는데, 

선물을 받았다.

A님께는 인간대 인간으로, 이제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수용과 인정, 격려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분에게 받았고, 배웠던 대로.

이제는 비로소 A님과 그분의 남편에 대한 컴플렉스로 인해 예민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남편에게 받았던 상처를 그 부부에게 투사했음을 인정한다.

입장을 바꿔, 오매불망 아내바라기 남편을 가진 아내의 고충을 경청하며 위로와 격려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내 부족함으로 A님에게 짐을 안겨드린 점에 미안함이 올라온다.

여행 동안 즐거웠고,

다녀와서 가벼워진 마음이 좋다.

이번 일본여행, 참 좋다.


일본 도고온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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