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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라 Oct 28. 2024

5.두 번 바람+a핀 남편과 사는 아내의 일기

겁쟁이의 집착


24.10.18

어제 일기를 쓰면서 집착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노스탤지어, 무조건적인 수용에 대한 열망.
열망에 대한 집착.

부모님에게 바랐으나 갖지 못한 것.
가난 때문에, 일 때문에, 무지해서, 두 분도 받아보지 못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다음엔 남편에게 바랐으나,
큰 애 낳고부터 밖으로 눈을 돌린 남편으로 인해
갈증이 더욱 심해졌다.

큰 애 임신 전에 명상을 시작했었다.
마음속 타는 갈증을 명상으로 물꼬를 열었다.

그렇다 해도 가까이,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확인받고 싶고, 기대하고 바라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 열망의 대상이 남편이었고,
남편의 외도로 인한 상실로 집착이 되었을까?

남편에 대한 불신으로 행적을 확인할 때
불편해했던 신랑이 참다가 조심스레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집착이 내 얘기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건 남편이 벌인 일 때문에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 생각했다.
나도 구질구질하고 비참해서 싫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남편에게도 참고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오늘은 의문이 든다.
어쩌면 남편이 말한 집착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 마음과 대화를 해본다.

집착인가?
그렇다…

무엇을 집착했는가?
내 욕망을.

무슨 욕망인가?
나만 바라보아줄 사람을.

무슨 의미인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사람.
아마도 부모님.
부모님은 안되니 그다음으로 남편을.

무엇 때문인가?
사랑받고 싶어서.
무조건적인 수용을 받고 싶어서.
내편을 갖고 싶어서.
그래서 안심하고 싶어서.

안심… 불안했구나.
무엇이 불안했니?

혼자라는 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게.
내가 나를 보호하고 지킬 힘이 없어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어.

그랬구나. 무서웠겠구나.
응. 무서웠어.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할까 봐 겁이 났어.

그랬어.
지금은 어떠니?

글쎄… 믿을만한 누군가가 지켜주면 편안하고 좋겠지만, 나 혼자라도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이제는 아가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50년을 넘게 발 붙이고 살아왔는 걸.
적어도 살아가는 법은 아니까.

그래. 그렇지.
근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누군갈 꼭 붙잡고 있길 바랐어?

혼자선 안된다고 생각했었어.
내가 나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지.
난 아가고,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랬구나. 지금은 어때?

지금은 아니야.
나는 왜 그랬을까?
왜 이때껏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모르겠어. 이렇게 생각을 꺼내서 써보기 전에는
특별히 내 생각을 들춰서 볼 기회가 없었지 않았나 싶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넌 너무 겁쟁이야.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
하루하루 도화지 채워가듯 살면 되는 거야.
너무 비장하거나 진지하지 않아도 돼.
잘못하고, 실수하고 넘어져도 돼.
욕먹어도 되고, 손해 봐도 되고, 바보가 되어도 괜찮아.

너의 자리에서 너의 몫을 해나가면 되는 거야.
잘하려고 긴장하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만큼만 하면 돼.
틀려도 괜찮으니 애쓰지 마.

너의 발길을 믿어.
휘청여도 되고 넘어져도 되고,
춤을 추면서 가도 돼.
그냥 가면 될 뿐이야.

겁내지 마.


너한테 맡겨. 흐름에 맡겨.
뭐가 되든 될 거고 흘러갈 거고 지나갈 거야.
완벽이라는 환상에 속지 마. 제발.

이제껏 하던 대로 해.
잘하던 못하던 좌충우돌 재밌었잖아.

그래. 재미라면 재미지.
맞아.

넌 이제 무력한 어린아이가 아니야.
도와줄 엄마가 없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리고 견디기만 했던 무기력한 아이가 아니야.

그래. 맞아.
기다릴 필요가 없지.
내가 할 수 있지.

그래. 이제는 내가 있어.
그게 전부야.
내가 나를 믿고 의지하면 돼.
내 마음을 온전히 느끼는 건 나뿐이야.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나 자신 뿐이야.

온전한 내 편이 있길 원하지?
그게 나야. 내가 내편이 되면 돼.
밖에서 구하려 헤매지 마.
답은 이미 나와 있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함께 있어주는 존재는 하늘 아래 나뿐이야.

나의 구원자는 나야.
내가 나를 구하고 지켜야 해.
타인이 아니라.

그래. 알겠어.

남편에 대한 집착심에 대해서는?

불안이지. 불안해서.

뭐가?

그의 배신이.

그를 믿지 못하니까.
나보다는 자기 자신의 쾌락과 재미가 먼저인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런 사람인 거야. 그의 성향이, 선택이.

그걸 알았잖아. 그럼 된거야.

???

그걸 알고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따로 또 같이.

그걸 네가 바꿀 수 없어.
집착이란 네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야.
내가 애쓰면 뭔가 나아질 거라고.

마음속으론 그가 바뀌지 않을 거고
바람피울 수 있다고 믿으니까
애쓰며 붙잡는 마음인거지.
미련을 갖는 거야.

네가 집착하든 안 하든
그의 일은 그가 알아서 해.

너는 너의 일을 해.
붙잡으려고 애쓰는 마음을 갖지 말고.
애쓰는 마음은 힘이 드는 마음이야.
날 힘들게 하는 그를 미워하게 되고, 화가 나게 돼.

너는 너의 삶을 살아.
따로 또 같이 즐겁게.
너의 삶을 낭비하지 마.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고 미래는 미래야.
분화해서 생각해야 해.

현재에 있으면서 과거에 묶여 있지 말고.

네가 집착하든 안 하든
또다시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안 벌어질 일은 안 벌어져.
외도 재발의 키그가 잡고 있다면
그건 그의 일이야.
너의 일이 아니고.

그에게 맡겨.
믿고 맡기든, 안 믿고 맡기든 의미 없어.
결과와는 상관없으니.
믿는 게 편하면 믿고, 불신이 편하면 불신해.
중요하지 않아. 핵심도 아니야.

네가 편하고 좋은 것을 선택해서
취하면 될 뿐이야.
네가 불신하고 의심해도
안 일어날 일은 안 일어나.
믿어도 일어나려면 일어나.

그걸 누가 알겠어?
네가 알 수 있겠니?
모르잖아.
그러니 현재를 낭비하지 말고, 너의 삶을 살아.

현재에 충실하면서 즐겁게 살면
남편과도 즐겁겠지.
그러면 된 거지.

행여 외도 재발이 된다 한들
재밌게 살다 맞닥뜨리는 게 낫지,
언제 외도하나 의심하며 싸우다가 맞닥뜨리는 게 좋지 않잖아. 현재의 행복이 날아가잖아.
그럼 현재도 날아가고 미래도 날아가버리잖아.
아깝게.

내가 지금 좋으려고 같이 재밌게 살면,
그게 있을 때 잘하는 거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후회 없고.

네가 어떡하겠어?
쫓아다니면 막아지나?
그것도 아니잖아.
재발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때는 그때의 할 일을 하면 돼.
그때의 네가 원하는 걸 충실하게.
오늘 하루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냈듯이
그때도 넌 그럴 수 있어. 오늘 그러했듯이.

겁을 내지 마. 어제처럼, 오늘처럼 살면 돼.
흘러가지는 거야. 세상이, 흐름이 널 돕고 있어.
널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살아왔어.
걱정하지 마. 다 되게 되어 있어.
누리던 포기하던, 즐겁던 슬프던
다 지나가고 흘러가.

안심…  안심이 뭘까? 난 왜 그토록 원하지?

믿는 마음이야. 괜찮을 거라고 믿는 마음.
대부분 괜찮잖아.
안 괜찮은 건 풀어내려고 노력해서
괜찮음으로 가려고 노력하잖아.
그런 거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동안 네가 매일 해왔던 거.

불안이란?

안될 것 같은 마음.
내가 안 괜찮을 것 같고,
안전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걱정하는 마음. 작아진 마음.
그래서 기대고 싶은 마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
내가 나를 지켜줄 거라 믿지 못해서
하지 못한 마음.

남편이 다시 외도해서 나를 아프게 할 거라는 믿음이 문제이기 전에,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구나.

난 나를 믿나? 믿고 있나?

글쎄…
믿고 싶은데, 그다지…

왜? 왜 그런 건데?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아.
항상 부족함을 찾아보고 미워하잖아.




그래. 그랬지.
내가 나를 못 믿어 불안하니까,

남편이라도 믿고 기대고 싶은데,

거기도 불안하니까
남편을 윽박지르고 믿음을 내놓으라고 했던 거였구나.
맡겨놓은 짐 찾듯이.
네가 잘못해서 내가 그런 거라고 탓하면서.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하니, 너라도 날 구원해야지,

뭐 하는 거냐고, 똑바로 하라고
혼내는 마음이었네.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을 거울처럼
남편에게 투사했구나.

결국은 내 문제였네.

남편…
애썼네.
나보다 3살 어린 사람이 나에게 기대고 싶었을 텐데…

그래서, 집안일에 대한 결정이나 세상 일에 대한 경험을 인생 선배로서 가르치고, 판단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지적을 많이 했던 결혼 초기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지금 보니 내가 도울 부분은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받고 싶었던 관심과 수용, 지지가 필요했겠구나.
이 사람도 외로웠던 사람이니까.

왜 나한테 이렇게 해주지 않냐고 맡겨놓은 것 마냥 남편에게 따지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러면 최근에 싸울 때 말문 터진 남편도
같이 불평하며 따지고 들던 장면도 떠오른다.

멈출 때구나.

그는 나의 구원자도 아니고, 남편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무조건 받아줘야 할 의무도 없다.

내가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사랑을 달라고 때를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받을 만하면 저절로 사랑받지 않겠는가.


또다시 남편이 바람피우다 걸려 뒤통수 맞을까 두렵고,

그래서  또 믿고 산 나를 바보 같다고 미워하고 탓할까 봐 믿기가 겁이 났었어.


그런데 못 믿고 아웅다웅하면서 현재의 행복을 날려버리는 게 더욱 바보 같은 짓이었구나.

미래에 바보가 될까 봐 무서워, 이미 바보가 되어있는 꼴이었네...


일기를 쓰면서 알아차릴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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